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시간 여행' 문제에 대하여. (1)

2024. 8. 12. 11:25흔드는 바람/보고

 
사실 이건
 

1.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문제라기보다는 파이브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맞을텐데
2. 파이브 역시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일원이고, 그들의 시간 여행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이며
3. 애초에 파이브라는 존재 자체가 나타난 것은 '엄브렐러 아카데미'라는 남매가 결성되었기 때문이므로 
4. 파이브 개인의 문제라고는 보기 힘들 것이긴 하다. 근데 어쩌면 이건 '시간 여행'을 다루는 콘텐츠들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결과 같기도 함.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엄브렐러 아카데미(7남매 말고 시리즈를 의미함)의 결말이 납득은 된다. (물론 감정적으로도 편안해진다는 건 아니지만 흑흑흑) 따라서
5. 이 포스팅은 엄브렐러 아카데미(시리즈)의 '내용을 객관적인 정보로서 알리기 위함'이 아니라, '내가 작품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방식의 일환으로서 내가 본 내용을 끼워맞춰보는 것'에 가까움. 즉 유용한 정보 따위 없다는 것이니 엄브렐러 아카데미(시리즈)에 대한 쓸모 있는 정보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라고 분명히 써놓은 다음, 다시 시즌 1의 마지막 부분부터 보면.
 

이제 진짜 끝이구나...하는 형제들 앞에서 파이브가 '빠져나갈 방법'이 있을 것이라며 '시간 여행'을 제안했고,
그대로 통구이가 될 수 없었던 남매들은 그의 시간 여행에 동참했다. 그렇게 지구는 폭발했지만, 그들은 살아남았다. 따라서 세계는 끝나지 않았다.

 
 
파이브가 존재하는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속의 세계란 평행우주를 전제한 세계일 수밖에 없다. 우주가 하나의 세계로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수많은 세계가 동시에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 따라서 이 세계의 루서와 저 세계의 루서는 서로 만날 일 없이 각자의 삶을 알아서 살고 있겠지. 근데 파이브는 루서와 달리 시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이 세계의 파이브가 저 세계의 파이브를 만날 수 있는 데다가 또다른 세계의 파이브, 또또다른 세계의 파이브, 또또또다른 세계의 파이브...도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시즌 1에서의 파이브는 시간 여행을 연습하던 중 미래의 세계로 이동했다가 세계의 종말을 목격한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한다. 현재의 세계로 돌아오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지만 실패하고 긴 시간을 머무르던 중(with 돌로레스) (돌로레스가 파이브의 유일한 애정의 대상일 줄 알았으나...라일라.......근데 사실 라일라와 파이브 사이의 묘한 긴장감은 시즌 2 때부터 있었지. 하지만 그때는 파이브가 너무 어린이였고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쓸데없는 소리 그만-_-) 커미션을 만나고, 시간 이동 수단을 이용할 수 있게 되고, 여러 가지 계산을 거쳐 현재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리고 현재의 세계에 닥쳐올 종말을 막으려고 한다.
 

시즌 1 첫회에서의 재회. 남매들은 모두 어른이 되어 있고,
파이브는 클라우스 말처럼 '꼬마'로 돌아와 있고.

 
 
미래 세계에서 파이브는 오랜 시간을 살면서 꽤 나이를 먹었으나, 현재 세계로 돌아오면서 과거의 모습, 즉 자신이 원래의 타임라인을 떠나던 때의 모습인 '꼬마'로 돌아온다. 다른 타임라인에서 산다고 해서 나이를 먹지 않는 게 아니라는 것. 어쨌든간 파이브가 갔던 미래의 세계는 현재 세계의 미래 모습이므로 두 세계는 같은 세계다. 그런데 시즌2부터는 양상이 좀 달라진다.
 
