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3. 02:22ㆍ흔드는 바람/읽고
★ 1월에 가장 좋았던 책 : 여행할 권리 (김연수, 창비)
책 | 짤막 감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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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문학동네) 1991년, 딱 18년 전의 이야기인데 왜이리도 예전의 이야기처럼 느껴졌을까. 학생운동에 대한 무관심이 일반화되고 '촌스러운 운동권' 대신 '세련된 비권'이 각광받기 시작하던 200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녔던 나의 배경 때문이었을까. 시위 중 누군가 죽어나가야만 했던 그 시대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또다른 인생을 살아야만 했던 존재들이 마음을 쿵 하고 울렸다. 정민과 함께 본 별들이 연결되고 흩어지던 것처럼, 시대에 휩쓸려 개인의 삶을 잃어야만 했던 개인들이 인연 혹은 운명의 끈에 묶여 만나고 또 헤어지는 모습들이 잔상이 되어 아련하게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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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할 권리 (김연수, 창비) 처음에는 되게 진지하고 치밀하며 꼼꼼한 여행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제목부터 약간 사람을 긴장케 하지 않나, 여행할 '권리'라니!) 속았다. 굉장히 유쾌하면서 때때로 실없어 엄허나 김작가님 이런 면도 있으시구나 하면서 즐겁게 읽었다. 올컬러인데 중간중간 들어있는 사진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고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많이 실려 있어 종종 낄낄댔다. 하지만(아바...) 가벼워보이는 이야기 속에서도 자신의 문학에 대한 고민이 깊게 배어 있어 인상적이었다. 무거움과 가벼움의 조화로운 공존! 작가들의 천국 한국에서 4만 독자를 보유하고 계신 밤비 김작가님, 저도 그 중 한 명입니다 ㅋㅋㅋ |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김연수, 문학동네) 작년에 읽으려고 여러 번 시도했는데 이상하게 계속 때를 놓쳐 못 읽었던 책. 소박하고 친숙하면서도 자전적인 느낌이 짙었다.「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의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고 나면 소년들은 어른이 될까?...제 몸이 아름다운 줄도 모르고 소년들은 슬퍼한다. 비에도 지지 말고 바람에도 지지 말고.'라는 마지막 문단의 구절이 왠지 이 소설집의 작품들이 그리는 풍경의 메세지를 함축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뉴욕제과점」,「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그 상처가 칼날의 생김새를 닮듯」이 가장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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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문학과지성사) 김애란 작품은 2000년대의 일반적인 20대를 하나도 낭만적이지 않게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는 어렵고 경쟁은 심하고 생존은 힘들고 정신은 피폐해' 마음이 불행한 세대의 희망없는 모습이랄까. 그려내는 현실 자체가 워낙 팍팍하다보니 즐거울래야 즐거울 수 없는 나와 내 또래의 이야기라 공감할 수 있었지만, 씁쓸하면서도 슬펐고 조금은 답답했다. 답이 없어서. 싸울 수 없을 것 같아서.「도도한 생활」은 맨 앞에 수록된 작품의 역할을 충분히 했고「칼자국」,「플라이데이터리코더」은 예외적으로 따뜻해서 인상적이었다.『달려라, 아비』보다 맘에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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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뉴스 (김중혁, 문학과지성사) 이 책을 읽고 나니『악기들의 도서관』의 세계가『펭귄뉴스』의 세계보다 좀더 온기어린 세계라는 생각이 더 확실하게 들었다.『악기들의 도서관』이 사물을 매개로 인간들 사이의 진심어린 소통이 조금씩이나마 이루어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면 『펭귄뉴스』는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사물을 관찰해서 기술하고 있다는 느낌?「발명가 이눅씨의 설계도」와「바나나 주식회사」가 가장 좋았고, 전체적으로는 『악기들의 도서관』이 더 좋다.「사백 미터 마라톤」은 왜 굳이 SF적인 느낌을 내려고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약간 남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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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득이 (김려령, 창비) 완득이의 '기도'로 시작되는 첫 장부터 유쾌했다. 장애인인 아버지와 가난하게 살아가는 완득이가 베트남 사람인 어머니를 만나고 자기의 길을 찾아가며 성장하는 모습이 너무 건강하고 사랑스럽게 그려져 있었다. 