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707, 현대카드 curated 35 이승열 <요새드림요새>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2]

2017. 7. 10. 22:38💙/언제나 내곁에

2011년, 메리홀에서 있었던 why we fail 앨범 발매 기념 공연 때 오라버니가 앨범에 수록된 곡들을 트랙 순서대로 쭉 들려주셨다. 그때는 정말 짙은 어둠 속에서, 등불(사실은 랜턴)을 드신 오라버니가 무대로 나오시고, 관객들로부터 이승열밴드를 안전하게(!) 차단해 놓은 막 안으로 들어가셔서, 관객들이 오라버니와 물리적 거리감뿐만 아니라 심리적 거리감도 조금 더 '확실히' 느끼는 상태에서 공연을 볼 수 있게 하셨었다. why we fail의 곡들을 연주하시는 내내 말씀 한 마디 안 하셨고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도 자제해달라고 하셨었으니까.


첫날 공연 끝난 후 '아니 너무 멘트 없이 노래만 하는 거 아니냐'고 아쉬워하는 분들도 계셨지만, 나는 그 공연을 참 좋아했었다. 오라버니가 멘트를 많이 하시는 공연도 좋지만(내가 싫어하는 이승열의 무언가는 1도 없으니깤ㅋㅋㅋㅋㅋ 모든 걸 다 좋아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멘트 없이 쭉 연주만 이어지던 메리홀 공연에서는 그 어둠 속에서 내가 이승열밴드에게만 집중할 수 있도록 시공간이 구성된 것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오라버니가 나와 '함께' 있다는 느낌과는 좀 다르다. 전지적 존재처럼 계셔서, 나와 같은 공간에 있지만 그 공간을 공유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에 더 가까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 존재 자체-이승열밴드와 이승열밴드의 음악-를 그냥 온전히 최선을 다해 받아들이는 것. 그 때의 충만함과 몰입감은 이후의 어떤 공연에서도 반복되지 않았다. 2011년의 여름과 가을, 오직 그 때 그 곳에서만 가능했던 것 같다.


이번 요새드림요새 공연의 앞부분 역시 그 때처럼 앨범에 실린 곡들이 쭉 연속되어 연주되었지만, 그때와 분위기는 꽤 달랐다. 그때의 이승열이 어둠 속에서 관객들과 분리되어 존재했다면, 이번의 이승열은 화려한 조명 속에서 관객들과 가벼운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함께 호흡하며 존재했다. 그렇지만 그분의 음악과 존재감은 너무나 강렬하고 특별했기에, 그날 그 곳에서의 이승열은 <2017년 7월 7일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라는 시공간을 공유하던 그 누구와도 '비교될 수 없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무대를 이끌어갔다. 최근에 '타자의 추방(한병철)'이라는 책을 읽다가 단독성singularität이라는 개념과 아토포스atopos라는 개념을 함께 접했는데, 나는 그 두 개념을 보자마자 자연스럽게도 승열오라버니를 떠올렸던 것이다하하하하. 비교 가능성을 전제하는 진정성과 달리 비교가 불가능한 속성. 타인들과 함께 있으나 그들과 다를 뿐만 아니라 그들과 다른 모든 사람들과도 다른 존재.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단독적으로 존재하는 사람. 그 압도적인 존재감이, 내가 승열오라버니를 볼 때 느끼는 감동인 것 같다.


게다가 이번 공연은 메리홀 때와 달리 멘트도 좀 있었는데, 사실 오라버니는 초반에도 멘트를 좀더 하실 마음이셨던 것 같았다. 오빠가 두 번째 곡 초반에 뭔가 말씀을 하시려고 했는데("맛있는 거 드시고 오셨냐"는 얘기를 하시려고 했던 것 같았닼ㅋㅋㅋㅋ) 이승열밴드 멤버들이 짤없이 연주를 시작해버리셨던 게 가장 인상적이었음. 기다려주고 이런 거 없이 좌라락 곡을 이어가셔서 검은 잎까지 달려가셨다.



오라버니의 맥북이 무대 전면에 위치하지 않았던 것도 오랜만.

