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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이즈음에

140118, 이즈음에.

근황글을 쓰지 않은지 한 해 하고도 한 달이 더 지났다. 쓰려면 작년에 썼어야지. 근데 쓸 수가 없었다. 무슨 말로 글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기분이었다. 내 삶을 보는 눈과 시간을 보내는 방법과 하루와 일년이 갑자기 변해 버린 걸 뭐라고 정의하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마지막엔 가족밖에 없어, 라는 진부한 자기변명이나 가족이니까 사랑해야 하는 거야! 따위의 폭력적인 결론은 아니었으면 헀다.

간단히 적자면, 아버지가 편찮으시다. 병원에서는 약도 치료법도 없는 병이라 한다. 재작년부터 안좋아지셨고, 오늘이 정확한 병명을 확진받은지 딱 일 년 되는 날이다. 덕분에 내 삶도 생활도 아버지 중심으로 완전히 바뀌었다. 출근하면정말 눈코뜰새없이 바쁘게 일하고, 그래서 최대한 야근하는 일 없이 서둘러 퇴근하고, 귀가한 후 다른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를 간병한다. 사람들 만나는 약속도 공연 보러 가는 것도 거의 하지 않는다. 그냥 집 밖에 나가는 일 자체를 최대한 줄이고 줄였다.


…지방에서 고등학교 졸업식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온 후 수도권에 있는 4년제 대학을 다니고 수도권에서 취업을 하거나 학업을 이어가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던 시절이 있었다. 스무 살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독립할 수 있으려면 그런 식의 흐름이 있어야 할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했으니까. 기숙사에 들어가거나 자취를 하는 아이들이 부러웠다. 
대학교 3학년을 마칠 때까지 서울에서 쭉 살다가 4학년이 되기 전 일산으로 이사와서 또 쭉 살고 있는 나에게, 온전한 내 방과 내 집은 없는 것 같았으니까.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도 한동안 나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부모님의 집을 떠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현재의 직업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고.

그러다가 몇 년 전 앞으로 부모님과 함께 살 날이 이제까지 살아온 날보다 훨씬 적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계기가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남아 있는 건 그 생각을 처음 떠올린 순간의 놀라움과 가슴이 쿡쿡 찔리는 듯한 아픔이다. 부모님의 죽음이 먼 미래에 일어날 수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는 일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반드시 일어날 일임을 인지했던 순간, 나도 모르게 집을 나가 살겠다는 욕망이 마음 속에서 사그라들었다. 지금처럼 이렇게 살고 싶어도 살 수 없을 날이 곧 오리라는 데 대한 자각 때문이었을 게다. 그러니, 남은 동안, 지금의 삶에 불평하며 굳이 벗어나려 하지 말자는 현실 인식 혹은 체념.

지금은 뭐랄까, 삶의 순간마다 죽음을 실감하고 있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곧 죽어가는 순간임을 깨달으며 살고 있다. 지금처럼 이렇게 살고 싶어도 살 수 없을 날이 곧 오리라는 게 아니라, 그냥 곁에 있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절망적이거나 괴롭진 않다…는 건 물론 거짓이다. 순간순간 슬프고 마음 아프고 불안하고 걱정하고 괴롭다. 하지만 감사하다. 이렇게 아버지의 삶을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다는 게. 아버지의 코끝에서 숨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에 감사할 수 있는 기회가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주어져 기쁘다. 


…아버지를 미워하거나 답답해하기보다는, 갑갑해했다. 내가 아는 아버지의 모습이 아버지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아버지를 인간으로서 존경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갑했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른 답이 없으니 이대로 지낼 수 밖에 없겠다 싶어 포기했었다. 그래서 짜증났었다.

지금은 갑갑함도, 포기도, 짜증도 다 잊었다. 
아버지가 편찮으시지 않았어도 잊을 수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 같은 생각은 안 한다. 이러지 않았으면 이렇게 안 됐을지도 모르니까. 어쨌든 지금의나는 죄송하고 감사하다. 그래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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