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UND] 방백|맞잡은 손

2016. 5. 8. 18:14🌜/푸른 달, 멍든 마음

지난 2월, F.OUND에 실린 방백 인터뷰. 준석님 사진 마음에 들고, '맞잡은 손'이라는 인터뷰 제목은 매우 마음에 든다. 준석님이 유앤미블루 얘기도 하시는 게 인상 깊다. 유앤미블루가 '너무 망'했어도, 그 음악으로 나는 바뀌었다. 그것이 내가 경험한 음악의 힘. 원문은 "여기". 



맞잡은 손방백
‘방백’은 백현진, 방준석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이다. 그 손 안에는 지금까지 축척해온 우리들의 정서가 담겨있다.

 

 

# 방백이 낸 소리

‘방백’은 음악, 영화, 미술 등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다져 온 백현진과 밴드 ‘유앤미블루’를 시작으로 <베테랑> <사도> <라디오 스타> <짝패> <공동경비구역JSA> 등 유수의 영화 음악들을 만들어온 음악감독 방준석이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이다. 오랜 친구이자 동료로 수많은 감정과 사상을 나눠왔던 둘은 최근 몇 년 까지도 ‘백현진 with 방준석’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바 있다. 
하지만 ‘방백’이란 새로운 이름이 필요했던 이유는 새 부대에 담아 전해야 하는 마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움직임에 베이스 서영도, 드럼 신석철, 피아노 윤석철, 색소폰 손성제/김오키, 반도네온 고상지를 비롯한 최고의 연주자들이 동참했다. 이들 모두가 편곡자 크레딧에 올라가 있을 만큼, 애정 어린 관심과 노력이 <너의 손>에 담겼다. 
지난 1월 3일, 세종M씨어터에서 방백의 첫 앨범 <너의 손> 발매를 기념하는 쇼케이스가 열렸다. 관객석은 방백의 첫 출발을 기대하는 눈빛으로 가득 찼다. 조명이 드리워지고 방준석, 백현진이 무대에 올랐다. 고요한 정적 사이로 첫 소절이 울려 퍼지는 순간, 관객들은 지그시 눈을 감고 그들이 부르는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였다.


꽉 찬 관객석을 바라봤을 때 참 신났을 것 같아요. <너의 손> 첫 쇼케이스를 성공적으로 마친 기분이 어땠나요?

백 ― 일단 연주자들끼리 너무 잘 놀았던 시간이었어요. 스튜디오에서 함께 앨범을 만들어 나갔던 모든 이들이 함께 무대에 올랐거든요. 어떻게 보면 다같이 작업을 마무리 함과 동시에 공연의 시작을 알리게 된 거죠. 끝마침과 시작, 그 두 가지 의미를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죠.


보통의 노래가 보컬을 중심으로 흘러 간다면 <너의 손> 앨범의 경우, 백 사운드와의 조화, 전체적인 분위기나 무드에 초점을 맞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 ― 질문에 ‘백 사운드’라고 표현 하셨잖아요. 일단 저희는 그렇게 개념하지 않았어요. 각 연주자들이 “나 세션하고 빠져”의 느낌이 아닌 함께 완성하고 나아가는 것에 가까웠죠. 이번 작업은 뭐랄까, 그냥 물 흐르듯이 흘러가게 놔두는 식이었어요. 곡의 뼈대를 만드는 걸 기본을 깐다고 하자면 밴드의 최소 구성인 드럼, 베이스, 보컬, 기타가 다 함께 움직이는 거죠. 그렇게 자연스러운 전개와 흐름 사이에 악기가 하나씩 더 추가 되기도 하고 빠지기도 하면서요.백 ― 산에 가면 돌탑 쌓아놓은 걸 볼 수 있잖아요. 세 개가 올라간 경우도 있고 어떤 건 여덟 개가 올라가기도 하는데, 딱 그런 식으로 작업한 거예요. 거기 중에 뭐 하나라도 없음 무너지게 되니까. 


보컬의 노래는 끝났는데 연주는 한참 동안 계속 되는 것, 끝이 없는 음악처럼 들리는 게 특이하기도 했어요.