공연이라 혼 세션이 나오실 줄 알았는데 없어서 조금 의외였다.

전영호-정명훈-이경남-신동훈-윤상익, 그리고 이승열. smmfot 때다 :)

smmfot은 라이브로 하시기 어려운 곡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라이브 버전도 매력있었다!

오라버니가 부르시는 smmfot의 가사도 좋고

so many mother fucker outta there 맞나…암튼 어려운 가사 랩처럼+_+ 부르시느라 명훈오빠가 수고 많으셨다.

명훈오빠 코러스 때 오라버니가 웃으셨는데, 그건 못찍었곸ㅋㅋㅋㅋㅋㅋ

이걸 찍은 나에게는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smmfot 다음은 너무 사랑하는 노래ㅠㅠㅠㅠ my own. 이 노래는 너무 좋아하므로 또 쳐울면서 들었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 요새드림요새 앨범에서 나의 확실한 눈물지뢰 두 곡은 I saw youmy own이라는 걸 첫날 확실히 확인할 수 있었다. 아니 두 곡 다 너무 아름답고 성스러워가지고ㅠㅠㅠㅠㅠㅠㅠ 감동을 안받을래야 안받을 수가 없음. 그리고 전체적인 앨범의 흐름상 이 두 곡에서 눈물이 나는 건 당연하기도 하다(고 주장해 본다).


나는 오라버니 앨범을 들을 때마다 트랙의 순서가 만들어내는 흐름에 늘 감탄하는데, 이번 앨범 역시 마찬가지다. 지나간다cup blues가 들려주는 위무로부터 시작되는 요새드림요새는 '인간들 속 인간'의 노래처럼 느껴지는 도시애smmfot & 신 앞에 선 인간의 노래처럼 들리는 I saw youmy own을 교대로 지나치며 진행된다. 도시애ssmfotI saw you my own보다 가벼운 편이다. 고통을 실감할 때의 유쾌함 같은 게 느껴진달까. 모두와 함께 있지만 누구도 믿을 수 없어 '모든 게 즈즈'라 되뇌이며 '잃어버린 도시에 너구리'라고 스스로를 자조하듯 부르는 화자의 씁쓸한 위트. 힘에 부친 상황을 농담으로 유쾌하게 넘겨버리려고 하지만 결국 그럴 수 없을 것이 예정되어 있는, 그래서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유머.


I saw youmy own은 훨씬 무겁다. 끊임없이 기억들을 고치며 희망을 찾아다니지만 의자-운명 혹은 인간으로서의 한계에 묶여 있어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없는 존재가 자기 자신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화자의 비애가 진하게 묻어 있기 때문이다. 그 비애 속에서 수도 없이 속고 수도 없이 울면서 저주하고 이를 가는 것이 인간. 이런 인간의 삶이란 당연히 나약하고 추잡한 시간.


그러나 이승열의 음악은 '그러므로 삶은 무가치하고 인간은 별 것 아니다'라며 조소를 퍼붓지 않는다. 인간은 어둠이 온 것 같다는 생각만으로도 꼼짝할 수 없게 숨어버릴 만큼 나약한 존재이지만, 자신의 나약함을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여기 아닌 다른 곳으로 나를 데려가달라고, 내가 달려가겠다고, 끊임 없이 꿈을 꾸고 바라며 소망하는 것이다. 자신의 기대가 배반될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계속 그 기대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자신의 몸이 깨어지고 할퀴어지더라도 스스로를 상해 가며 부딪치고 부딪히는 것이다. 커다란 벽을 무너뜨리겠다며 계속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돌멩이처럼. 그렇기에 인간은, 인간의 삶은, 성스럽고 고귀한 것이라는 진실을, 나는 이승열의 노래를 통해 늘 배운다.


그래서 my own에 이어지는 곡이 vulture임은 당연한 귀결처럼 느껴진다. 이런 이유로 인간은 beautiful creature just like a vulture flying in the night sky라는 데 동의하게 되니까. 남들은 무모하다고 한심해할지도 모르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고, 기대와 소망을 안은 채 어두운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독수리, 그와 같은 것이 인간이고, 이승열의 노래를 듣고 있는 당신이니까. you are a creature.



