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시대 9개월,

2020. 9. 2. 21:50흐르는 강/이즈음에

솔직히 말하자. 사실 9월까지 이러고 있게 될 줄은 진짜 몰랐다. 9월 학기제 얘기가 나올 때 '아니 9월에도 코로나가 창궐(!!!!!)하면 어쩌려고 저런 얘기를 하는 거신가'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말한 적은 있지만, 진짜로 9월에도 3월처럼 이러고 있어야 할 줄은 몰랐다. 적어도 3월보다는 좀 나아질 줄 알았고, '감염을 조심하면서' 하지만 '감염의 위험과 공존하면서' 일상적인 삶을 지속하게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었다. '일상 곳곳이 감염의 장소'가 되어버리고 나니, 이게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알겠다. 8월이 지나면서부터 아, 인제 2010년대로 돌아가는 건 안 되는 일이구나, 하는 실감이 확신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2020년대는 이렇게 시작됐고, 앞으로의 삶은 계속 이런 식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 코로나19가 끝나더라도 몇 년 지나면 또다른 질병이 나타날 것 같고, 그때는 지금보다 더 나쁜 상황일 것 같고, 거기에 기후 위기는 갈수록 심화될 거고, 그런 과정에서 인류는 혹은 인류 중 많은 수는 절멸할 거고, 그 절멸하는 사람 중 나도 포함되겠지. 솔직히 인류의 마지막까지 살아남고 싶지 않다는 희망이 크다. 종말로 향해가는 길이 너무 고통스러울 것 같아서, 그 고통을 끝까지 맛보고 싶지 않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겁이 나는 거지. 마지막 인류애마저 바사삭 부서져 무의 상태가 되어버리는 지경까지는 가고 싶지 않은 거지. 아무리 인류애가 백지장처럼 남아 있는 나일지라도.

 

인생이 참 다양하게 많이 바뀌었는데, 우선 올해 초까지만 해도 그런 게 세상에 있는지도 몰랐던 줌zoom은 내가 가장 자주, 가장 많이, 가장 유용하게 직장에서 활용하는 소프트웨어가 되었다. 아래아한글이나 엑셀을 쓰지 않는 날은 있어도 줌을 쓰지 않는 날은 없다. 정말 줌 생각하면 지긋지긋하다ㅋㅋㅋㅋㅋ 하지만 이 이외의 대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행아웃미트는 소회의실 기능이 없어 쓸 수가 없다. 휴. 어느날 갑자기 줌이 전격 유료화되면 내 삶은 어떻게 되려나…같은 생각 쓸데없는 생각ㅋㅋㅋㅋㅋ

 

평생을 집순이로 살아오긴 했지만 그래도 혼자 걷는 건 좋아하는데, 올해는 아예 처박혀있어야 하는 상황이 많다보니 걸음수가 최근 몇년 중 최저를 찍게 되었다. 그나마 7월과 8월초에 직장에서 열심히 돌아다니느라(집밖 아니고 직장-_-) 걸음수가 늘었는데 8월 중순부터 다시 뚝뚝 떨어져버림. 지금은 5700대에 숫자가 멈춰 있다. 집 주위에 사람이 덜 있을 것 같은 밤 10시 이후 밤산책을 가끔 했는데 불행하게도(?????) 집 주변이 '사람들 많이 모이는 곳'이다보니 사람 없을 때가 없고ㅠㅠ 게다가 밤에 밖엘 나가보면 마스크 안 쓴 사람이 너무 많아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안그래도 없는 인류애가 더 뚝뚝 떨어져 지표면을 뚫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걷자고 나갔다가 화나서 돌아오게 됨. 눈을 감고 다닐 수도 없고 진짜 대환장할 노릇.

 

3월 진짜 최악........................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7월만 해도 조금 상황이 좋아지나 싶었고 출퇴근길에 쨍한 여름 하늘 사진을 찍을 정도의 여유는 있었는데…8월 초순이 지나가면서 그 여유는 먼지처럼 사라져 버렸다.

 

한참 저렇게 하늘 쨍하게 예쁘던 때가 지나가고 나니 길고긴 장마가 시작됐고 그러고 나서 광화문 집회…하아. 어릴 적 내게 광화문은 힐링의 공간 같은 곳이었는데ㅠㅠ 10*n년 후의 광화문이 이런 공간으로 바뀔 줄 상상도 못했다. 물론 지금의 상황 중 상상할 수 있는 게 무엇이었겠냐만은. 10대 시절 나는 광화문 교보문고를 정말 좋아했었고 시험 끝난 후 애들이 영등포나 이대에 놀러갈 때 광화문 교보에 가서 핫트랙스를 돌고 테이프를 사며 즐거워했었단 말이다. 예전에 살던 동네에 55번 좌석버스가 있었는데, 성산대교를 건너 성산회관을 지나 사직동을 거쳐 광화문에서 순환하는 노선이었다. 일상에서 시들시들하게 살고 있는 나를 비일상적인 공간으로 데려다주던 버스가 55번이어서, 고등학생 때는 토요일 수업이 끝난 후 혼자 55번을 타고 한강을 건넜다. 광화문에서 내리지 않고 그냥 한 바퀴를 돌아오는 때도 있었다. 멍하니 한강을 보다 보면 그냥 마음이 좀 편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당시에 '한강 보러 간다'며 고수부지에 놀러가기를 즐겨 하던 아이들과 함께 간 적은 한 번도 없다. 지금은 한강공원이 되었지만. 고수부지라니 이것도 정말 옛날 이름이군ㅋㅋㅋㅋㅋ)

