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글스, 한화 이글스.

2005. 8. 19. 21:37흐르는 강/소박한 박스

야구를 좋아한다. 너무 좋아한다는 말 이외의 그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그저 좋다, 마냥 좋다. 큰 즐거움이자 낙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큰 영향을 미친 선수와 팀이 여럿 있지만, 그 중 나의 10대를 수놓았던 사람은 빙그레이글스-한화이글스의 간판투수였던 정민철이었다. 당연히 좋아하는 팀은 빙그레이글스-한화이글스였고 :p

사실 빙그레이글스를 좋아하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그 팀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아는 것도 없던 어린 시절에 우연히 그 팀의 게임을 보게 된 것이다. 어찌나 불쌍하게 지던지, 게임이 끝날 때쯤에는 연민 비슷한 느낌으로 그 팀을 응원하고 있었을 정도; 아무튼 그 게임 덕분에 나는 빙그레 선수들은 주황색 세로줄무늬가 있는 유니폼(이 또한 얼마나 촌스러운가)을 입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중 장종훈이라는 선수가 홈런을 뻥뻥 날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빙그레를 조금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정민철이라는 투수를 알게 된 후, 그 연민과 '작은' 호감은 광적인 애정으로 바뀌었다. 소년같이 해맑아보이는 미소와 귀여운 표정, 낭창낭창 버들가지처럼 유연한 몸매, 20대 초반이라는 어린 나이에 한 팀의 간판 투수로 자리매김했다는 데에서 느껴지는 카리스마. 오오,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던 것이다.

열심히도 야구중계를 보고 들었으며(당시에는 라디오 중계도 거의 매일 있었다) 사흘이 멀다하고 스포츠신문을 사다 모았고 팬레터와 온갖 선물을 보내는 건 물론이요 팬클럽에도 가입했다. 민철님의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에는 엽서나 카드를 돌려 55장을 채워야 직성이 풀렸고 야구장에 갔을 땐 저멀리 구단 버스나 선수들 등짝만 보고도 감격에 겨워 어쩔줄을 몰랐다. 정말...내가 생각해 봐도 유난스러웠다; 야구를 몇명이 어떻게 하는 건지조차 모르는 주위의 친구들도 정민철이라는 이름 석 자는 알고 있었어서, 스포츠뉴스에서 니네 민철오빠를 봤다는 애도 있었고 신문에 니네 민철오빠가 나왔다며 오린 기사를 전해주는 애도 있었다. 정민태를 정민철로 착각하고 곤란한 소리를 하는 애'들' 때문에 골치아프기도 했지만-ㅅ-+

하지만 한살 두살 나이를 먹어가고 여러 사람들을 알게 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워듣게 되면서, 내가 가지고 있던 열정의 '순수함' 부분은 서서히 증발해 갔다. 제대로 보이지 않았던 부족한 점과 나쁜 점들이 점점 크게 보이기 시작했고, 마음에 안 드는 건 그야말로 한둘이 아니었다. 결국 21세기를 맞으면서 스무살이 된 나에게 그들은 더이상 마냥 좋던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고, 나는 야구장에서 웃고 즐거워하는 것보다 화를 내고 욕을 하며 신경질을 내는 것에 더욱 익숙해졌다. 팀에 대한 증오로 몇 시즌을 버티기도 했다. 다행스럽게도 야구를 좋아하는 마음만은 여전했지만.


지금은 그 팀도 너무 많이 변해버렸고 변해버린 그 팀을 대하는 나의 마음도 변해버렸다. 더이상 나는 한화이글스를 좋아하지 않지만...기억 속 그들의 아련한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짠해짐을 느끼곤 한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아했던 야구팀인 그 빙그레이글스, 잘해봤자 4위에 플옵 올라가봤자 떨어지기 일쑤였으면서 하필 '양대리그 1999년'에 우승해버려서 다른 팀 팬들에게는 '걔네가 언제 우승했어?'라는 소리를 듣기 일쑤인 한화이글스. 정민철, 장종훈, 구대성, 송진우, 한용덕, 송지만, 이영우, 홍원기, 강인권, 데이비스, 로마이어, 이상목...내가 기억하는, 내가 사랑했던, 나의 이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