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 1. 20:13ㆍ흔드는 바람/베끼고
아내야, 거기선 지구를 몇 바퀴 돌아온 먼지 한 점도 여행자의 어깨에 내려 반짝일 줄 안단다. 설산에서 흘러내린 물방울은 몇 넌 년 전 우리 몸속에 있던 울음소리를 닮았지. 네가 아플 때 나는 네팔 어디 설산에 산다는 독수리들을 생각했다. 한평생 얼음과 바위틈을 헤집고 다니던 부리가 마모되면서 더는 사냥을 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굶어 죽어가는 독수리들. 그러나, 힘없이 굶어 죽어가는 독수리 떼 사이에서 어느 누군가는 마지막 힘을 다해 설산의 바위를 찾아 날아오르지. 은빛으로 빛나는 바위벽을 향해 날아가 자신의 부리를 부딪쳐 산산이 으깨어버리기 위함이라는데, 자신의 몸을 바위벽을 향해 내던질 때의 고통을 누가 알겠니. 빙벽 앞에서 질끈 눈을 감는 독수리의 두려운 날갯짓과 거친 심장박동 소리를 또 누가 알겠니. 부리를 부숴버린 독수리의 무모함을 비웃듯 바람 소리가 계곡을 할퀴며 지나가는 히말라야. 주린 배를 쥐고 묵묵히 바위를 타고 넘는 짐승의 다친 부리를 너는 알지. 발가락 오그라드는 뿌리들 뻗쳐오른 뿔 끝에 반짝이는 빛을 알지. 머잖아 쓸모없어진 부리를 탓하며 굶어 죽는 대신 스스로 부리를 부숴버린 독수리는 다시 새 부리를 얻는다. 으깨진 자리에서 돋아나는 새 부리만큼의 목숨을 허락받는다. 대대로 숨어 유전하는 설화처럼 허위단심 몇 억 광년을 걸어 내게로 온 아내야, 우리가 놓친 이름들을 헤며 아플 때 네 펄펄 끓는 몸으로 지피는 탄불이 오늘도 공을 치고 돌아온 내 곱은 손을 녹여줄 때 나는 생각했다. 네팔 어디 혹한에 벼린 부리처럼 하늘을 파고든 채 빛나는 설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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