2009. 2. 16. 02:39ㆍ흐르는 강/소박한 박스
올해 나의 문화생활은 대부분 상상마당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_- 지난주 토요일, 상상마당 3층 아트마켓에서 있었던 열린포럼에 다녀왔다. 우연히 상상마당 홈페이지에 갔다가 포럼 개최 공지를 보고 신청했는데 운이 좋게도 선정되었다. 워낙 날짜가 날짜인지라 이런저런 공연도 많은 날이었고 크고작은 일정도 없지 않았으나 눈 질끈 감고 다녀왔다.
솔직히 사회자는 좋아하지 않지만ㅠ 주제가 굉장히 시의적절한데다가 게스트 선정이 꽤 괜찮아서 참석해 보고 싶었다-선정된 멤버들 개인개인에 대해서는 아주 잘 알지 못하지만, 멤버들의 구성이 좋았다는 거다. 40대이며 뮤지션들이 공연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주는 클럽의 대표, 뮤지션이며 레이블 대표인 30대, 레이블 대표이며 뮤지션인 20대, 그리고 20대의 뮤지션이라니. 다채롭지 않은가. 매우몹시많이 아쉽게도 모든 게스트와 진행자가 전부 다 남성이기는 했지만.
포럼 게스트 리스트. 덧붙이자면 서준호씨=볼빨간, 송재경씨=9.
우선 김작가의 발제가 있었다. 김작가는 현재 인디신에 대해 '르네상스'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동안 침체에 빠져있던 인디신이 최근 몇 년간 매우 활발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내용을 이야기했다. 인디신에서 창작되는 음악의 완성도가 높아졌을 뿐 아니라 대중의 관심도 함께 증가했다면서, 이를 가능하게 한 요인들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레이블과 클럽의 다양화 및 세분화를 들었다. 요약하자면.
(이 색깔은 남의 말을 옮기는 것이고 이 색깔은 내 머릿속에서 나온 말이다) 기존의 인디신에서 주로 선보여지던 음악이 말랑말랑한 분위기의 음악들이었다면, 최근에는 다양한 레이블이 나타나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서구의 음악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서 탈피해 자신의 방식으로 음악을 만들어내는 밴드들이 늘어남으로써, '비교할 대상이 없는' 음악들이 나오고, 탈장르화가 급속히 이루어지며, '누구누구의 아류 느낌'을 내지 않는 뮤지션들이 속속 등장하는 중이다.
이는 클럽의 다양화와 직결된다. '이 클럽에서 공연할 수 있는 뮤지션'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첫 번째는 클럽들이 가진 색깔이 보다 뚜렷해진다는 점. 클럽의 이름만 듣고서도 '아 여기는 대충 이런이런 분위기의 밴드들이 나오는 곳'이라고 짐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만약에 빵에서 갤럭시익스프레스가 공연을 한다거나 FF에서 시와가 공연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거 좀 이상한데...'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두 번째는 그 뮤지션이 얼마만큼이나 관객을 모을 수 있느냐에 따라 공연할 수 있는 클럽이 나뉜다는 점. 다시 말하자면 밴드들이 발전할 수 있는 '코스'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홍대앞의 모든 클럽들이 신인들만을 위한 곳도 아니고 이른바 인디에서 '스타' 대접을 받는 뮤지션들만을 위한 곳도 아니라는 것. 신인급 뮤지션들이 공연하는 소규모 장소, 좀더 관객을 모을 수 있는 뮤지션들이 공연하는 중소규모의 장소, 그리고 비교적 많은 관객을 모을 수 있는 뮤지션들이 공연하는 장소(롤링홀이나 브이홀, 상상마당 라이브홀 같은)가 홍대 앞이라는 장소에 공존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불어 김작가는 네이버의 '오늘의뮤직'이라든지 EBS 스페이스 공감의 헬로루키 프로젝트 등이 이러한 인디신의 르네상스에 불을 붙였다 할 수 있다는 의견을 덧붙였다. 프로모션 부분에 있어 취약했던 인디신의 음악들이 포털사이트와 방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좀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헬로루키는 토너먼트 형식을 토입해 시청자들의 흥미를 높였고 헬로루키에 소개된 뮤지션들이 펜타포트에서 공연할 수 있게 연계했으며 연말에 헬로루키 결선을 성황리에 치뤄내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았다. (세상에나 국카스텐 앨범은 3일만에 천장이 팔렸단다. 그 중 한 장을 나도 샀다 하하하하)
음악과 클럽의 다양화 및 세분화. 누구나 충분히 공감할 만한 얘기라 생각한다. 사실 어찌보면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나 역시 인디신의 음악을 떠올릴 때 '부드럽고 달콤하고 귀엽고 상큼하고 즐겁지만 아주 약간은 우울하기도 한, 꽤 감상적인 음악들'을 떠올렸으니까. 해피로봇, 롤리팝, 비트볼 등도 떠올릴 수 있겠지만 역시나 대표적인 건 파스텔이겠고. 그 음악들이 싫다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조금은 지루했고 그래서 좀 재미없다...싶어지려고 할 때, '와, 이건 뭐야?' 싶은 음악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신보에 그리 밝지 않으므로 지금 쓰는 건 순전히 개인적인 경험이지 다른 애호가들 역시 마찬가지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작년부터 이건 대세다 싶었던 붕가붕가와 루비살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호오가 꽤 갈릴법한 눈뜨고코베인이나 대놓고 유쾌한 치즈스테레오나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개성은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가장 감성적인 브로콜리너마저의 느낌도 기존에 자주 듣던 파스텔 등등의 느낌과는 매우 달랐다. 세련되고 트렌디한 느낌은 덜하지만 좀더 담담하고 솔직하여 오히려 그 소박함이 신선했다. 덕분에 여운의 강도도 더 셌던 것 같고. 장기하와얼굴들이야 슈퍼스타이니 대박이 유력하고, 이자람밴드까지 잘되면 붕가붕가는 '저를 받아주세효'하고 붙잡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지 않을까-_-
