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지성사(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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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읽은 소설 몇 권: 한정현, 은모든 소설
주위 사람들은 내가 책을 뭐 엄청 많이 읽는 줄 알지만 사실 나는 굉장히 편중된 독서를 하는 사람이고, 그 '치우침'을 담당하는 것은 소설이다. 어린 시절부터 소설을 주로 읽더니 평생 그러고 있다. 2000년 이후로는 '이렇게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열심히 읽을 필요가 있나?'하는 생각이 몇년에 한번씩 들곤 해서 그때마다 다른 책들을 읽어보기도 하는데 그래도 결국은 소설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넷플릭스를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내가 좋아했던 건 소설이 아니라 이야기였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의 이야기,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서 일어나는 이야기, 그러면서 사람이 변해나가는 이야기, 그리고 세상도 변해나가는 이야기 같은 것들을 만날 수 있는 매체가 소설만 있는 ..
2022.11.19 -
[한강] 어두워지기 전에
어두워질 거라고. 더 어두워질 거라고… 어두워지기 전에 -한강 어두워지기 전에 그 말을 들었다. 어두워질 거라고. 더 어두워질 거라고. 지옥처럼 바싹 마른 눈두덩을 너는 그림자로도 문지르지 않고 내 눈을 건너다봤다. 내 눈 역시 바싹 마른 지옥인 것처럼. 어두워질 거라고. 더 어두워질 거라고. (두려웠다.) 두렵지 않았다.
2017.08.09 -
[이제니]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이창근씨와 김정욱씨가 굴뚝에 올라간 지도 이제 곧 한 달이 된다. TV에는 티볼리 광고가 잘도 나온다. 일터에서 내쫓긴 사람들은 칼날 같은 바람을 온몸에 맞아가며 찬 땅바닥에 몸을 붙인다. 같이 살자고 한다. 경찰은 연행할 테니 알아서 해산하라며 열심히 채증한다. 마룻바닥에 그냥 앉으면 엉덩이가 아파서 방석을 깔고 앉은 나는, 노트북을 놓은 소반 아래로 다리를 쭉 뻗고 편히 앉아 있는 나는, 문득 부끄러워져서 치욕이 울컹울컹 목울대 주변에 고여 있다고 느낀다. 김수영의 절망을 되뇐다.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구원이 올까? 예기치 않은 순간에, 정말 올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기분으로, 이제니의 시를 베낀다. 그러지 않고서는 더 살 수 없을 것 같다. 사실이 그렇지 않나. 이렇게 사는..
2015.01.11 -
[황인숙] 나, 덤으로
내가 너무 이러한 사람이라서, 이 시를 본 순간 마음에서 찡하고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나, 덤으로 황인숙 나, 지금 덤으로 살고 있는 것 같아 그런 것만 같아 나, 삭정이 끝에 무슨 실수로 얹힌 푸르죽죽한 순만 같아 나, 자꾸 기다리네 누구, 나, 툭 꺾으면 물기 하나 없는 줄거리 보고 기겁하여 팽개칠 거야 나, 지금 삭정이인 것 같아 핏톨들은 가랑잎으로 쓸려 다니고 아, 나, 기다림을 끌어당기고 싶네.
2013.06.22 -
[진은영] 서른 살
마지막 두 행을 읽을 때마다 머리털이 쭈뼛 서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는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악덕을 저지르며 살아갈까…그것이 악덕이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인간이 되면 어쩌나……악에 받친 삶을 추하게 이어가는 인간이 되지 않았으면. 미래의 내가. 서른 살 -진은영 어두운 복도 긑에서 괘종시계 치는 소리 1시와 2시 사이에도 11시와 2시 사이에도 똑같이 한 번만 울리는 것 그것은 뜻하지 않은 환기, 소득 없는 각성 몇 시와 몇 시의 중간 지대를 지나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단지 무언가의 절반만큼 네가 왔다는 것 돌아가든 나아가든 모든 것은 너의 결정에 달렸다는 듯 지금부터 저지른 악덕은 죽을 때까지 기억난다
2013.06.16 -
120407, [이승열] Who? (@카페 벨로주)
작년 4월 벨로주 공연 마지막날, 오라버니가 불러주셨던 Who?. 앨범 나오기 전까지 나는 이 노래를 Someone's at the door라고 불렀다. 오라버니의 셋리스트에 뭐라고 써있든 말든 신경 안쓰고 내멋대로ㅋㅋㅋㅋㅋㅋㅋ 그래서 작년 포스팅에는 Who?가 다 Someone's at the door로 되어 있다-_- 이 때가 Who?를 공개하시고 세 번째 불러주셨던 날인데(벨로주 공연이 3일짜리였으니까ㅋㅋㅋㅋㅋㅋㅋㅋ) 자세히 들어보면 지금 가사하고 조금 다르다. 어쩔까 하다가 그냥 내맘대로 쓰기로 했……;;;; 어차피 영어 가사고 뜻은 통하니까 큰 문제 없으리라 생각한다(고 뻔뻔하게 잘도 쓴다). Who?를 처음 들었을 때는 더이상 도망갈 수 없는 코너에 몰린 사람의 노래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당..
2013.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