…아아 쓰다보니까 이번 공연에서 오라버니의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던 것들이 정리되는 느낌이긴 한데 또 너무 내생각을 승열오라버니의 의도처럼 쓰고 있다는 생각이 팍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덕분에 현실로 돌아왔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런 얘기를 쓸 때마다 반드시 덧붙이는 문장이지만 위의 생각은 뮤지션 이승열의 의도와 일치하지 않을 가능성이 적지 않습니다. 리스너이자 이승열의 오랜 팬으로서 이승열의 음악을 들으며 느끼는 감상이오니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물론 1도 일치하지 않으면 너무 슬프겠지 나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러면 조금 안심하고(????) 첫 날 공연 사진을 좀 더 덧붙여보자면.

 

smmfot이 끝나고 my own 때.

이번 공연에서는 오라버니가 기타를 안 치신 곡들도 꽤 있었는데

그 중 한 곡이 이 my own.

그리고 vulture 때도 기타를 안 치셨다.

근데 나 첫날 vulture 때 완전 넋놓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사진이 있네??????

2절 때 찍은 건가…

연주 시작하자마자부터 you are a creature 때까지 완전 정신줄 놓고 있었는데???????????

I have a gun to my head 두 번째 반복될 때 '와 이노래 장난아니다'하고 정신차렸던 기억이 확실히 나는데

도대체 언제 찍은 것이야…이해할 수가 없다;;;;;;


vulture 다음에는 검은잎이 이어졌는데, 이 때 오라버니가 안경을 벗으셨다!!!!!!!!!!!!!!!! 안경을 쓰신 것도 좋지만 쓰다가 벗으시면 또 좋음. (안쓰시다가 쓰시면 또 좋아하겠지…사람의 마음이란ㅋㅋㅋㅋㅋㅋㅋㅋ) 막 환호 나오고 그랬음. 오라버니 새 노래 가사 보시느라고 안경을 쓰신 것 같았다. (사실 둘째날은 안경 안쓰시고 노래하시다가 가사 한 부분 시원하게 날리셨음ㅋ 컵블루스의 어려운 부분-세상살이의 불안이, 성격장애의 문제가, 사상추구의 강박이, cosmic panic의 상태가-이었다. 나 좀 울락말락 했는데 오라버니가 가사 잊어버려 주셔서 그 때 안 울었음ㅋㅋㅋㅋㅋㅋㅋ 평소처럼 그냥 다른 가사로 부르셨으면 됐는데 조금 당황하셨나. 뭐 새삼스럽게…이런 일 한두번 있는 것도 아니고 전혀 실망하지 않습니다 오라버니?????????)


여튼간 안경 벗으신 김에 또 막 찍었음. 검은잎은 지난 12월 공연 때 들었던 곡이라 조금 덜 긴장하고 상대적으로 더 편안하게 듣기도 했고.


마이크 그림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ㅠㅠㅠㅠㅠㅠㅠㅠㅠ

가사 보시고,

입 속의 검은잎을 몸소 보여주시고…(아님)

누구신데 이렇게 잘생기셨는가…

입속에 검은 잎,

파란색 무지개, 흔드는 바람.

시간은 흐르는 강이요 맨 처음에

우리는 무엇이었나.

노래 듣다가 진짜 고민했다.

나는 맨 처음에 무엇이었나, 무엇이었을까.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검은잎을 들려주실 때도 오라버니가 기타를 안치셨으니까

my own, vulture, 검은잎 세 곡을 쭉 기타 없이

오라버니의 목소리로!!!!! 들려주신 건데

오라버니의 목소리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으니까 좋으면서도

(이 사진은 오빠가 싫어하실 것도 같지만 나는 너무 좋아서ㅠㅠ 제 눈에 아름답지 않은 이승열은 없습니다)

기타를 메지 않으신 오라버니를 보면

조금 아쉽기도 하고…뭐 다 장단점이 있다.

이렇게 검은잎까지, 아름다웠던 여덟 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