백 ― 어떻게 끝내야 하는지 모른 거지 뭐. 실제로 녹음 중에 이런 말을 했어요. “어떻게 끝내?” 그러면 “뭐 이따가 우리가 자르던지 할게.” (웃음)방 ― 보통 연주가 어느 순간부터 점점 잦아들게 되는 시점이 있는데 이번에는 그런 게 없었어요. 완성하고 나서 다듬으려 들어보니 그냥 써도 무리가 없었던 거죠. 


이미 음악계에선 톱 위치에 오르신 두 분인데, ‘방백’을 결성해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방 ― 톱이요? 누가요? (웃음) 특별히 마음 먹은 건 없어요. 그냥 하던 일 계속 하는 거죠. 저희는 친구이자 연주 파트너로서 굉장히 오랜 시간을 함께 호흡해 왔어요. 그러다 보니 우리가 어떤 기록을 하기 위해 무엇을 하면 좋을까, 라는 이야기를 하게 된 거고 결국 ‘방백’이라는 물리적인 결과물을 내 놓은 거죠. 방백을 하려 마음 먹으면서 ‘어떤 소리를 낼까’ 같은 장르적인 개념에 대한 이야기는 나눈 적이 없어요.  백 ― 오히려 ‘어떤 마음과 태도로 만나면 좋을까’ 이야기 한 거죠. 제가 요즘 ‘일을 본다’는 말을 자주 써요. 준석이 형이랑 오랫동안 “우리 다른 일을 한번 봐보자”라고 말해왔는데, 새 일을 볼 그릇을 ‘방백’이라고 부르게 된 거죠.


방백의 음악은 지금보다 훨씬 이전의 무언가에 가깝다고 느껴지기도 해요. <너의 손>을 통해 표현하고 싶었던 구체적인 정서나 시대가 있었나요?

방 ― 그렇게 느꼈어요? 올드하다는 건가? (웃음)


(웃음) 올드 하다기 보단, 저희 세대가 겪어보지 못한 날들의 무드, 특유의 낭만 같은 걸 느껴졌거든요.

방 ― 앨범에 참여한 연주자들 중 일흔이 넘은 선배님도 있으시고 대학교 1학년인 학생도 있거든요. 그들에게 ‘서울’ ’한강’ 이란 공간을 떠올려 달라고 부탁했어요.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서울과 한강의 느낌이 있을 거 아녜요. 그것들이 어떤 시간에 머물러 있지 않은 것 같아요. 오늘도 있고 내일도 있고, 굉장히 많은 시간들의 함축인 거죠.백 ― 한강이 서울 사는 사람들에겐 참 익숙하잖아요. ‘한강’이란 말을 들었을 때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 ‘내일 한강에 가볼까?’하는 현재의 마음 등 모든 것들이 다 포개지는 거죠. 그런 각자의 생각들이 앨범에 막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서울’이란 공간은 하나라 해도, (앨범에 참여한)열다섯 명이 느끼는 서울은 다 다를 거 아녜요. 


한국인만이 가지는 정서가 느껴지는 앨범이에요.

방 ― 그렇게 들린다면 너무 좋은데요? 앨범을 만들 때 너무 재지 하거나 블루스적인 소리가 느껴지면 최대한 안 그러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거든요.백 ― 고상지씨가 연주한 반도네온을 예로 들면, 그 자체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나 기법, 탱고 무드, 이국적인 느낌을 다 걷어내려 한 거죠. 어쩌면 뭘 하려는 것 보다 계속 덜어내고 삭제 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결과적으론 ‘걷어내는 과정’에서 방백의 색이 나온 거네요.

백 ― 뭔가를 안 하려고 한 게 의도인 것 같아요. 음악 하는 사람들 전부는 아니지만, 래퍼런스를 가지고 이야기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뭐처럼 들리게, 누구처럼 보이게, 방백의 이번 앨범은 그런 과정이 없었던 거죠. 하지만 다음 앨범에서는 뭘 의도하고 접근할 수도 있어요.


왜 없을까요? 보통 뮤지션들은 음악을 통해 자신의 무언가를 표현하려 하잖아요.

