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106 Music Revolution 2009 <Red Siren> 후기 ⑶ - 오지은, 한음파 등.

2009. 11. 25. 23:31흔드는 바람/즐기고

참 일찍도 쓰는구나-_- 11월 내내 바빴던 탓에 '써야지 써야지' 생각만 한 채 계속 미뤄두었다. 크흠.

어쨌든간 이어 쓰는 레드사이렌 후기. 세 번째로 나왔던 오지은과 마지막으로 나왔던 한음파 얘기 먼저.





솔직하고 자유롭게 진심을 담아 노래하던, 오지은.


대놓고 말해서, 나는 오지은을 좋아한다. 2007년 나의 베스트 앨범 목록에는 오지은의 1집이 있었고, 베스트 트랙 목록에는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가 있었다. 그러나 참 묘하게도 그동안 계속 그녀의 공연과는 인연이 닿지 않았다. 그 까닭에, 이번 공연을 신청할 때부터 오지은의 음악이 가장 기대됐었다. 라이브로 보면 더 매력적이라는 그녀의 무대. 자유롭게 힘이 넘치는 오지은도 좋고, 음울하게 가라앉는 오지은도 좋으니, 어떤 오지은이라도 '실제의 오지은'을 보고 싶었다. CD 속에서의 오지은 말고.


화, 익숙한 새벽 3시, 인생론,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 Turn Your Light Down Low, 작은 자유, 날 사랑하는 게 아니고를 불렀는데-오프닝이 '화'였던 거 빼고는 어느 정도 예상 가능한 노래들이었다. 오지은의 베스트 트랙...이라기보다는 '그래도 대중에게 이름이 알려진 노래' 중 꼽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첫곡에서 살짝 삑사리가 나서 '헉 오늘 두 탕 뛴다더니 무리한 건가' 싶었으나 그 작은 삑사리 이후로는 눈에 띄는 실수 없이 남은 곡들을 멋지게 불러제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24도 듣고 싶었는데 그건 뭐 단독에서나 들을 수 있겠거니 싶었고ㅎ


앞의 두 곡은 약간 긴장하면서 들었고, 인생론부터는 좀 편안하게 들었다. 인생론 가사 들을 때부터 울컥하더니만(이날 내가 좀 감정적으로 예민했던 것 같다)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작은 자유를 들었을 때는 눈물이 좌르륵. 오늘은 하늘에 별이 참 많다를 들을 때는 이 노래를 한창 많이 들었던 2007년 생각이 나면서...마음이 복잡미묘했다. '아무 일도 없는 소소한 일상, 새삼 말하기도 민망하지만 이대로 좋구나'라는 생각이, 그 땐 참 많이 들었는데, 지금은............아휴. 뭐 그런 생각들이 들면서 마음이 차악 가라앉았다. 암튼간 참 사람 센치하게 만드는 노래야ㅋㅋ


작은 자유는 참 좋았다. 예전에 작은 자유에 대한 포스팅을 하면서, 거대담론 대신 소박하게 '일상'을 말하는 그녀의 미덕을 마구마구 칭찬했던 적이 있는데, 이 날 노래가 끝난 후 오지은의 멘트를 들으며 그 생각이 옳았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티벳 사태를 보고 이 노래(작은 자유)를 만들게 되었다고 소개하면서 그와 비슷한 일이 이 땅에서도 버젓이 일어나고 있음에 안타까워하고, 우리의 작은 일상이 행복하게 유지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그녀의 말에 나 역시 동감. 거시적 안목으로 진리와 정의를 외치는 사람도 있어야겠지만, 피부에 와닿는 일상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사람들도 매우 필요하다고, 새삼 생각했다. 일상을 구성하는 정치에 대한 자각이 아직도 부족하다고 느껴지기에 더더욱.


