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5. 2. 20:57ㆍ흐르는 강/이즈음에
5월 두 번째 날이다. 5월이 되면 5월 12일을 들어줘야 하다 보니, 오늘도 아침에 출근하면서 5월 12일을 들었다. 박재정 버전으로. 작년에도 박재정이 부른 5월 12일을 블로그에 올렸었는데 올해도 5월이니 올려볼까나. 똑같은 버전으로 올리면 재미없으니까 리슨 스테이지에서 부른 버전으로…
박재정-5월 12일(2019년 리슨스테이지)
찍어주신 재정씨 팬분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ㅠ 재정씨 미스틱 있을 때 리슨스테이지 한 번 가보는 게 소원이었는데 결국 한 번도 못가봤다. 다시는 재정씨가 리슨스테이지에 서는 일이 없겠지. 뭐 한 십년 후라면 몰라도 당분간은 없겠지…ㅠㅠㅠㅠㅠㅠㅠㅠ 애니웨이.
5월도 된 김에 2022년의 네 달 동안 내게 얼마나 나쁜 일들이 많았는지를 좀 돌아보려고 한다(쓰다가 빡쳐서 노트북 부수는 건 아니겠지). 우선 1월부터 천천히 돌아보자면.
작년에 직장을 옮기고 5년 정도 안 했던 업무(이걸 B라고 하자)를 오랜만에 했다. 사실은 그 5년 동안 내가 선호하는 일(이건 A라고 하자)을 한 셈이다. 2020년에 '내가 A를 너무 오래 하고 있는 거 아닌가. B도 좀 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싶어 오랜만에 변화를 줘 본 셈인데, 매우 후회스러웠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차피 직장 일 이거 해도 싫고 저거 해도 싫다면 그나마 선호하는 A를 골랐어야지-_- 그래서 2022년에는 A를 맡고 싶었다. 그러나 2021년말 직장 내 여러 인사 이동이 발생하면서 내 희망은 산산조각났다. 내가 2021년 3월부터 하고 싶어했던 A를 하기 위해서는 특정한 부서에 가야만 했는데, 그 부서에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왜냐하면………………부서장 이동이 있었는데, 내가 가고 싶던 부서에 정말 피하고 싶던 부서장이 발령난 것이다.
1월의 나는 2022년에 뭘 해야 하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심정이 되어버렸고 아무 것도 하기 싫어져버렸다. A를 할 수 없게 된 상황에서 B나 C나 D나 E나 F나 전부다 맘에 안들었다ㅠㅠㅠㅠㅠ 희망하는 업무에 지원해야 했는데 희망하는 업무가 없어지다보니 지원할 수가 없어 계속 망설이고 또 망설였다. 진짜 개심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와중에 2021년 정점을 찍은 마스크트러블은 이제 더이상 치료를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열심히 피부과를 다녔다. 피부와 이빨만큼 부익부 빈익빈이 명확히 드러나는 신체가 없다는 말을 떠올리면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처음 상담받을 때는 금세 트러블 자국이 샤라락 사라질 것 같은 기분이었지만(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 마음이 이렇게 어리석다;;;) 실제로는 아주 천천히 좋아졌고 사실 1월의 내게는 별 차도가 느껴지지 않아 돈을 이렇게 많이 썼는데 얼굴이 그대로면 어쩌나 하는 마음에 약간은 암울했었다. 생각보다 큰 지출을 했으므로.
그와중의 나에게 낙이 되었던 건 우리 승열오라버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찬 공기를 맞아가며 산책하는 일. 이 두 가지였던 듯. 공기가 맑고 찬 날 눈사람이 되겠다는 심정으로 옷을 겹쳐 입고 산책을 하면 마음이 좀 편해졌다. 오라버니를 보면 살겠다는 기분이 들었던 거야 뭐, 굳이 말할 필요도 없고.
2월이 되어 받은 새 업무는 작년보다 더 어렵고 힘든 것이었지만, A가 선택지에서 사라져버린 당시로서는 내가 받을 수 있는 최선의 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큰 불만은 없었다. 하지만 대선이 1개월 앞으로 다가왔고 설마설마 했었던 차별주의자가 진짜로 대통령이 될 것 같은 분위기가 팽배해진데다가 오미크론은 폭발 지경으로 직장에서 퍼지고 있었으므로 나는 돌아버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주위에는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데 어디에 이렇게 많다는 거지? 라는 기분이 이명박 당선 전이나 박근혜 당선 전의 기분이었다면, 2월엔 좀 달랐다. 버스를 탈 때면 이 중 50프로는 그자를 지지하는 사람이겠거니 싶어 괴로웠고, 지하철을 탈 때도 이 중 50프로는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겠거니 싶어 고통스러웠다. 길을 걷다가 특정한 연령대의 사람을 보면 이 사람도 그를 지지하겠지 싶어 이마가 찌푸려졌고, 호수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도 내 앞에 선 누군가가 그를 지지하는 사람일 것 같아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 주위에 그를 지지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을 텐데, 심지어 내 주변 사람들 중 50프로 정도 있을 텐데, 도대체 누굴까? 누가 몰래 그를 지지하고 있을까? 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기도 했다.