애들이 완득이처럼만 예쁘게 커나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 만큼ㅠ 특히 학교나 사회에서 소외되기 쉬운 아이들을 따뜻한 시선과 마음으로 바라보고 감싸안은 완득이의 담임 동주의 존재가 인상적이었다. 완득이와 친구들이 2학년 때에는 어떻게 지내는지, '다음 이야기'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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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부리말 아이들 (김중미, 창비) 김중미 씨의 신작이 나온다는 소식을 읽고 완전 뒷북치며 읽은 책-_- '괭이부리말'이라 불리는 인천의 빈곤층 지역 아이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집은 가난하고 아버지는 알콜 중독이 되어 아이들과 아내를 때리고 견디다 못한 어머니는 가출하는...등등의 일들이 너무 흔해서, 이제는 참 뻔한 이야기가 되어 버렸음에도 수월성의 논리로 현실을 지배하려 드는 이들이 활개치는 이 시대에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나. 책을 덮은 후에도 숙희와 동수, 호용이가 떠올라 갑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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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열 두 뱡향 (어슐러 르귄, 시공사) 역시나 르귄의 신작 출시 소식에 찾아 읽은 책. 시공사 책이라 사진 않고 빌려 읽었다ㅎ 가장 좋았던 작품 셋은「파리의 4월」,「물건들」,「땅속의 별들」. 어둡지만 유쾌하거나 긍정적(이라고 나는 느꼈다)인, 희망의 실마리를 어렴풋이나마 보여주는 결말이 좋았다.「이름의 법칙」은 흥미로웠고「제국보다 광대하고 더욱 느리게」,「오멜라스를 떠나는 사람들」을 읽고는 마음이 복잡했다.「길의 방향」의 상상력에 가장 큰 갈채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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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누구였는지만 말해봐 (존 치버, 문학동네) 교외의 체호프라 불린다는 존 치버의 작품을 드디어 접했다. (그러고보니 챈들러도 카버도 치버도 모두 문학동네 덕분에 접하는구나. 고마워해야 되는 건가ㅎ) 인간의 어둡고 구질구질한, 그래서 많은 이들이 감추고 싶어하는 그 부분을 날카롭게 포착해 위트있게 기술하는 단편들을 좋아하는지라 꽤 재미있게 읽었다.「여공작」,「주홍색 이삿짐 트럭」,「나라 없는 여자」,「다리의 천사」,「재결합」은 매우 유쾌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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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더하우스 1, 2 (존 어빙, 문학동네)
하루키아저씨-_-의 수필 덕분에 알게 된 존 어빙의 책을 드디어 읽었다! 웰즈의 멘토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인 닥터 라치가 인상적이었다. 이상적이지는 않지만 매력적인 인물! 비록 '악마의 일'을 하는 사람이지만 이 소설의 인물들을 선/악으로 굳이 나눈다면 가장 선에 가까운 인물 아닐까? 한없이 악해보이지만 결국은 호머를 '인간으로 만드는' 멜로니 역시 기억에 남는다. (어째 호머-캔디보다 닥터 라치-멜로니가 더 좋냐;) 영화에서는 토비 맥과이어-샤를리즈 테론이 호머와 캔디 역할을 한다는데 꽤 잘 어울릴 듯. 언제 찾아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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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친구 엘링입니다 (잉바르 암비에른센, 푸른숲) 서른 살이 넘을 때까지 엄마를 제외한 타인과 인간다운 접촉을 해보지 못한 채 자란 '엘링'이 어머니의 죽음 이후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나가면서 변화하게 되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 노르웨이 작가 잉바르 암비에른센의 '엘링 연작' 중 첫 번째 소설. 엄마 이외에 자신에게 의미있을만한 인물을 찾으면서 어찌할 줄 모르고 혼란스러워하는 엘링의 몸부림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있다. 엘링에 대한 공감을 방해했던 요소라면 노르웨이의 복지제도에 대한 부러움/ 엘링의 스토커같은 행동에 대한 심리적 반발 등이었달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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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고든을 사랑한 소녀 (스티븐 킹, 황금가지) 아홉살 트리샤의 개고생 생존기. 말하긴 쉽지만 트리샤가 겪은 수난은 너무 끔찍했다. 고생했다 얘야 쯧쯧쯧. 숲속에서는 절대로 길을 잃지 맙시다/ 길을 잃었을 때에는 괜히 길 찾아 가지 말고 왔던 길을 돌아가거나 잃어버린 자리에 가만히 있읍시다/ 산에 갈 때는 꼭 벌레에 대비합시다 → 이 소설에서 교훈을 굳이 찾자면 저 세 가지 아닐까. 트리샤에게 보스턴 게임 중계를 들을 수 있는 워크맨이 있었다는 게 참 다행이다. 소니에게 감사를? 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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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공책 (온다 리쿠, 국일미디어) 온다 리쿠의 도코노 연작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 빛의 제국에 실린「커다란 서랍」의 모티프를 장편으로 발전시킨 이야기인데「커다란 서랍」보다 훨씬 재미없었다. 