공연 후 오지은씨 홈페이지에서 보니 <음악을 하면서 이러쿵 저러쿵 불평이 많았지만 결국 핵심에 집중해보면 바로 이거 같아요. 음악인생에서의 핵심은 나는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그 노래를 듣는다는 것.>이라는 글을 읽고 괜히 마음이 찡했는데...하하; 자신의 음악과 그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들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고 생각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오지은씨에게 괜히 고맙다. 이번 공연은 못가지만-_- 다음엔 갈 수 있었으면. 그러니 제발 일요일 공연 좀 하지 말아주었으면ㅠㅠ



그날 찍은 오지은씨 사진들 몇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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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둡고 뜨겁고 강렬하게 몰아치던 한음파.


한음파의 무대는 올해 봄 허클의 <봄의 피로> 공연 때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앨범 발매 전. 그 날이 故 노무현대통령 기일이었는데, 보컬인 이정훈씨가 '노무현대통령을 추모하는 음악을 한 곡 하겠다'고 하면서 경건하게 연주하던 모습, 베이스 혁조씨(허클 베이스 세션하시는)가 개념멘트로 감동주던 기억이 난다. 200만 광년으로부터의 5호 계획이 가장 인상적이었었고. 하지만 그 때 나는 대한문에 막 다녀온지라-_- 허클 나오기 전까진 정신이 좀 딴 데 가 있기도 했었고 하여 초반엔 별로 기분이 뜨지 않았다. 한음파 음악을 들은 게 처음이었어서 좀 낯설기도 했었고, 어디까지나 그날의 메인은 허클이었던 탓에 한음파보다 허클이 빨리 보고 싶기도 했었고, 그리고 왠지 그땐 보컬이 확 끌리지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외모는 되게 카리스마 있는데 음악은 덜 카리스마있네...라고 느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세상에!! 레드사이렌에서 한음파의 무대는 정말이지 말도 못하게 좋았다. 200만 광년으로부터의 5호 계획이 첫곡이었고(꺅 내가 좋아하는 노래다! 하여 더 좋았는지도ㅎ) 소용없는얘기, 무중력, 참회, 그리고 한음파 스타일로 편곡한 불나비를 불렀다. 1집에 있는 노래를 한 곡 더 불렀는데...초대였던 것 같은데 확실치 않다^^; 암튼간 다 맘에 들었다. 왜 예전엔 그냥 그렇다고 생각했지? 싶을 정도로. 기타, 베이스, 드럼, 보컬 중 어느 하나가 너무 튀거나 너무 약하지 않은 상태에서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는 느낌이었고 각 악기의 연주들이 모두 탄탄했다. 특히 드럼이 인상적이었는데, 어찌 보면 굉장히 무뚝뚝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절도있고 강하고 오바하지 않는 느낌이 참 좋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드럼 스타일. (그 전전날 유앤미블루 천변풍경 공연에서 들었던 드럼 연주가 자꾸 생각나면서...'이게 내가 원했던 건데ㅠㅠ'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흣)


한음파는 이 날 정치적인 멘트를 가장 많이 했던 팀이기도 하다. 보컬인 이정훈씨는 공연 내내 날선 독설을 내뿜었고 많은 사람들은 큰 호응을 보냈다. 물론 나도 엄청 좋아했고ㅎ 한음파가 2007년에 재결성되었고,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공연을 시작했고, 2009년에 앨범이 나오는 등 본의 아니게 이 정부와 함께 활동을 하게 되었다면서 "뭐 그래도 가사 쓸 때 집중할 수 있는 대상이 생기긴 했어요. 예전엔 비판의 대상이 확실치 않았는데 이제는 딱 둘 생겼죠"라며 여유롭게 웃을 때는 따라웃지 않을 수 없더라(딱 둘=ㅎㄴㄹㄷ, ㅇㅁㅂ). '참회' 부를 때는 '청와대에 있는 이 장로가 반성할까지 이 노래를 부르겠다'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뜨겁게 달렸고 중간에는 "쥐ㅅㄲ!!!"라며 직설적으로 디스하기도. 캬, 속이 다 시원하더라.