그리고 루비살롱. 사실 나는 루비살롱을 더 많이 좋아한다ㅋ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앨범들에 속하는 검정치마와 국카스텐은 물론이고 매우 좋아하는 문샤이너스도 루비살롱. 거기에 갤럭시익스프레스, 파블로프, 핑크엘리펀트, 타바코쥬스, 포니, 누렁이, 나M 그리고 이장혁까지. 달리는 음악에서부터 바닥으로 마구 치닫는 음악까지 스펙트럼도 넓고 소속된 뮤지션들도 다들 '어느 정도 이상'이라는 느낌이 든다. 지금은 '루비살롱에서 나왔다!'고 하면 흠, 이거 믿을 만 하겠군, 싶을 정도? ㅋ
그런데 헬로루키 프로젝트나 네이버 '오늘의뮤직'이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될 수 있었던 데 '무료'라는 이유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 전혀 이야기되지 않았던 건 좀 의외였다. 오늘의뮤직에서 이주의 국내앨범으로 뽑힌 음악들을 네이버가 홈페이지 첫화면의 잘 보이는 곳에 위치시키고 일정 기간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며, 스페이스 공감이 무료로 진행되었던 덕분에(스페이스 공감은 다시보기 서비스도 무료다!) 특정 뮤지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도 부담을 덜 가지고 접근할 수 있었던 거 아닌가. 만약 둘다 유료였더라면 어땠을까. 흠.
헬로루키를 꽤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불평을 좀 하자면, 뮤지션들이 경쟁하는 방식을 굳이 취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 연말 결선에서 꼭 '누가 제일 잘했나', '누가 제일 인기있나' 따위를 꼭 가려야 했었나? 왜? 그냥 보고, 즐기고, 느끼면서, 한 판 거하게 잘 놀면 되는 거 아닌가? 물론 그 경쟁에서 상을 받은 팀들이야 자신들의 음악이나 연주 실력 등등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성취감도 느낄 수 있을테고 앨범이 나왔을 때 홍보할 문구도 하나 더 늘었을 테지만, 상을 받지 않는 팀은? 그들이 sbs 인기가요 따위에 나갈 것도 아닌데 굳이 '네가 제일 잘했고 네가 제일 인기있었어'라고 누군가가 평가해서 상을 주는 게 꼭 필요한가? 그런 거 없어도 여러 팀이 같은 날 한 자리에서 공연을 하면, 공연을 본 사람들은 각자 누가 제일 잘했고 누가 제일 자기 맘에 든다고 생각하면서 돌아간다. 잘 하는 팀은 입소문나고, 제대로 기량을 보이지 못했던 팀은 안 난다. (물론 꼭 '실력'으로 입소문이 나는 건 아니지만)
그리고 헬로루키라는 이름의 문제. 영어로 되어 있다는 것도 딱히 맘에 들진 않으나-_- '루키' 말고 다른 적절한 표현을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스페이스 공감 홈페이지에서는 헬로루키가 아직은 대중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가진 뮤지션을 후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라고 소개하면서 소신 있게 자기만의 음악을 만들어가는 신인 뮤지션들의 작품을 널리 알리려 한다고 설명하는데, 대중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과 신인이라는 것이 같은 의미는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인디신에서 신인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도 모호하고. 선발자격에는 정규앨범을 발표한 적이 없는 개인이나 단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 헬로루키 공연때는 정규앨범을 낸 아이러닉휴나 더스티블루, 데미안 더 밴드도 공연을 했잖나. 그리고 만약에 정규앨범은 안 냈지만 EP를 몇 장씩 냈다면? 그리고 그 EP 중 소위 '대박친' 싱글이 한두곡 있었다면? 애매하지 않은가. 헬로루키 프로젝트가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어떤 의미로 그런 표현을 쓴 건지 충분히 이해가능하고 짐작가능하지만 '루키'라는 말이 가진 기존의 의미로는 헬로루키 프로젝트의 성격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아오. 쓰다보니 또 엄청 길어졌구만; 김작가 발제에 대한 생각만 짧게 덧붙이려 했는데 왜 또 논술을 하고 난리야ㅠㅠ 글을 짧게 쓰는 연습을 좀 해야 하는데. 암튼간 게스트들의 난상토론(?!)과 이어진 포럼회원들과의 질의응답 등등은 다음에 쓰고 자러 가야 내일 출근을 할 수 있겠습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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