뉴스는 거의 안 봤다. 내가 접하는 거의 유일한 미디어는 XSFM의 방송이 되어버렸으니까. 나도 편파적인 인간이라 편안한 마음으로 뉴스를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넷플릭스를 더 열심히 봤다. 옷소매붉은끝동도 워낙 열심히 봤고, 여운에 빠지고 싶지 않아 바로 이어 봤던 런온은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덕분에 임시완배우가 나오는 트레이서 1부도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프렌즈 정주행을 마치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와 언브레이커블키미슈미트와 산타클라리타다이어트와 굿플레이스 정주행도 함께 마쳤다.
전부다 블로그에 포스팅을 할 작정이었다. 우선 산타클라리타다이어트에 대해 포스팅을 하나 하고, 하나를 더 이어서 했다. 그런데 두 번째 포스팅이 신고당했다. 불건전한 포스팅이라고 했다. 산타클라리타다이어트는 사람의 신체를 먹는 언데드가 주인공이기에, 그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약간은 공포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이미지를 함께 올렸었다. 그 이미지들이 다 불건전한 이미지로 신고됐고, 카카오에서는 일주일 간 블로그를 못 쓰게 했다. 포스팅은 블라인드 처리가 됐고, 이후 삭제됐다.
나는 약간 억울했다. 그 이미지들은 내가 따로 캡처한 것이 아니라 그냥 구글에서 SANTA CLARITA DIET를 검색하면 첫 화면에 나오는 것들이었다. 물론 게리의 머리 사진 같은 게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만, 산타클라리타다이어트의 등장인물 얘기를 하면서 '게리의 머리' 얘기를 어떻게 안 할 수 있단 말인가ㅠㅠㅠㅠㅠ 배우들이 피칠갑하고 있는 사진 역시 누군가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데 동의하지만, 산타클라리타다이어트에서 피가 나오지 않는 에피소드가 한 회라도 있단 말인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지만 이 억울함을 카카오는 받아주지 않았다. 열심히 포스팅을 하려고 의욕을 불태우고 있던 나는 짜게 식어 버렸다. 범죄의재구성을 다 봤고 그레이트뉴스와 소년심판을 다 봤고 블랙미러와 미란다(앗 이건 쿠팡플레이)와 리타와 제인더버진과 그레이스앤프랭키를 보면서도 포스팅할 흥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대선날. 그알싫 데이터센트럴을 3회차 다시 듣고, 6시가 되기 10분 전에 투표를 했다. 제발, 하는 마음이었는데, 그 마음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그의 득표율이 상대 후보를 앞서기 시작했던 12시 40분경, 나는 2011년 겨울처럼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기분이 되었고, 새벽 3시 반까지 자다 깨다 자다 깨다 하면서 개표 상황을 확인하다가 결국은 잠들었다. 잔뜩 어두워진 마음으로. 그다음날 출근해서는 휴........................................ 시시각각 온몸을 뒤덮는 무력감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었다. 이거 해서 뭐하나, 이놈의 세상, 무슨 보람이 있나, 같은 생각이 계속 들어서 그냥 한숨만 나왔다.
그와중에 직장내 확진자는 날이 갈수록 늘어났고, 나는 추가업무를 계속 해야만 했다. 안그래도 원래 일이 다른 팀원들보다 많은 편인데 추가업무가 더해지니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사실 추가업무를 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는 불평하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코로나에 걸린 동료나 선배들이 걸리고 싶어서 걸린 것도 아니니까, 누군가가 아프면 남은 이들이 짐을 나눠 맡는 게 당연하지, 그게 조직이지, 라고 생각했으니까. 기분나빴던 건 '확진된 동료들'을 '잘못한 사람들'처럼 여기는 관리자들이었다. 아픈 사람들은 쉬는 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는데, 오미크론이 무섭게 전파되던 시기에 직장의 동료들에게는 '쉬는 것' 대신 '재택근무'가 강요됐다. 그 과정에서 관리자들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계속 확인했고, 짜증이 났다. 안그래도 인간을 싫어하는데 3월 20일 전후로는 인간이 진짜 너무너무너무너무너무 싫었다.
3월 마지막 금요일, 세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것 같으니 내가 바꿀 수 있는 거나 바꿔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전화번호를 바꿨다. 이전에 사용하던 번호가 꽤 좋은 번호이긴 하지만(지금도 이 번호에 정이 많이 들어 있다...) 너무 이사람저사람에게 다 알려진 번호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2021년부터 해왔던 터였다. 그래서 약간은 충동적으로 번호를 바꿨다.
