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7. 1. 13:13ㆍ흐르는 강/소박한 박스
블로그를 팽개쳐놓은 지 너무 오래 되어서-_- 도대체 이게 얼마만에 쓰는 글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트위터는 비교적 꾸준히 쓰고 있으며 페이스북도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는 들어가보는데 블로그는 거의 손을 놓고 있었다. 4월 총선 이후의 멘붕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된 탓...도 아니고, 뭔가 쓸 거리가 없었던 것...은 더더욱 아니고, 내 블로그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이승열락커님 관련 사건(?)이 하나도 없었거나 내가 승열오라버니의 공연에 한 번도 가지 않았던 것...은 더더더더욱 아니다. 그렇다고 비밀번호를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렸던 것도 아니다. 결국은 늘 똑같은 합리화의 반복이다. '사는 게 바빠서'.
이놈의 '사는 게 바빠서'는 2008년 이후 5년째 변함없이 내뱉고 있는 말이다. 아무 성찰 없이, 습관적으로, 타성적으로. 정말 바쁜가? 맞다, 바쁘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들 때까지 쉴새없이 떠들고 소리지르고 보살피고 관리하고 지도하고 감독한다. 수를 세고 전화를 하고 문서를 만들고 결재를 받고 청소를 하고 인사를 받는다. 짧은 '쉬는 시간'은 정말 잠시 머리와 몸을 '쉬게 두는' 시간일 뿐이다. 그러니 그 시간에 고민하거나 생각하거나 여유를 찾기는 힘들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트위터나 페이스북의 타임라인을 훑고 '좋아요'를 몇 번 누르고 리트윗을 몇 번 하다 보면 '머리가 쉬게 두는 시간'이 끝난다. 머리보다 몸이 더 지쳤을 때는 그러기도 힘들다. 그저 긴 트레이닝복 상의를 뒤집어 쓰고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할 뿐.
직장을 떠나 집에 오면 상황이 좀 낫나? 글쎄, 적어도 주중엔 똑같다고밖에 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집에 오는 시간 자체가 늦는 데다가 씻고 자기 전까지 머릿속으로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는 여유가 너무 부족하다. 그저 '졸리다 피곤하다 자고 싶다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가는구나' 정도의 기분 혹은 감정의 찌꺼기가 침대에 오르기 전 남아 있을 뿐이다. 그나마 올해 상반기는 영미문학관을 한 시간씩 들으며 일주일의 3/7을 승열오라버니 목소리와 함께할 수 있었다고 하면, 좀 나아진 건가. 그렇겠지.
이렇게 사는 게 맞는가? 맞는건가? 직장 업무 면에서 예전보다 조금 더 능숙해졌을지는 모르겠다. 직장에서 사람을 대하는 기술이 예전보다 조금 더 늘었을지는 모르겠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맺어가는 관계의 결이 예전보다 조금 더 부드러워졌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게 내 삶의 질을 진정으로 향상시키고 있는가? 나라는 존재 자체가 성장하고 있는가? 나는 '내 일'이 아닌 '나의 삶'과 '나를 이렇게 살아가게 하는 그분의 의미'에 충실하고 있는가?
물론 감사하며 살려고 노력한다. 기쁨으로 받아들인다. 지금의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도,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 데는 분명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무엇이든지간에 내가 받고 있는 것은 내 분에 넘치도록 좋은 것이라고 믿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아니 종종, 생각도 고민도 없이 감정과 기분만 남기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어떤 중요한 것도 내게 남지 않고 내 곁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저 한 순간 내 속에 들어왔다가 금세 쑥 빠져나간다. 남는 건 그들이 지나갔다는 희미한 자국 뿐이다. 그럴 땐 내가 파이프나 배수관처럼 느껴진다. 당연히 파이프나 배수관 같은 '통로' 역시 그 나름의 가치를 분명 가지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통로보다 통로를 지나가며 증식하는 세포가 내게 더 잘 어울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출발점이나 도착점이 되지는 못할지언정.
얼마 전, <두개의 문>을 보고 오는 길에 다짐했다. 더 많이 알려고 애쓰자, 내 힘 따위 너무나 미약하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더 둘러보며 살자, 죽을 때까지 이 잔인한 세상을 생명이 살 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제발 좀 해 보자-정말 손톱만큼이라도 노력해 보자, 라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은 없다. 사실 할 수 있는 일은 많으니까. 안 하려고 하거나 귀찮아 하거나 시간의 핑계를 대왔을 뿐이라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더 읽고, 더 생각하고, 더 쓰고, 더 얘기하고, 더 기부하고, 더 움직이고, 더 기도하고, 더 채울 것이다. 덜 불평하고 덜 원망할 것이다. 그것이 선을 이루는 내 방법일 테다.
할 일이 많다. 부디 지혜롭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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