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4월부터 7일까지 경향신문에 연재되었던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을 엮은 책이다. 책날개에 있는 소개를 인용하자면 민주화 20년을 맞은 2007년 현재, 한국 사회에서 '지식인'은 어떤 존재고 어떤 의미를 갖는가 라는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 지식인 탐구-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문제제기-상황 분석 및 비판-대안 및 전망-종합 및 정리의 일반적인 구성을 매우 잘 지키고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첫 장인 민주화 20년, 한국 지식인의 풍경은 서울대학교 김수행 교수의 마르크스 경제학 강의 풍경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1989년 3월 강의를 시작했을 때 비좁은 계단을 파고들어 앉아 기어코 강의를 듣던 학생들은 이제 다 사라지고, 남은 것은 강의를 열심히 듣지만 판에 박힌 답안만 제출하는 40여명의 학생들 뿐이다. 신자유주의적 사고에 사로잡힌 경제학 교수들과 그들이 강의하는 신자유주의 경제학 강의들이 가득한 이 나라의 대학에 비주류 경제학이 발붙일 곳은 점점 사라져가고, 비판적 지식인을 생산할 수 있는 구조는 척박해지기 이를 데 없다. 교수와 사장/교수와 국회의원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지식인이 스스로 지배계급화되어가는 현실, 진보적 지식인들의 계속되는 변절, 구조 조정의 바람에 휩쓸려 죽어가는 '제도로서의 인문학', 시장 반응형 인간을 양성하려는 교육, 기업이 주인이 되는 대학......교육부와 전경련이 함께 경제 교과서를 만들어 노동을 조롱하고 재벌을 찬양하는 세상이, 이 책의 관점으로 바라본 21세기 초입 팍팍한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두 번째 장인 지식인, 지금 그들은 어디에 서 있나에서는 2007년 한국에 존재하는 '지식인들'을 그들의 이념에 따라 나누어 소개한다. 그리고 1987년 이후 한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지식인/국내외 저서에 대한 설문을 실시, 그 결과를 발표하였다. (백낙청, 리영희, 최장집, 강준만, 강만길/ 해방전후사의 인식, 전환시대의 논리, 태백산맥,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인물과사상/ 자본론, 한국전쟁의 기원, 제3의 길, 오리엔탈리즘, 감시와 처벌이 각 항목의 베스트 5로 꼽혔다) x축에 좌/우를, y축에 민족주의/탈민족주의를 놓고 그래프로 그린 2007년 한국인 지식인 이념 분포도, 주요 정치 사건과 지식인 사회의 주요 사건을 함께 열거해 놓은 80년대 이후의 지식인 사회 흐름도 등은 한 눈에 복잡한 지식인 사회를 파악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그러나 너무 단순화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생태주의와 뉴라이트의 경우 공히 탈민족주의로 분류되어 있는데, 양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분포도를 본 독자라면 '생태주의의 탈민족주의와 뉴라이트의 탈민족주의'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 아니냐는 말이다. (그래선 안되는 거 아닌가;) 그리고 우리 사회의 지식인들이 '정말 그렇게 확고한 이념을 가지고 있는가'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에는 이러한 분포도의 존재 자체가 가능한 것일지 회의스럽기도 하다. 워낙 자신의 이익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말바꾸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나라라. 특히나 이것이 노무현정부 말기에 만들어진 분포도이다보니, 지금은 크고작은 변화가 꽤 나타나 있으리라 생각된다.
세 번째 장인 지식인이 말하는 지식인의 위기는 지식인들이 직접 지식인 사회의 현실에 대한 위기 의식을 비교적 진솔하게 토로한 부분이다. 물론 한국 사회는 성찰과 미래의 대안을 희구하는 욕구가 어느 나라보다 강한 곳이기 때문에 지식인 위기론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고, 현재의 위기론은 지식인 자체의 위기에 대한 논의라기보다는 과거의 지식인상이 몰락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지식인상이 정립되지 않아 혼란상을 보이고 있는 것에 대한 논의라고 진단하는 이도 있으며, 인류 사회에 부패·부정과 평화 위협과 인권 탄압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지식인은 강력하게 부각될 것이라는 진술도 있다(과연 '강력하게 부각'될지, 그 '강력'의 정도가 부패·부정과 평화 위협과 인권 탄압을 눈 깜짝 하지 않고 저지르는 세력을 견제하고 긴장시킬 수 있을 만큼이 되기는 할지 등의 문제에 대해, 나 자신은 꽤 회의적이지만).
