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6. 23:23ㆍ흔드는 바람/즐기고
귀여운 기타와 예쁜 스웨터!
유쾌하지만 눈물나던, 사이.
사이는 이번 레드사이렌 공연을 통해 알게 된 뮤지션이다. 그전까진 누구신지 몰랐어요. 이름도 몰랐답니다. 죄송하여요. 다행히도 공연 가기 전전전날 만난 홍모언니께서 "'엄마말'이라는 노래를 꼭 찾아들어보아라!"고 말씀해주시고 친히 음악을 보내주시기도 하셔서ㅋ 백지장처럼 얇은 배경지식을 가진 채 공연장을 찾았다. (그래도 어쨌거나 '엄마 말'은 참 인상적이었다. 처음엔 '엄마 말 안들으면 죽는다', 뭐 그런 노랜가 했는데ㅎ)
따뜻해보이는 스웨터를 입고 무대에 오른 사이는 생각했던 것과 달리 훈남 이미지였고(또한번 죄송함미다) 표정도 밝아보였다. 넉넉한 풍채와 어느 정도 자리잡은 주름살을 자랑하는, 40대 중후반 정도의 '아저씨'를 상상했건만! 밴드 멤버들의 표정도 하나같이 편안해 보여 첫 무대임에도 별 긴장감이 없는 듯 했다. 왠지 모를 배신감과 기대감이 함께 내 주변에서 뭉글뭉글 부풀어올랐다.
처음 들어본 사이의 노래가 '엄마 말'이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아주 동요같거나, 아주 과격하거나, 둘 중의 하나인 음악을 듣게 되리라고 이유도 없이 예상했었다. 그런데 사실은, 둘 다 아니었다. 특히 가사가 인상적이었는데, 첫 곡인 <냉동만두>부터 그랬다. 최근 접해본 '음악론' 중 가장 진솔하고 솔직하면서 어렵고 눈물나는 음악론이었달까. 아, 이 사람, 밝고 즐거운 음악을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뮤지션이구나, 하는 생각이 첫 곡을 들으면서부터 들었다.
벌거벗은 임금님, 당근밭에서 노을을 보았다, 귀농통문, 엄마 말, 당나귀 가는 길에 비단을 깔아요, 아방가르드 제 1조 등 이어진 곡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관객들의 호응이 가장 뜨거웠던 때는 역시 <엄마 말>을 부를 때. '청와대의 그자'와 관련된 영상이 무대 뒤쪽에 비춰지면서 노래와 함께 어우러졌다. 노래가 끝난 후 사이는 장난섞인 말투로 "역시 사람을 비하하는 노래를 불러야 반응이 좋다"며 유쾌하게 웃었다. 으하하. 사실 난 막 웃다가 이따위 세상이 너무 슬퍼져서 막판엔 막 울었는데.
마지막 곡인 <아방가르드 개론 제 1장>을 들을 때는 정말이지 마음이 복잡복잡했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쉬고' 살아야 하는데, 잘 놀지도 못하고 잘 쉬지도 못하면서 별 보람도 없이 시간을 죽이듯 살아가는 요즘의 내 모습이 뼈아프기도 했고, 언제부턴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나에게 돌아오는 게 얼마인지'를 무의식적으로 계산하게 된 내 삶의 이해타산성에 회의가 느껴지기도 했고, 애들을 바보로 만드는 데 나 역시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미안하기도 하고 죄책감도 들고...암튼 자꾸 눈물이 났다. 나도 나름 '자유와 고독을 사랑하는 방랑자'였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됐지. 슬프고 부럽고 가슴이 콕콕 쑤시고. (물론 '아내-남편'이라는 구도 자체의 전형성은 마음에 걸렸지만, '아내와 함께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는' 사이 본인의 개인적인 삶에서 연유한 것이리라 생각하고 대충 이해한다ㅋ)
굉장히 심상한 것 같으나 전혀 심상치 않은 뮤지션의, 겉포장은 엄청 명랑활발하지만 실제론 무게있고 나름 진지한 음악, 그리고 진솔하고 소박한 듯 하지만 사실은 엄청나게 용감하고 과격한 메시지. 오랜만에 노래를 들으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 준 이 뮤지션에게, 이 포스팅을 통해서나마 감사를 전한다. 한 시간 정도 되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아쉬웠으며, 당신의 공연을 꼭 다시 보고 싶다는 말도 함께(사이가 이 글을 보든지 말든지와 상관없이). 더불어 사이의 CD를 반드시 구입하겠다는 약속까지ㅋ
2009년 11월 6일, 사이 - 2009 <Red Siren> @상상마당 라이브홀.
아이고, 사이 얘기밖에 안썼는데 너무 길어져버렸다-_- 이 다음부터는 좀 짧게 써야지. 바드-오지은-안치환-한음파는 다음에 계속. 지난주에 다녀온 천변살롱과 소온지&문샤이너스 공연 후기도 쓰려고 했는데 언제 다 쓴담ㅋㅋㅋㅋㅋㅋㅋㅋ 못살아 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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