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를… (1)

2024. 8. 26. 22:39흔드는 바람/보고

오픈되고 삼일 만에 다 봐 버렸다. 제목 그대로 ‘어쩌다 보니’ 🤔

 


물론 '어쩌다 보니'라는 말을 쓰는 게 비겁하다고 생각은 한다. 나자신이 직접 태블릿에 다운로드했고…2화 보다가 '아니 이거 뭔 소리야' 하고 1화부터 다시 돌려봤고, 2화를 본 이후에는 대체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갈 것인가 하는 심정으로 호로록 계속해서 보다가 일요일 밤 호로록호로록 모든 에피소드를 다 봐버렸으니까…🤔

위의 이미지와 짝을 이루는 이미지. 솔직히 이 폰트는 작품과 잘 안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작품에 비해 재치가 있달까...

 

 

 

다 보고 난 심경을 차근차근 정리해보자면.

(이 아래는 전부 다 스포)

 

 

영문 제목이 The Frog다. 구상준과 전영하가 서로 나레이션을 주고받으면서 '우리 같은 사람을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개구리라고 해요.'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작가와 피디의 의도는, 진영하와 구상준이 개구리라는 것일 테다. 악한 의도를 지닌 사람 때문에 가만히 있다가 죄 없이 돌에 맞아 죽은 개구리. 혹시 인터뷰 같은 게 있지 않을까(당연히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검색해보다가 씨네21에서 작가님과 피디님이 함께 인터뷰한 기사를 찾았는데, 기사님의 말 중 이런 것이 있었다: 영하와 상준이 마주한 사건은 두 남자와 큰 연관이 없는 일에서 출발한다. 주변인처럼 존재하는 인물들이 전면에 나서는 이야기, 누구든 작품에서 언급하는 개구리가 될 수 있다는 착점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근데 나는 이 둘이 '가만히 있다가 돌에 맞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은 '큰 연관이 없는 일'을 겪은 사람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의를 베푼 사람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지점이 내가 이 시리즈를 불편하게 여기는 첫 번째 이유다.

 

전영하와 친한 '용채 형님'의 펜션 에어콘이 고장난다. 용채형은 예약된 손님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영하에게 SOS를 친다. 최근 산 가까이에서 멧돼지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멧돼지가 잡힐 때까지 손님을 받지 말아야겠다고 말하며 깨끗이 수영장을 청소하고 선베드까지 접어 들여놓았던 영하는 용채의 요청에 손님을 받는다. 여자 어른과 동행한 남자아이 하나를. 그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꼬이게 될 줄 예상도 못한 채로ㅠㅠ 게다가 여자 어른이 턴테이블을 가리키며 '저거 작동 되는 거냐'고 묻자, 잠겨 있던 창고 문까지 열어보여주며 LP판을 꺼내준다. 그 LP가 어떻게 쓰이게 될 줄 상상조차 못한 채로ㅠㅠㅠㅠㅠㅠ

 

그러니까 그냥 손님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거고, LP판도 안 꺼내줄 수 있었던 것인 것...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구상준은 더하다(-_-) 비가 퍼붓는 날, 모텔 앞 도로 쪽에서 차 한 대가 들어올까 말까 망설이는 듯 멈춰 서 있다. 그걸 바라보던 구상준은 굳이 빗속을 뚫고 차로 가서 차 안에 혼자 있던 남자를 모텔로 데려온다. 하루 머물러 가겠다며 2층 방을 달라고 하는 이에게 (괜히 2층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4층 경치가 좋다며 같은 값을 받을테니 4층 방을 쓰라고 한다. 자기네 모텔에서 제일 좋은 방을, 굳이, 안 줘도 되는 상황에 굳이ㅠㅠㅠㅠㅠㅠ

 

