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30. 18:49ㆍ흐르는 강/이즈음에
가을에도 많이 걸었다. 나는 올해 가을이 꽤 길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객관적인 온도를 측정해서 비교해보면 아닐 수도 있겠지만 나한테는 가을이 꽤 긴 느낌이었다. 8월이 되자마자 더위가 꺾였다는 느낌이 바로 왔었고, 9월을 앞두고는 저녁에 동네를 돌 때마다 이야 엄청 걷기 좋은 날씨가 되어가고 있잖아😤 하는 기분이 들었다. 하루하루 그런 느낌이 더해져 신기할 정도였다. 게다가 하늘은 어찌나 예쁘던지. 미세먼지로 인한 괴로움도 크게 없었다. 그저 하늘을 보고, 감탄하고, 그러면서 걷고, 하는 저녁의 연속이었다. (뭐 그러다보니 책도 진짜 많이 안 읽었던 것 같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 블로그에 뭐 쓸 시간은 더더욱 없었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평일에는 밤에 많이 걸었다. 사람이 조금이라도 적은 시간에 나다니려고. 그래봤자 가을 저녁이 워낙 좋았어서 이곳저곳에 마스크 안 쓴 사람이 수많았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다 토요일 낮에 파란 하늘을 보면 그렇게 기분이 좋았다. 사람을 되게 설레게 하네? 하는 기분이었다. 봄 하늘도, 여름 하늘도, 겨울 하늘도 모두 좋지만, 가을의 하늘은 뭐랄까,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벅차오르게 만드는 기운이 있달까.
게다가 추석 연휴 즈음의 하늘은 어찌나 예쁘던지. 말 그대로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들이었다. 연휴 전 토요일 호수공원작은도서관에 다녀오던 길의 벅참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망알롬의 코로나 때문에 답답하고 갑갑하고 서글프고 짜증스러운데도, 어쩌면 하늘은 이렇게 인간과 상관 없이 맑고 쨍할까 싶어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푸름은 어찌나 다채롭고, 하양은 어찌나 경이롭던지.
추석 전날 그리고 추석날, 달을 찾아 바라보면서 올해가 무사히 잘 지나가기를 기도하기도 했다. 올해 맡은 업무의 특성상 8월말에 일이 집중적으로 몰아쳐(그리고 곧 또 몰아칠 예정) 숨쉴 틈도 없이 바빴다가 9월이 되면서 일은 줄어들었으나 마음은 불편한 상황이 계속 이어졌다. 일이 적어서 몸이 편한 건 좋은데 너무 보람도 없고 의미도 없는 시간 속에 갇혀 있는 기분. 차라리 몸이 좀 힘들어도 보람이나 의미가 이것보다는 더 있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이 의미도 보람도 없는 시간이 빨리 지나가려면 올해가 어서 끝나는 수밖에 없어ㅠㅠ 그냥 하루라도 빨리 이 2021년이 지나갔으면 좋겠다 싶었다. 달을 보며 기도하던 때의 마음이 아마도 그것이었으리라.
느리게든 빠르게든 시간은 멈추지 않는 것이라, 잎을 잔뜩 매달고 있던 나무들은 서서히 앙상해지고 있었다. 인간과 달리, 솔직하고 선명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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