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911 <지금 여기의 진보> 발간기념, 홍세화 & 심보선 대담 @문지문화원 사이 (3)

2012. 9. 18. 23:02흐르는 강/소박한 박스

대담의 마지막 파트는 관객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으로 진행됐다. 진보신당을 두고 지식인들의 엘리트정치라는 비판이 있는 데 대한 생각, 통합진보당에의 쏠림과 진보신당의 낮은 지지율에 대한 생각 등을 묻는 데 대해 홍 대표는 우선 통합진보당이 '통합진보당'이라는 이름을 쓴 것에 대해 문제 제기하셨다. 진보신당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통합진보당'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은 사실 인간적인 예의가 아니(라고 나 역시 생각해 왔)지 않은가. 심지어 함께 진보신당에 있었던 사람들이 그런 이름을 써도 되느냐고 반문하셨을 때는 심상정이나 노회찬에 대한 언급이 아닌가 생각했다. 감정적 서운함이 없을 수 없는 문제일테니.

글을 쉽게 쓰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쑥스러운 듯 인정하셨다(...그럴 수밖에 없으셨을 테다;). 언어를 '우리화'할 여유가 부족한 상황에서 될 수 있는 한 정확하게 언어를 쓰려고 노력하다보니 쉽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지 못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의 한계들을 '옳음/옳지 않음'에 대한 문제로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박하셨다. 특히 '현실'이 억압적인 언어로 쓰이는 한국 사회에서는 이런 접근이야말로 현실추수주의에 빠질 수 있는, 위험한 것이라 말씀하셨다.
 
검은 백팩을 메고 오신 진보신당 홍세화 대표.

사실 처음 저 말씀을 들을 때는 그 의미가 팍 와닿지 않았는데, 지금 키보드를 두드리며 생각해 보니 '진보신당에 현실적 한계가 있다'는 것과 '진보신당이 틀렸다'는 것을 등치화하는 일부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아니었나 싶다. 지난 총선을 앞두고 홍 대표가 뉴욕타임스 같은 데 나와서 진보정치의 할 일을 이야기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이상주의에 빠졌다' '현실을 모른다' '저러다가 제표깎아먹기로 결국 새누리당 좋은 꼴 만들어주는 거다' 등등의 비난을 퍼붓던 때가 문득 떠올라 마음이 좀 아팠다. 현실이 이렇든 저렇든 존재함으로써 가치를 발하는 있는 것이 분명 있는 것인데, 현실을 들이밀며 존재마저 밟아버리려 하는, 특히나 '反MB' '反새누리' '反조중동' '反수구꼴통'이라는 기치 이외의 것들은 다 사소하고 중요하지 못하다고 치부해 버리는 그들이야말로 그들이 비난하는 'MB' '새누리' '조중동' '수구꼴통'보다 대체 얼마나 '진보적'이라는 것인지..아오. 내가 이래서 학교다닐 때부터 너희들을 안 좋아했던 거야-_-
 
총선 득표수 242,995. 2%에 한참 못 미치는 1.13%.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초라해 보이는 득표수. 홍 대표에게도 그리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홍 대표가 비례대표 6번이었던 박노자 교수에게 이 득표수를 전했을 때, 박노자 교수는 밝은 목소리로 "1퍼센트 넘었어요?!"라며 깜짝 놀라했다고 한다. 한국과 같은 곳에서 진보신당이 1퍼센트 지지율을 넘겼다는 것을, 박노자 교수는 희망의 증거로 보았던 것인가. 결국, 홍 대표의 말씀처럼, 끝없이 패배하는 자에게 이길 자가 누구겠는가. 없으리라, 끝내, 없으리라.
 