온다 리쿠가 굉장히 이상적인 소녀를 등장시키기 좋아한다는 건 알겠는데 이 소설의 사토코는 너무 심하다;는 느낌이었고 미네코-사토코라는 두 소녀의 포지션이나 캐릭터도 타 작품에서 자주 봐왔던 소녀들과 겹쳐져 약간 식상했다. 게다가 집안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소녀라니!! 이건 뭐 사토코 위인전이냐 싶어 안타까운 한편 허탈한-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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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 게임 (온다 리쿠, 국일미디어) 도코노 연작 시리즈 세 번째 이야기.「오셀로 게임」을 장편으로 다시 쓴 소설. 장편이 되면서 이야기가 많이 복잡해졌다.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적을 의식하며 항상 공포에 떨어야 하고, 적을 뒤집어야만 내가 살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한 순간도 벗어날 수 없는 도키코 가족의 이야기 자체가 흥미로웠고 도키코 아버지의 행방이 궁금했던 터라 그럭저럭 흥미롭게 읽었다. 뒷쪽에선 '이거 너무 꼬아놓은 거 아니야;'라는 생각도 조금 들었다만 민들레 공책보다 훨씬 낫다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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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 外 (박지원, 신원) 신원문화사에서 나온 '우리고전 다시읽기' 시리즈 중 박지원 편이다. 중고등학교 고전문학 시간의 단골손님인 허생전, 양반전, 호질, 예덕 선생전 등을 비롯해 비교적 덜 알려진 소설들도 함께 실려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열녀 함양 박씨전」. 제목만 보고 당연히 열녀인 함양 박씨를 칭송하는 글일 거라 생각했는데 '그렇게까지 절개를 지키라고 해야겠냐?'는 비판 의식이 깔려 있어 놀라웠다! 박지원은 자세히 알아볼수록 (한계도 명확해지지만) 매력적인 인물인 듯. 올해는 기필코『열하일기』를 읽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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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에서 고고학자처럼 (이명원, 새움) 굉장히 오랜만에 읽은 이명원의 평론집. 가장 앞에 실린, 공선옥을 만나고 쓴 글이 제일 좋았다. 인터뷰어의 의도대로 인터뷰이의 발언을 이끌어가는 대신 인터뷰이의 말에 인터뷰어가 때로는 동감하고 때로는 주저하고 때로는 마음흔들려하는 게 느껴졌달까. 김정란을 만나고 쓴 글도 마찬가지였고. 그런데 이명원 스스로는 자신이 인터뷰어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써놓았으니 이건 겸손의 표현인 건가ㅎㅎ 대부분의 평론들이 무난히 읽을 만 했고 김수영의「풀」을 여성의 오르가즘으로 해석한 글은 굉장히 독특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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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문학사 (김윤식, 서울대출판부) 사실 '한국문학통사' 식의 내용을 기대하고 읽은 책이었지만 후회스럽지 않다. 나름 필기까지 하면서 열심히 읽었고 읽는 내내 정말 문학이론서를 많이 읽어야겠다고 다짐을 거듭했다. 많이 알아야 많이 이야기할 수 있겠지. 1945년 이후의 현대문학보다는 일제강점기 하의 현대문학 부분이 좀더 충실하게 다루어져 있고 육당-춘원-창조파/백조파-카프-모더니즘으로 이어지는 근대지향성의 흐름에 대해 공부하기 좋다. 단점이라면 오타가 너무 많다는 것-_- 교재용으로 만든 책 같은데 뭐이렇게 교정을 대충 봤을까 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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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목수정, 레디앙) 세 줄로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1. 부럽다. 2. 멋지다. 3. 이 언니가 더 잘 됐으면 좋겠다. 이 책의 출판에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가 http://retired.tistory.com/415에 있던데, 읽고 나니 '아, 좀 더 셌다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도 좀 들긴 했지만, 더 셌다면 덜 읽혔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언니의 파트너가 '프랑스인'이라는 점이 내 부러움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들 중 하나였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고민이 아직까지도 해결되지 않아 좀 골치아프다. |
좍 나열해 보니 좀 심하게 많이 읽었구나. 올해 목표의 20%를 벌써 끝내버린 셈이다. 설마 남은 2009년 중 이만큼 책을 읽는 달이 또 생기진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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