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1. 14. 10:02ㆍ흐르는 강/이즈음에
포스팅을 꽤 오랜만에 한다. 사실 쓸 얘기는 그동안 많았고(특히 근황 잡글 같은 건 매일도 쓸 수 있었음) 영화본 얘기라든지 드라마 본 얘기라든지 같은 것도 쓸 수 있었는데, 생각보다 앉아서 진득하게 뭘 쓸 생각이 잘 안 났다. 가장 큰 이유는 물리적인 시간의 부족(이라고 쓰면서 나 스스로를 비웃고 있음). 10+n년 동안 이런저런 직장을 짧게 또는 길게 옮겨다니면서 야근을 날숨쉬듯 했다. 당연히 해야 할 상황이라고 생각했으므로 특별한 불만도 없었다. 어느 정도는 내 몸이 야근하는 나에게 맞춰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작년에 코로나19 상황이 되면서 야근 횟수가 많이 줄었고(물론 원격으로도 얼마든지 야근을 할 수는 있었으나 굳이 그렇게까지…………………🤨) 올해 직장을 옮기면서 야근 횟수가 획기적으로 줄었다. 그러면서 삶에 거의 처음으로 저녁이 생겼다!
처음에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기도 하고 너무 지쳐가지고 그냥 늘어져 있었다. 몸보다는 정신이 지쳐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의욕이 생기질 않았다. 에라이 세상…하며 뻗어 있다가 핸드폰 게임을 하다가 자버리거나 유튜브를 보다가 자버리거나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작년 이후로 유튜브 보는 시간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기도 했고... 다행히(????) 봄에 줄드 새 앨범이 나와서미쳤니 나새끼 앨범은 작년에 나왔곸ㅋㅋㅋㅋㅋㅋㅋㅋ 공연이 시작돼서 사는 데 위안이 됐다. 그렇지만 마음 놓고 공연을 다 보러 갈 수는 없었다. 예매해놓고 공연날을 기다리는데 공연날이 있는 주간에 직장에서 확진자가 나와 공연을 보러 가지 않은 적도 있었고ㅠㅠ 확진자가 나오지 않더라도 뭔가 좀 조심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가 되면 가지 말아야 되나 싶어 고민하다가 가지 않은 적도 있었다. 공연장 갈 시간을 앞두고 바보같은 사고(????????)가 나서 못 간 적도 있었다. 나새끼 진짜 뭐하는 거니………ㅠㅠㅠㅠㅠㅠ
평생을 집에서 딩굴거리며 살았는데 그러다가 이렇게 살아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고 무엇보다 허리가 아팠다. 집에 처박혀있기를 좋아하지만 걷는 걸 또 좋아해서(내가 써놓고도 말이 안되는 소리 같긴 하지만ㅋㅋㅋㅋㅋㅋ 진짜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 코로나 이전까지는 그래도 일주일에 최소한 한두 번은 혼자 걸어다니곤 했는데 작년에 집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를 조심하게 되면서 걷는 시간이 확 줄었다. 2020년대가 되면서 그동안 함부로 썼던 몸뚱이가 점점 더 삐걱대기 시작하기도 해서 이대로 살다가는 엄청 아프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커졌고 운동을 해야겠다는 심정이 되기는 했는데 귀찮은 걸 제일 싫어하는데다가 마스크를 쓰고 운동을 한다는 것 역시 싫어서 결국은 그냥 좋아하는 걷기를 하게 되긴 했는데,
이 결심에 큰 영향을 미친 건 봄밤의 장미정원이었다. 일산에 산 지 10년이 훨씬 넘었는데, 호수공원엘 간 적은 1년에 세 번도 안 됐던 것 같다. 근데 올해 봄, 우연히 장미정원을 찾았다가, 사람 없는 밤에 장미가 핀 곳을 걸어다니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 알아버렸다. 그러다가 호수공원을 자주 찾게 돼 버렸다. 작년까지 호수공원에 갔던 횟수보다 올 봄 이후로 호수공원에 간 횟수가 훨씬 많을 것이라고 확신한다ㅋㅋㅋㅋ 사람 많은 시간에는 호수공원 말고 딴 데를 걷는 게 몸도 마음도 편해서 여기저기를 걷다보니 10년이 훌쩍 넘는 동안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길을 이곳저곳 돌아다니게 됐다.
봄과 여름에 동네 이곳저곳을 산책하면서, 하늘 사진을 자주 찍었다. 하늘 사진 찍던 건 디카가 처음 나왔던 2000년대 초반ㅋㅋㅋㅋ 언제 어디를 가든지 디카를 들고다니던 그때부터의 습관이다. 야근을 자주 하는 삶을 살게 된 이후로는 자주 하지 못하게 된 일이기도 하다. 가끔 밝을 때, 또는 노을 질 때 퇴근하면서 하늘을 찍으면 그게 그렇게 좋았었다. 근데 이제는 도저히 날숨쉬듯 야근하는 삶으로 다시 못 돌아가겠다는 기분이다. 물론 작년까지의 저녁 없던 삶도 나름 즐거웠고 굉장히 보람 있었던 시간이었(겠)지만, 앞으로는 못 할 것 같다. 진심이다.