홍 대표의 말씀을 듣는 심보선 시인. 이 분, 경청하실 때의 표정이 참 맑았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때가 때인지라 대선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두분 다 '어쨌든 박근혜는 안된다'고 하셨다. 홍 대표는 프랑스에서 알고 지낸 역사 교수가 '인간이라면 부끄러움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라고 했다는 말씀을 언급하시면서 박근혜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대신하셨다. 역사는 진보한다 해도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진행은 단선적이지 않다, 잘못된 것은 혐오할 줄 알야아 한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더욱 공감됐던 건 심 시인의 말씀이었는데, 심보선 시인은 오늘날의 한국을 '수용소'에 비유하셨다. 오늘날의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수용소에 갇힌 자와 같은 처지라고 하면 되려나. 운이 좋게 착한 소장이나 간수를 만날 수는 있겠지만, 어떤 소장이 오더라도, 내가 '갇힌 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간에, '갇힌 자'라는 나의 위치가 한방에 변화하지 않음은 자명한 것이다. 그래서 심 시인은 대선을 기다리는 현재의 마음은 '착한 교도소장이 오기를 기다리는 수인의 마음'이고, 그 과정에서 어떤 가치들이 잔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많다고 말씀하셨다. (들으면서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그러다 보니 심 시인은 20&30대 및 진보적 성향을 가졌다고들 하는 젊은이들이 지지할 정당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번 대선을 앞두고 20&30대와 정당의 만남이 잘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에도 당연히 비관적인 전망을 하셨다. '나를 위한 정당'을 찾게 되는 날이 과연 젊은이들에게 올 것인가, 소통이 이루어지는 토대 자체가 없는 현실에서 정당과 젊은이들의 진정한 만남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을 질문자에게 되돌리시는 심 시인의 모습을 보며 이념적 동지를 만난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ㅎㅎ 솔직히 그 질문을 들으며 이 나라에 새누리당-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이외에 몇 개의 정당이 어떤 기치를 내걸고 어떤 운동을 하며 지내고 있는지 과연 찾아나 보고 저런 질문을 하는 것인가, 또한 진보신당의 대표가 있는데 이런 질문을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예의에 어긋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조금 마음이 불편했던 터라.
 
한 초등학교 선생님의 "초등학교 4학년 애들에게 어떤 얘기를 해주시겠냐"는 질문에 대해 홍 대표는 <생각의 좌표>에서 언급하신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하셨고, 'L로 시작하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단어'에 대해 이야기하겠다고 하셨다. (세 단어는Liberty, Love, Labor였다 :) 나는 Love보다 Liberty를 먼저 떠올렸다-_-) 그리고 심 시인은 노동과 영혼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이 얘기는 너무 아름다운 이야기라 나도 모르게 동영상으로 찍어 버렸다. 화질이 나빠서 아쉬울 뿐ㅠㅠ 

나도 막판에 난잡한 질문을 하나 했는데; 사실 질문이라기보다는 '염려'를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나는, 물론 참 많이 고민했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총선 때 진보신당에 투표했고, 내 생에 남은 선거들에서 내 표를 '사표'로 만드는 데 조금의 두려움이나 죄책감이 없는 인간이라 '결국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투표할 테다. 그러나 과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운동할 사람들은 괜찮을까? 지금처럼 통합/단일화가 정답처럼 이야기되는 상황에서 상처받지 않고 나아갈 수 있을까? 이에 대해 홍 대표는 진보진영이 피선거권도 없는 상황에 직면한 현실을 한숨섞인 어조로 언급하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진영의 발언이 민중의 삶과 조우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는 뉘앙스의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 그 말씀이야말로 '답'이 없는 말씀이다보니 들으면서도 가슴이 약간 먹먹했다.

그렇지만 홍 대표가 기대 이상으로 너무나 멋지게! 불러주신 샹송 덕분에, 다행히도 훈훈한 분위기로 대담이 마무리되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결국, 나는 어찌할 것인가, 나는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가야 할 것인가, 하는 미해결의 질문들과 갑갑한 마음을 안고 집에 돌아가야 했지만, 그래서 왠지 누군가 툭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툭툭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렸지만, 사실 그 질문이 미해결 상태에 놓여있는 건 '답을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으려 하는 나' 때문이라는 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알지 않는가.

결국 답은 똑같다. 이 책의 제목과 다를 바 없다. 지금, 여기서, 내가 발붙이고 있는 이 땅을,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정말 손톱밖에 안되는 미약한 힘이라 하여도, 아낌없이 더해야지. 그것이 너무나 미약할지라도, 사소할지라도, 가시적인 결과를 그 무엇도 이뤄내지 못하는 것 같아 보여도, 그렇기에 더더욱 지침없이, 집요하게, 즐거워하며, 더해야 하는 것이다. 게으르게 머물러 있지 말고, 더 배우고, 더 듣고, 더 읽고, 더 생각하고, 더 말하고, 더 움직이면서. 지금 당장. 그런 의미에서, 많은 '고민의 지점'을 만들어 주신, 심보선 시인과 홍세화 대표께 감사한다. 책 잘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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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사진들 ㅎ

심보선 시인이 홍세화 대표의 말씀을 들을 때, 너무 소년 같은 표정을 짓고 있어서 사진을 안 찍을래야 안 찍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온 신경을 다해' 남의 말에 집중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은 정말 오랜만이다. 이분의 말씀만큼 이분의 표정도 인상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