시즌1 마지막회에서는 2019년 4월 1일 바냐(이때는 아직 빅터 아님)가 달을 부수면서 ‘수십억 인구가 몇분 만에 화염에 휩쓸려’ 세계는 종말을 맞이한다. 그리고 이때 엄브렐러 아카데미는 파이브의 능력으로 죽음을 피한다. 그리고 이들은 과거로 이동한다. 시즌 2 초반에서는 이에 대해 ‘아이러니하게도 종말에 살아남은 6인은 종말을 불러온 남매들이었다’라고 설명한다. 어찌 보면 이것이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운명인 것. 스스로 불러온 재앙으로부터 끊임없이 살아남지만, 그들의 살아남음 자체가 또다른 종말을 불러일으키는...하 쓰다보니 너무 슬프네ㅠㅠ 나 이 캐릭터들 좋아한다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지금 보니 이 멘트야말로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모든 내용을 한줄로 요약하는 것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벤과 클라우스는 1960년의 텍사스 댈러스로, 앨리슨은 1961년, 루서는 1962년으로, 디에고는 1963년 9월 1일로, 바냐는 1963년 10월 12일의 세계로 가게 된다. 근데 원래 이들 모두는 1989년에 태어났었다. 따라서 1960~1963년의 세계에 바냐와 디에고와 루서와 앨리슨과 클라우스와 벤이 존재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이 존재함으로써, 그리고 그 과거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감으로써, 그들이 존재하는 세계는 시즌 1의 세계와 다른 세계가 되어버린다. 즉 엄브렐러 아카데미가 모두 함께 간 과거의 세계는 그들이 원래 존재했던 세계의 과거 모습과 같은 세계가 될 수도 없고, 되지도 못하게 된 것이다.

심지어 파이브가 1963년 11월 25일에 처음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보게 된 신문에는 소련이 미국을 공격했다는 뉴스가 실려 있고(시즌1에서는 아버지의 부고가 실려 있는 신문이고ㅋㅋㅋㅋㅋㅋ), 그 전쟁터에서 남매들은 자신들의 능력을 있는 대로 발휘해(정말 있는 대로 다!!!!!!!!!!!!!!!!!) 적군을 쓰러뜨리고 있다. 심지어 벤마저도ㅋㅋㅋㅋㅋㅋ 그러나 곧 핵폭탄이 날아오고 우산 모양의 핵구름이 세계를 집어삼키면서 세상은 또 종말하는데, 그 직전에 어디선가 나타난 헤이즐이 '네가 죽으면 다 끝이야'라며 벤과 함께 10일 전의 세계로 이동함으로써 시즌 2는 시작하자마자 끝나는 비극에서 벗어난다. 여기까지가 시즌 2 맨 첫 번째 에피소드의 앞쪽 10분 정도이니, 결국 시즌 2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세계는 시즌 2 앞부분의 세계와도 다른 세계인 것.

 

하지만 이 장면 자체는 참 좋아한다. 전체 시리즈 중 엄브렐러 아카데미가 가장 영웅처럼 보이는 순간들 아닐까 싶음...

 
이렇게만 보면, 파이브가 이동할 때마다 세계가 분화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사실 나는 대충 저정도의 생각으로 엄브렐러 아카데미의 세계관을 이해해 왔다. 분화되는 세계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여겼고. 파이브가 이동하지 않는 한, 그리고 파이브와 함께 엄브렐러 아카데미가 이동하지 않는 한, 하나의 세계가 다른 세계와 중첩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즌 4의 '지하철'이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도 별 생각이 안 들었다.
 