그리고 그다음날 준석님이 돌아가셨다. 번호를 바꾼 다음날, 준석님의 부고 소식을 들은 셈이다. 아무 상관 없는 일이라는 거 아는데도, 괜히 번호를 바꿨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게다가 바꾼 번호의 직전 사용자를 수신자로 하는 스팸메시지와 연체 및 체납을 알리는 온갖 메시지들을 받았다. 번호를 바꾸자마자 오기 시작했는데, 월요일이 되니 기다렸다는 듯 전화와 문자메시지가 쏟아져 번호를 바꾼 지 3일밖에 안 된 날 이미 새 번호에 질려버렸다. 심지어 월요일은 준석님의 발인날이라 나는 하루종일 아무 기운이 없었는데 생각도 못했던 이상한 메시지와 전화를 받으니 더 진이 빠졌다. 번호 변경을 취소하려고 했더니 취소는 당일만 된다고 하고. 그러면 새 번호로 바꿀 순 있냐고 했더니 14일이 지나야만 바꿀 수 있다고 하고. 와 진짜 어쩌면 이럴 수가 있지…싶었다. 이게 액땜이라면 모를까, 올해 내내 이럴 거라면 진짜로 못살겠다는 심정.
준석오빠 돌아가시고 난 후 한동안 포스팅할 의욕도 의지도 없었고... 지난번에 썼던 대로 외장하드에서 준석님 자료 열어서 멍하니 보고 또 보거나 인스타에서 준석님 태그 검색해 좋아요 클릭하고 저장하고 그랬다. 넷플릭스도 쿠팡플레이도 안 봤고 그알싫이랑 요팟시만 겨우 들었다. 흥이 나야 뭘 하지. 그러다 4월에 OCN 유튜브 채널에서 왓쳐 스트리밍을 해주고 있다는 걸 우연히 알게 되어 늦게나마 왓쳐를 매일 봤다. 퇴근하면 노트북을 켜서 왓쳐를 틀어놓고, 틀어놓은 채로 잤다. 그리고 출근할 때 노트북을 껐다. 그렇게 왓쳐 실시간 스트리밍이 끝날 때까지 계속 도치광과 영군이와 태주를 보고 있었더니, 조금씩 마음이 가라앉았다. 우습게도.
그 와중에 온갖 이상한 메시지를 스팸처리하고 차단한 지 2주가 지났고 나는 득달같이 휴대폰 번호를 다시 바꿨다. 그리고 어제는 통신사도 바꿨다. 이제 더이상 지난 번호 직전사용자를 수신자로 하는 문자메시지는 오지 않겠지. 하 진짜ㅠㅠ 너무 짜증났었다 그동안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4월 말을 앞두고, 엄마가 코로나에 걸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주에 나는 직장에서 계속 야근을 했고, 다음날 아침을 먹지 않은 채 출근을 했다. 그러다 보니 엄마와의 접촉이 그 주 내내 거의 없었다. 확진 소식을 들은 날 바로 자가진단키트로 두 번 검사를 했는데 두 번 다 음성이 나왔다. 그러고도 불안해서 그 다음날과 그 다음다음날 모두 PCR 검사를 받았다. 역시나 둘 다 음성이었다.
3월이었더라면 동거인 확진으로 출근을 못할 상황이었겠지만, 4월에는 그보다 규정이 완화되어 있었다. 동거인이 확진이어도 내가 음성이라면 출근이 가능한 상황. 무조건 전염되지 않아야 했다. 엄마는 화장실이 딸린 안방에 격리됐고 나는 격리 기간 내내 먹고 또 먹어도 남을 만큼의 즉석식품을 마트에서 사왔다. (그 중 반 이상이 지금도 남아서 엄마 방에 있다. 너무 많이 샀어ㅠㅠㅠㅠㅠ) 격리 기간 내내 나는 집에서 마스크를 썼고, 엄마의 식사를 챙기고, 집을 반복적으로 소독하고, 환기했다. 엄마가 안방에 격리되어 있는 것처럼 나 역시 집에서는 내 방과 내 방 옆 화장실 정도만 왔다갔다했다. 전염되어 결근할 수 없다는 의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엄마는 격리 기간을 마쳤고, 아직까지 나는 확진되지 않았다. 오늘도 무사히 출근을 했고, 지금도 목소리가 잘 나오는 걸 봐서는 양성일 리가 없는 상태다. 안좋은 일이 쏟아지던 네 달이 지나갔기 때문일까. 임영웅 콘서트 예매도 실패하고, 당선자라는 작자는 4·3 추도식에 지각하고, 새 내각의 후보자라는 작자들은 뭐하는 자들인지 모르겠는 와중에, 여덟 번째의 4·16을 지나보낸, 2022년 4월이 지나가고 나면, 좀 나으려나.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5월에 당선자가 새 대통령이 되고 나면, 나빠질 일이 셀 수 없겠지. 얼마나 많은 일들이 얼마나 더 나빠질까, 상상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혀서 먹먹한 기분이 든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나빠질 세상에서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잘 모르겠다. 과거와 현재만 살 뿐 미래따위 없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비전이나 희망 같은 걸 찾기란 너무 어렵다. 그래도 어쨌든 버텨야 할텐데, 과연 잘 버틸 수 있을까. 너무 지치는 기분이 들 때는 멀리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파란 하늘이나 푸른 나무 같은 걸 보면서, 기분을 좀 추스르면, 앞으로의 5년을 살아갈 수 있을까. 버텨낼 수 있을까. 살아낼 수 있을까... 모르겠다. 별로 자신이 없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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