그때의 기록들을 좀 올려두자면…
걸어다니는 시간이 늘어나다보니 포스팅을 할 시간은 당연히 없어졌다. 자리에 좀 진득히 앉아서 뭘 쓰든 자시든 해야 하는데, 물리적 시간 자체가 확 줄어들었다. 퇴근하면 보통 진이 빠진 채로 돌아오게 되니까 정신을 좀 차릴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 시간에는 보통 누워서 멍때리고 있거나 늘어져 있거나 유튜브를 좀 보거나 했단 말이다. 그리고 나서 정신이 좀 돌아오면 나가서 걷고 들어와서 씻고 자고… 뭐 이런 식의 생활이 계속됐다. 사실 포스팅할 떡밥은 많았지. 줄드 공연도 있었고 아뮤하 공연도 있었고 영화도 좀 봤고 드라마도 봤고 책도 안 읽지는 않았고…
하지만 드라마를 보고 영화를 보고 책을 보면서 동시에 포스팅을 할 수는 없는 일. 게으른 나는 더 편한 걸 선택했고 그러다 보니 쓰는 것보다는 보는 것에 쓰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정말이지 나를 늘 생각지 못한 곳에다 데려놓아서, 정신차려보면 어느새 한두시가 되어 있었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하나만 봐야지 하다보면 어느새 한두시간이 휙 지나가서 헐 자야되는데ㅠㅠ 늦어버렸어ㅠㅠㅠㅠ 하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는 것, 21세기의 인류가 다 똑같지 않을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휴 한심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또 생각해보면 그렇다고 과거에 엄청 생산적인 일을 효율적으로 하지도 않았다. 커뮤니티 생활을 할 때는 쓸 데 없는 글을 보고 댓글에 일희일비하는 데 시간을 낭비했고, 한창 메신저를 쓰던 때는 잠깐 몇 마디만 해야지 하다가 밤을 새곤 했었지. 그냥 인생 자체가 어리석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멍하니 유튜브 보다가 시간을 확인하고 아오 책 좀 읽어라 나새끼야ㅠㅠㅠㅠㅠㅠ 하며 고통스러워하는 날들이 현재진행형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또 올여름에는 오랜만에 좋아하는 드라마가 생겨서!!!!!! 왓쳐 이후로 열심히 드라마를 봤다. 바로 미치지 않고서야. 그냥 그런 드라마를 하나보다 하고 있다가 우연히 유튜브에서(그놈의 알고리즘ㅋㅋㅋㅋㅋㅋ) 전참시에 김남희가 출연한 에피소드 클립을 보다가 문소리언니와 정재영배우가 함께 나오는데 나의 영원한 배순검님인 안내상배우님도 나오신다는 걸 알게 됐다. 퇴근해서까지 직장 얘기를 보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여느 때처럼 지쳐서 퇴근한 어느날 소파 위에 늘어져있다가 어디 한번 무슨 얘긴지나 보자 하는 기분으로 VOD를 재생했다가 읭 이거 어떻게 되려고 그러지 하는 기분으로 정주행하기 시작함. 방송 기간에 올림픽이 끼어 있었고, 올림픽 때 휴방을 기회삼아 진도를 따라잡았다. 그때가 10회까지 방송됐을 때인데, 그 시점에는 이미 당자영언니를 엄청 좋아하게 됐고 최반석팀장 얼굴만 봐도 피식피식 웃게 되어버렸다. 올림픽 후에는 본방사수하면서 마지막회까지 신나게 봤다.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다시 정주행할 것임ㅠㅠㅠㅠㅠㅠ
이 얘기를 수십번 쓰는 기분이긴 하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올여름이 워낙 더웠고 나는 더위와 추위 중 추위를 고르는 인간이다보니 7월이 정말 힘들었다. 추우면 뭔가를 계속 껴입으면서 몸을 덥힐 수 있는데 더우면ㅠㅠ 벗을 만큼 벗어도 덥고ㅠㅠㅠㅠ 사회생활할 때는 벗을 만큼 벗을 수도 없고ㅠㅠㅠㅠ 그렇다고 에어콘 너무 빡세게 틀면 춥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지치고 짜증나는데(-_-) 그 짜증을 밤중에 사람 적은 데 찾아다니며 산책하는 걸로 많이 풀었던 것 같다.
그런데 정말 신비롭게도, 8월 1일 아침이 되자마자, 어, 이거 공기가 다른데? 하는 느낌이 팍 왔다. 물론 8월 1일도 7월 31일만큼 더웠지만 이상하게 느낌이 달랐다. (나만 이런 기분인가 했는데 나중에 동생에게 물어보니 동생도 그랬다고 해서 우와 신기하다+_+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여전히 덥긴 더운데, 지독하게 더워서 ㄷ자만 봐도 짜증이 솟구쳐오르는 '그 시기'는 분명히 지나갔구나 하는 확신. 그래서 지치는 기분이 덜 들었고, 실제로 내 몸은 빠르게 더위를 덜 느끼기 시작했다.
그래서 올 가을이 짧았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내게는 올 가을이 길었다. 내게는 8월이 시작되자마자 여름이 끝나가기 시작했고, 가을이 아주 길었다는 게, 올해의 기억이 되어버렸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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