어찌나 호쾌한 무대였던지, 끝나고 나서도 그들의 노래가 머릿속에 계속 맴돌아서 바로 CD를 구매해 버렸다ㅎ 요즘 계속 듣고 있는데 참 좋다. 전곡이 맘에 드는 앨범이다. 노래 들을 때나 무대를 볼 때 국카스텐이 떠오르기도 한다. 둘다 '사이키델릭하다'는 밴드라 그런가 싶기도 한데 난 장르에 그닥 예민하지 못한지라; 보컬과 음악의 카리스마에서 통한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인 듯이라 추측한다. 별 필요 없는 비교이긴 하지만-그냥 내 느낌엔 국카스텐보다 한음파가 더 어둡고 뜨겁다. 국카스텐은 가끔 차갑다 싶기도 한데 한음파는 정말이지 델 정도로 뜨겁다. '보컬의 역량'이나 '기타 솔로'를 따로 떼놓고 보면 국카스텐이 더 우월한 것 같기도 하지만 합쳐놓으면 한음파가 더 조화롭다는 느낌이 든다. 남들이야 어떻든 내 취향엔 한음파가 더 잘 맞는다. 레드사이렌 아니었으면 올해 한음파 음악 제대로 못 듣고 넘어갈 뻔 했는데, 다행이다.



그날 찍은 한음파. 많이 찍고 싶었는데 배터리가 없어서-_- 좌우는 베이스 혁조씨, 가운데는 보컬 이정훈씨.



그리고...평화롭고 아름다웠던 바드 & 눈물폭풍 안치환.


바드의 음악은 언제 들어도 아름답다. 멘트를 거의 하지 않고 음악을 들려주었는데 이상하게도 난 아이리쉬 음악을 들으면 괜히 눈물이 난다(아일랜드 때문인가ㅎ). 버스킹 얘기를 하면서 음악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 주었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신곡도 한 곡 들려주었고. 마음이 따듯하게 덥혀지는 느낌이 들어 참 좋았다. (바드는 사이 다음, 오지은 전이었다)


안치환은 '인디음악하는 친구들과 함께 무대 위에 선다는 것'이 매우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로 무대를 시작했다. 수많은 무대에 서 봤지만 이렇게 부담스러운 적은 처음이라고 하면서,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를 그냥 편하게 부르겠다고 하였다. 약수뜨러 가는 길, 부용산,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마른 잎 다시 살아나, 광야에서, 너를 사랑한 이유, 자유, 산맥과 파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얼마나 더! 를 이어 불렀는데, '어휴, 진짜 노래 잘한다;'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했다.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노래보다 일상을 소박하게 담은 노래들을 더 좋아하는 게 내 일반적인 취향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야에서만 들으면 항상 눈물폭풍이니 이를 어쩜 좋아. 나의 촌스러운 정서가 조금 우스웠지만 그래도 자꾸 눈물이 났다. 자유나 산맥과 파도는 평소에 괜히 부담스러워서 잘 안 듣게 되는 노래들이었는데 그날은 자리가 자리인지라 마음에 잘 스며들더라.


공연 후 우연히 읽게 된 누군가의 후기에는 '그날 안치환은 도대체 왜 나온 거냐'는 말도 있었다만...글쎄. 안치환 세대가 아닌 나에게도 그의 음악이 충분히 감동적일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안치환의 음악과 존재 자체가 그날 의미없는 건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세상에 내놓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던 음악들과 그 음악의 메시지들이 현재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 참 슬플 뿐. 안치환과 다른 뮤지션들의 음악이 조화롭게 어울리지 않았다는 인상을 받은 관객도 있을 수 있겠지만, 후배들의 무대를 망치고 싶지 않다며 겸손하게 노래를 시작하던 그의 표정은 누구보다 진지했고 그의 목소리는 누구보다 절절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