 

대학생이 된 이후부터 하염없이 거리를 걷는 걸 좋아했다. 내게 익숙한 공간은 합정-홍대-신촌-이대-아현-충정로-서대문-광화문-종각-종로의 거리였는데, 합정에서 종로까지 걸을 만큼 하염없지는 못했고(다리 부러졌을 듯) 학교에서 합정까지, 학교에서 이대까지, 충정로에서 광화문까지, 광화문에서 종로까지 왔다갔다왔다갔다 하며 돌아다니기를 즐겼다.  10대에는 5호선이 익숙했고 20대에는 신촌을 중심으로 한 한강 서북쪽이 익숙했다. 한참 후의 내가 서울을 가끔 가고 3호선을 거의 타는 삶을 살고 있을 줄 그때는 몰랐지. 그때도 늘 기억 한가운데 광화문 교보가 있었다. 돈을 버는 사람이 되면서부터 더이상 카세트테이프를 사지 않았기에 핫트랙스에 가서 CD를 고르고 음악을 듣고 온갖 문구류를 구경하고 책을 들춰봤다. 그때는 영화도 많이 봤었다. 피카디리와 서울극장을 다니다가 정동 스타식스에 정착했고 시네코아도 가끔 갔었다. 묘하게 단성사는 안 갔고 씨네큐브도 많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어디서 출발하든간에 꼭 광화문 교보에 들렀다. 피카디리든 서울극장이든 스타식스든 시네코아든 씨네큐브든, 영화를 보고 나면 걷고 걸어서 교보까지 갔다. 그리고 나야 집에 갈 마음이 들었다. 일민미술관이나 카페이마를 갔을 때도 늘 마지막엔 광화문 교보엘 가야 했다.

 

그런데 지금 광화문은-음. 추억을 되씹으며 향수를 느끼기에는 너무 정치적인 공간이 되어 버렸다. 세월호 때 이후부터 막말을 일삼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때는 세월호에 대한 애도와 추모가 더 크게 보였고, '광장'이 있었고, 당연한 이야기를 당연하게 외치는 사람들이 있었고, 촛불이 있었고, 무엇보다 마음이 있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보이고 모이는 공간이었다. 4년 전만 해도, '광화문 집회'의 의미는 지금과 완전히 달랐으니까.

 

그래서 때때로 참 서글프다.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까지 다 잃어버린 것 같아서. 미래야 원래 꿈꾸지 않았다 하더라도, 과거는 잃을 수 없는 줄 알았는데.

 

'마스크 착용'이 올해 가장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도 작년 이전의 사진을 종종 찾아본다. 보고 나면-보기 전보다 더 서글퍼진다. 오늘은 이 두 장이 특히 서글펐다.

 

작년에 정말 좋았던 날. 10+n년간의 직장 생활 중 가장 기분 좋았던 날. 지금 직장에서의 짜증나는 하루하루들이 이날 하루의 상쾌함으로 풀린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던 날. 다시 이때처럼 기분 좋게 걸을 수 있는 날이 올까. 마스크 없이, 산책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언제 올까.

 

'혹시' 하는 마음 때문에 그 어떤 공연도 가지 못하게 된 지 벌써 8개월째가 됐다. 특히나 엪엪에 가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 되지 않을까 싶다. 뜨겁고 즐겁고 에너지를 잔뜩 받아올 수 있었던 곳이었는데. 아뮤하 공연을 보는 날이 다시 올 수 있을지도 궁금하지만(사실 아뮤하도 아뮤하지만 ㅈㄷ가 더욱……………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꼭 아뮤하가 아니더라도 '대면 공연을 편안하게 볼 수 있는 날'이 언제 올 수 있을지, 그저 까마득하다는 기분이다. 지금과 같은 순간은 절대 다시 오지 않을 거야, 라고 저때도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 의미는 너무 많이 달라져버렸다. 너무 먼 곳으로 와 버렸다. 겨우 일 년 남짓인데.

 

최근에 읽은 '오늘부터의 세계' 뒷표지에 이런 문장이 쓰여 있다: 과거로 가는 문은 닫혔다. 어제 이 문장을 직장 동료들에게 보여주었는데, 내가 느끼는 막막함만큼 동료들의 막막함이 크진 않은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쩌면 '미래로 가는 문은 닫혔다.'가 아니라 동료들이 크게 상심하지 않았던 건지도. 여튼간 이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건 불가능하다 치고,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내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멍하니 유튜브를 보거나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며 그냥 지금이 지나가기만을 바랐던 게 코로나 시대 9개월간 내가 시간을 보냈던 방식이라면, 앞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것이 내 (얼마 남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앞으로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더 의미 있게 만들어줄까. 9월이 시작되면서 고민이 깊어진다.

 

우선은 마구잡이로 쌓아둔 기억들을,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넘어갔었던 과거들을, 시간이 멈춰 있는 것 같은 현재에 정리해야겠다. 좀더 읽고, 좀더 써야겠다. 쓰려면 우선 읽어야 하니까 읽는 것 먼저. 바깥을 자유롭게 나다닐 수 없으니 뭔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것도 좀 찾고ㅠㅠ 죽기 전까지는 지금의 이 몸뚱이를 갖고 있을 수밖에 없는데 지금처럼 가만히만 있다가는 아주아주 고통스럽게 죽어갈 것 같으니까ㅠㅠㅠㅠㅠ 최대한 현재의 고통을 줄일 수 있는 길을 더 많이 더 다양하게 찾아봐야겠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내게는 그런 의미의 행동인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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