만약에 영하가 손님을 안 받겠다고 했으면 어떨까. 유성아는 시현을 데리고 다른 곳을 찾아야 했을 것이다. 아마 못 찾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현은 죽지 않았을 수도 있다. 물론 다른 곳에서 죽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하의 펜션만큼 '좋은 조건'이 아닌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성아의 범행이 훨씬 일찍 밝혀졌을 수도 있다. 영하도 용채도 다른 호수마을 사람들도(예를 들어 세탁소 주인 등등...) 유성아의 희생물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상준 역시 마찬가지다. 굳이 나가서 지향철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지향철이 그냥 다른 곳으로 운전을 하고 나가게끔 내버려 뒀다면? 물론 지향철은 어디선가 또 사람을 죽였을 것이고, 시신을 토막냈을(-_-) 것이고, 목숨을 빼앗긴 사람들 이외의 피해자를 수많이 만들었을 것이다...만, 레이크뷰 모텔은 휘말리지 않았을 것이다. 상준도, 은경도, 기호도, 그냥 잘 살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들이 타인을 선의로 대했기 때문에. 내가 좀 불편하더라도 남을 도우려 했기 때문에. 내가 원래 볼 이익을 좀 덜 보더라도 남을 편하게 해주려 했기 때문에. 굳이 베풀지 않아도 됐을 선의를 베풀었기 때문에. 그 때문에 그들은 피해자가 되었고, 자신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변까지 비극 속으로 몰아넣었다.

 

 

시원하게 비 구경은 무슨...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왜 그랬을까. 왜 유성아를 손님으로 받았을까. 왜 지향철을 모텔로 데려왔을까. 왜 유성아가 턴테이블을 쓸 수 있게 했을까. 왜 지향철에게 가장 좋은 4층 방을 내준 후 밤새 잠에 빠져서 그가 시신을 들쳐메고 가는 장면을 놓쳐버렸을까. 만약 상준이 잠을 자지 않았다면 지향철은 시신을 업고 모텔에 올라가지 못했을 것이고, 만약 유성아를 돌려보냈다면 시현이는 살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니...이 모든 일은 나 때문이다, 내가 아니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수십번을 자책하고 또 자책했을 것이다. 전영하와 구상준 모두.

 

그리고 나는 이런 식의 서사가 정말 불편하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타인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이 나에게 적의로 혹은 크나큰 피해로 돌아올 수 있다는 식의 서사가 지극히 현실적일 수 있다는 데까지는 동감한다(이런 일이 실제로 너무 많이 일어나니까). 하지만 이런 콘텐츠가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은 무엇인가? 어떤 메시지를 수용자들에게 전달하는가? '누군가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땐 내가 도울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해도 이 무서운 세상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눈 감고 가라'는 메시지밖에 줄 수 없는 것은 아닌가?

 

물론 나는 남을 돕는 것에서 어떠한 대가나 보상을 받으려 하지 않는 것이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바람 없이 선의에 비롯한 행위를 하는 것이 인간적인 것이라고 여긴다. 같은 맥락에서, '착한 사람이 남을 도와서 복을 받는 이야기'가 엄청 현실적인 얘기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한 사람이 남을 도와서 벌을 받는 이야기'는 정말 의미도 가치도 쓸모도 없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연기와 좋은 화면과 좋은 구성으로 이루어진 콘텐츠라 할 지라도, 서사의 시작이 저런 것이라면 대체 메시지로서 어떤 효용이 있나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이, 세상에 존재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져야 할 이유가, 대체 무엇이냐는 말이다. 어떤 사건이 있을 때 '당사자' 말고도 피해를 보는 사람은 저렇게 많으니까, 그 사람들에게까지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뭐 이런 얘기를 하고 싶은 것 같지도 (딱히) 않은데...

 

 

꿈이라고 여기고 싶을 만큼 나쁜 기억이었던 것이, 결국 영하의 다음 여름을 통째로 잡아먹는다.
친구의 말처럼, 이 모든 일이 '상준의 잘못'이라 할 수 없는데도, 상준은 계속 자신을 책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은경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건 충분히 상준의 잘못이다.)

 

 

 

거참 쓰다 보니까 쓸 말이 계속 많아지네...'이래서야 되겠는가-_-'라는 지점이 많은 시리즈라 호평보다는 혹평을 더 길게 쓸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한데, 오늘은 우선 여기까지. 남은 얘기들은 나중에 (과연 언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하아...그래도 이정은배우님의 연기는 늘 항상 언제나 좋았음. 배우님이 생각보다 너무 적게 나오시는 게 그저 아쉬웠을 뿐. 엄현경배우님의 연기도 좋았습니다. 엄현경배우님이 '내가 유난이지' 할 때 너무 마음아팠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트라우마라는 말도 없던 야만의 20세기에 얼마나 큰 충격이었겠냐고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