방 ― 음악을 통한 자신의 자존감, 자기 증명, 컴플랙스를 채운다던가 참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흰 뭘 보여주고 증명하자는 게 아니었어요. 작업 자체에 충실하고 공연을 하며 즐거움을 얻는 것으로 충분해요.


이번 앨범, 얼마만큼 만족을 느끼세요?

백 ― 아까 차를 타고 오면서 저희 앨범을 들었는데, 자뻑이나 나르시즘이 아니라 참 많이 듣게 된다고 해야 하나. 그게 대답이 되는 것 같아요. 

 


# How Did Rock And Roll Changed The World?방준석 감독님의 경우 미국과 칠레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들었어요. 그때 경험했던 음악적인 충격이나 영향이 있었나요? 

방 ― 있었겠죠? 그런데 그땐 몰랐어요. 저도 가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는데 그런 영향이 음악적인 요소가 아니라 다른 환경과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인 것 같아요. 백 ― ‘3호선 버터플라이’에 성기완씨 있죠? 그 분이 저희가 작업한 음악을 들어보더니 이런 말을 했어요. “확실히 준석이가 남미에서 살았던 게 느껴진다.” 아마 그때의 영향이 묻어 있는 거겠죠. 


음악이 왜 좋으셨어요?

방 ― 그냥 음악이 좋으니까요. (웃음) 어릴 때부터 음악 듣는 걸 너무 좋아했고, 현진이 같은 경우엔 음악 백과사전이에요. 백 ― 실제로 해비 메탈 백과사전을 외웠지. (웃음) 저희가 음악을 한 이십 년 가까이 한 건데 예를 들면 아이폰 기본 앱 있잖아요. 지울 수도 없는 필수 앱 같은 거, 그런 식으로 음악이 우리 몸에 장착 되어 있는 거죠. 음악이 가끔 이렇다 저렇다 새롭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이제는 말 그대로 이고 지고 함께 가는 매체 중 하나인 거예요.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쭉 해오셨잖아요. ‘음악을 계속 해야 하나’ 의심해 본 적은 없으셨어요? 저희 세대들은 좋아하는 걸 선택하고 이어나간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거든요.

방 ― 젊은 친구들이 그런 고민을 한다고 하면 저는 무조건 이렇게 말해요. 현실은 항상 여의치가 않고 인간은 항상 압박의 대상이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순간, 그게 현실이 된다고.백 ― 하지만 너무 힘들잖아. 우리가 이렇게 말해도 잘 안 들릴 거야.방 ― 요즘 ‘헬(Hell)조선’ 이라고들 하잖아요. 지금이 그런 시절인 건데, 그럼에도 제가 이렇게 이야기 하는 건 힘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예요. ‘현실’이란 건 자기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거든요. 그게 바로 마음의 힘이에요. 이런 부분이 곧 방백의 앨범과도 일맥상통해요. 저희가 앨범에 궁극적으로 넣고 싶었던 건 어떤 ‘마음’이었거든요. 그래서 계속 앨범에 관한 질문을 주시면 추상적인 답을 내놓을 수 밖에 없었어요. 참 시대가 음악 하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음악 하는 사람이 더 이상 안 나올까요? 나와요! 저에게도 너무나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돈이 없어서 밥을 못 먹기도 했어요. 하지만 선택인 것 같아요. 과연 어떤 타협 선에 놓였을 때 그걸 선택한다고 해서 마음이 편할까요?백 ― 젊은 뮤지션들, 아니 그냥 젊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로 사는 건요, 특히 청년기는 정말 막막해요. 그게 터널로 치면 캄캄한 게 쭉 있는 건데, 그걸 통과해야 해요. 건투를 빌어주고 싶어요, 정말로.


그럼 반대로 음악을 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나요?

백 ― 늘 그래요. 음악은 정말 좋아요. 돈이 하나도 없어도 

할 수 있어요. 계속 소리내면 되는 거니까.


두분 다 ‘영화’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계신데 왜 많은 것 중 영화셨어요?