라일라와 파이브가 함께 지하철로 간 것이 결국은 '문제'의 시작. 신중한 파이브와 충동적인 라일라가 만난다면, 라일라의 뜻대로 되지 않을 수 없다.
'원래의 타임라인'에까지 도달한 파이브, 그리고
이 타임라인에서 돌로레스와 함께 살고 있던 파이브.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저 장면을 보면서, 뭔가 이상한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야 한다. 세 가지 정도의 관점으로 써보자면,
 
1) 원래의 파이브는 계속 시간 이동을 하는 '수트 차림의 파이브'니까, 헬멧을 쓰고 원래의 파이브에게 총을 겨누는 저 파이브는 '원래의 파이브'가 존재한다면 있을 수 없는 존재다. 심지어 '원래의 파이브'는 종말 이후의 세계로부터 원래 자신이 살던 타임라인으로 복귀한 뒤, 가족들을 만나서 바냐(이때는 아직 빅터 아님22)가 세계를 멸망시키지 못하도록 애쓰다가, 실패하고, 가족들과 함께 시간 이동을 한 파이브다. 그리고 그 수많은 시간 이동의 결과가 '원래의 파이브' 자신이니까, 저 타임라인에서 돌로레스와 살고 있는 파이브는 존재하지 않아야 맞는 거 아닌가, 싶었어야 한다.
 
2) 다른 생각을 해볼 수도 있다. 시즌 1에서 '원래의 파이브'는 종말 이후의 세계에서 40년을 산다. 근데 시즌 4의 '원래의 파이브'가 만난 시즌 1의 파이브는 자신과 비슷한 나이대의 인간이다. 그렇다면 시즌 1의 파이브가 경험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 시즌 4의 파이브가 끼어드는 셈이다. 시즌 4의 '원래의 파이브'가 지하철을 타고 저 세계로 가지 않았다면, 그래서 시즌 1의 파이브를 만나지 않았다면, 저런 장면은 나올 수 없었겠지. 하지만 저 만남으로 인해 시즌 1의 '원래의 파이브'는 시즌 4의 '원래의 파이브'가 될 수 없다. 시즌 1의 '원래의 파이브'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 새롭게 추가된 것이니까.
 
3) 시즌 1에서 종말 이후의 세계로 떨어졌던 '원래의 파이브'가, 또다른 자신을 관찰하는 경험을 그 때 했을 수도 있다. 시즌 4의 '원래의 파이브'가 갑자기 쌍안경을 꺼내드는 건 그 경험을 기억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원래의 파이브'가 종말 이후의 세계에서 자신 같은 존재를 만났었는지 기억해내는 장면이 시즌 4에 확실히 나오지는 않는 것 같다...) 하지만, '오리지널한 존재로서의 나'가 '오리지널한 존재로서의 나'를 타자로 인식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즉, 시즌 4에 나오는 '원래의 파이브', 그러니까 시즌 1부터 4까지 쭉 등장하면서 서사를 이끌어가는 그 '파이브'는, 자신이 원래 살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그 '파이브'와 같은 존재일 수 없다.
 
 
 
아이고 스크롤이 너무 길어지네...아직 시즌 4의 델리카트슨 얘기는 시작도 안했는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그것이 엄브렐러 아카데미 속 시간 여행의 의미를, 또 엄브렐러 아카데미(시리즈 말고 인물들)의 존재적 의미를 밝혀주는, 가장 중요한 힌트라고 나는 생각한다...만 우선 오늘은 여기까지만 정리해보는 것으로! 이렇게 뭔가를 씀으로써 엄브렐러 아카데미(시리즈이면서 인물들ㅋㅋㅋㅋㅋㅋ)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고 감정이 깊어지는 걸 보면, 인간에게 쓰기란 사고 과정이며 문제 해결 과정이라는 말이 맞다 싶다...물론 그 사고가 '옳은가', 문제가 '정확히' 해결됐는가는 다른 문제이겠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으로 시즌 2 잘 보다가 '아니 이렇게 끝난다고?????'라며 놀라게 했던, 엄브렐러와 스패로우의 첫만남 장면이나 첨부해 본다. 그러고 보면 마지막 회 마지막 순간에 늘 '아니 이렇게 끝난다고????????????????'라며 비명 지르게 했던 건 모든 시즌이 똑같네.
 

스패로 아카데미를 다 만날 순 없더라도 슬론은 어떻게 좀 다시 나오면 안되나...생각했지만.....힘내라 루서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