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5. 25. 23:40ㆍ흐르는 강/이즈음에
일요일, 일산 미관광장 분향소에 다녀왔다. 또 대한문에 다녀와야 하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 행사'에 대비해 살수차까지 준비해놓으신 경찰님들의 꼼꼼한 태세를 좀 보고 싶었달까 - 집에서 도보 15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곳에 분향소가 설치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루종일 밍기적대다가 결국 저녁이 되어서야 미관광장을 찾았다.
전경도, 방패도, 닭장차도 없는 광장의 분향소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나온 아이들, 저녁을 먹고 산책하던 가족들, 손을 잡고 온 연인들, 휴일을 즐기던 친구들, 운동복 차림으로 호수공원에 다녀오던 사람들, 저녁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던 사람들...조용히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분향을 마친 후에는 추모의 의미를 담은 메시지를 써서 나무에 걸어 놓았다. 여기저기서 누군가의 흐느끼는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분향을 마치고 메시지를 적으려는데 눈앞이 캄캄했다. 차마 무어라 쓸 수가 없었다. 그 평화로운 모습에, 오히려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평화로운데, 사람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겠다는데, 왜 그것마저 무력으로 저지하는가. 무엇이 두려운가. 무엇이 잘못인가. 결국 아무 말도 쓰지 못한 채 펜을 놓고, 어깨를 들썩이며 얼굴을 훔치다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참 긴 이틀이었던 것 같은데...이렇게 시간이 쉬임없이 흘러가는 것을 보고 있으니 약간은 허무하고 조금은 애석하다. 애도하고 분노하는 것도 잠시뿐. 금세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습관적으로 넘겨버리는 날들이, 귀찮아서 눈감아버리는 순간들이 찾아오겠지. 2008년, 그리고 2009년. 과연 이 세계는 아주아주아주 느리게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까? 성큼성큼 뒷걸음하고 있는 건 아닐까? 마음이, 머릿속이 복잡한 요즘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정성스럽게, 누군가는 짤막하게, 누군가는 서툰 글씨로, 누군가는 울분을 토하며 적어 놓은 글들.
당신이 죽음으로 살리려 한 것을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가셔야만 했습니까. 안됩니다. 억울합니다...못 보낼 것 같습니다. 이렇게 죽으시면 어떡해요. 바보. 명복을 빕니다.
부끄러운 우리만 살아남았습니다. 이 삐뚤빼뚤한 글씨가 왜그리도 마음을 아프게 했을까.
'흐르는 강 > 이즈음에' 카테고리의 다른 글
090823, 이즈음에. (6) | 2009.08.24 |
---|---|
090806, 이즈음에. (6) | 2009.08.06 |
090531, 이즈음에. (0) | 2009.05.31 |
090517, 이즈음에. (4) | 2009.05.17 |
090506, 이즈음에. (8) | 2009.05.06 |
090425, 이즈음에. (4) | 2009.04.25 |
090408, 이즈음에. (2) | 2009.0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