방 ― 음악도 좋아하지만 영화도 정말 좋거든요. 칠레에서 살 때 학교가 끝나면 영화를 세 편, 네 편 이어서 틀어주는 영화관에 가 밤이 돼서 나오곤 했어요. 제가 처음 ‘유앤미블루’라는 밴드를 했는데 그게 잘 안됐어요. 그래서 세션도 해봤는데 못하겠더라구요. 그러다 제 앞에 떨어진 게 영화음악이었어요. 막상 해보니까 너무 재미있었던거죠.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은 ‘극장’이라는 전제하에 있어요. 그게 티비와 영화가 나눠지는 점인 것 같아요. 극장은 체험이에요. 그 체험에서 주는 무언가가 있는데 거기서 매력을 느낀 게 아닌가 싶어요. 

 

 

20대부터 시작한 음악이 여기까지 왔잖아요.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백 ― 많은 변화가 있었지 뭐. (웃음) 저를 보컬리스트라고 하면 어떤 소리를 내고 싶었고 그 소리를 내고 싶어 무리를 했던적이 있어요. 이제는 그런 게 없어요. 무리하지 않고 원하는 소리를 낼 수 있는 것, 그게 아마 가장 큰 변화일거에요.방 ― 이전에는 뭐가 됐든 노래라고 하면 어떤 노래가 완벽하다, 기타는 누구의 연주 정도는 되어야 한다, 이런 게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진 거죠. 이제는 그걸 어떻게 누구와 할 것인지, 그런 질문이 생기는 것 같아요.


영화, 미술, 음악 참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 중 이신데 어떤 시도와 도전의 의미인가요?

백 ― 그냥 이렇게 되는 거예요. 음악으로 링크가 걸릴 땐 소리로 풀고, 그림으로 걸릴 땐 회화로 풀고. 근데 이 두 가지는 계속 해온 거라 자동으로 움직이는 매카니즘이기도 해요. 냉장고 같은 경우 우리가 돌보지 않는다고 해서 안 돌아가는 게 아닌 것처럼. 아! 그리고 갤러리에서 꼭 이야기 하랬는데 (웃음) 1월 27일, pkm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어요. 보러 오세요.


공연에서 지금 시대에 대한 많은 이야길 하셨는데, 요즘 같은 시대에 음악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백 ― 약간 달라이 라마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 같은데? (웃음)방 ― 아까 말했듯 ‘유앤미블루’가 너무 망했어요. 그때 우연히 엽서를 봤는데 ‘락앤롤이 세상을 바꿨니?’ 그런 문구가 적혀 있었어요. 그 대답을 할 수 없어서 한참을 벽에 붙여놨어요. 지금까지 전 음악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 왔는데 돌아오는 건 아주 더블 싸대기였죠. (웃음) 다른 건 모르겠지만 “락앤롤이 널 바꿨니?”라고 물어본다면, 네! 저는 바뀌었어요. (백 ― 나도 한 표!) 그게 음악의 힘이라고 생각해요.백 ― 진짜 우울한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냈는데 굉장히 큰 볼륨으로 무언가를 들으면서 그 시간을 통과했어요. 음악에게 진짜 고마워요.


올해 바람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백 ― 방백이 다섯 명, 여덞 명 이런 식으로 구성이 돼 자주 공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둘이서 한다면 홍대 앞이나 이렇게 해도 되는데 그런 건 많이 해왔었으니까. 또 방백이 저희 둘뿐만은 아니잖아요. 방 ― 방백이 둘이 아니라는 말, 그 말에 바로 수긍이 가요. ‘방백’ 하면 백현진과 방준석, 이렇게 시작했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더 이상 둘이 아닌 거죠. 


# 너의 손을 잡고

 

누군가 나에게 “락앤롤이 세상을 바꿨니?”라고 물어본다면, 아직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낼 자신이 없다. 하지만, 적어도 ‘노래를 부르는 너’ ‘그걸 듣는 나’는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 믿음이 내민 손을 마주 잡는 것 만으로 우리는 이 캄캄한 터널을 지날 용기를 얻는다. 방백이 <너의 손>을 통해 내밀고 싶은 손은 어떤 음악적 완성이 아닌, 우리를 향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