그러나 서구 편향, 자본 편향, 시장 편향이 현재 지식인 사회에서 동시에 나타나고 있으며 갈수록 그 경향이 심해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누구라도 긍정만 할 수 없으리라. 서구의 경험을 어설프게 원용하는 깊이 없고 비현실적인 지식사회와 세계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고민하기는 커녕 세계를 잘 모르는 자신에 대한 고민조차 없는 지식인들이 범람하는 현재. 미친 신자유주의의 바람이 한국에서 이토록 강하게 몰아치는 이유는 학교에서 또다른 지식인을 양성하고, 정치와 사회 운동에 참여하고, 겅제와 문화 권력에 복무하며, 정책을 만들어내고 시행하는 역할까지 함께 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그들이기 때문은 아닐까.
특히 이 장에 실린 박노자 교수의 인터뷰는 매우 읽어볼 만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지식인이란 인성을 황폐화시키는 사회 정치적 구조에서 환경과 인간을 좀더 친화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탐색하는 사람들이라 부르면서, 일제 강점기 후기 식민지 권력자들과 토착자본들에 의해 특권화된 몇 개의 학교 출신자들이 체제 안에서 비교적 높은 위치에 들어갈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면서 시작된 것이 대한민국 공무원 집단이었고 조선인 엘리트였기 때문에 한국 지식인은 출발부터 학벌 구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는 설명은 새삼 일제 강점기의 유산이 얼마나 뿌리깊고 촘촘한지 다시 한 번 느껴볼 수 있게 해 주었다.
4장부터 9장에서는 지식인 사회를 보다 구체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한다. 1~3장이 총론의 느낌이었다면 4~9장은 각론의 느낌이랄까? 정치/경제/문화권력·시민운동·정책지식과 지식인의 관계를 각각 살펴본 후, 9장에서 미국과 학술진흥재단이 지식인 사회에 얼마나 큰 힘을 행사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치권력과 거리를 유지하며 자기의 목소리를 내거나 정치적 이념·소신을 발휘하기 위해 정치에 참여하는 대신 '대세'를 따라 권력에 빌붙는 지식인들, 기업의 사외이사 자리를 사양하지 않으며 돈 몇 천만 원에 기업 측에서 원하는 대로 프로젝트를 해 주는 교수들, 친기업적이지 않다고 평가받는 학문이나 취업률이 낮은 학과는 퇴출시켜 버리고 수익 구조 창출에만 골몰하는 대학, 권력을 감시하지 않고 스스로 권력이 되어 자기 패거리 사람을 챙기는 데만 신경을 쓰는 운동가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에서 주류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은 이들의 설 자리는 찾아볼 수 없는 싱크탱크,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학문들이 판을 치고 학진에서 요구하는 논문식 글쓰기만이 인정받는 분위기 등등...읽어내려가는 내내 한숨이 절로 나는 상황이다.
그런데 타 장에 비해 문화권력과 지식인에 대해 논의한 부분은 약간 미흡하다는 느낌이었다. 이문열 얘기만 해도 꽤 많은 얘기를 끌어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스크린 쿼터 운동에 앞장섰던 이창동 감독이 문화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자신의 소신을 뒤집었던 이야기도 언급되었는데 문화권력과 지식인의 관계를 논한 것과 잘 어울리지 않는 얘기 아닌가 싶었고. 이창동이 자신이 가진 '지식인'으로서의 위치를 이용해 '문화권력'에 영합하거나 '문화권력이 되려고' 애를 썼다는 이야기라면 몰라도, 그 스스로 문화부 장관이 되기 위해 먼저 자신의 소신을 포기해 버린 것은 아니지 않나. 오히려 저건 정치권력이 된 후 자신의 소신을 포기한 지식인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더 어울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10장 지식인 사회의 새 경향, 대중지성에서는 지식인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으로서 대중지성(mass intellect)과 다중지성(multitudes intellect)이 논의된다. (이 장 말미에 수록된 조정환 씨의 인터뷰에 의하면, 대중지성이라는 말은 일반지성을 대체하면서 1960, 70년대에 만들어진 용어이고 다중지성은 인터넷 등장 이후 변화한 시대에 걸맞게 대중지성을 변용하고 그것의 특질을 좀더 분명하게 표현하기 위해 개발된 용어라고 한다)
사실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대중이 지식을 생산하는 주체로 떠오르고 있다는 이야기는 이제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 약간 식상한 느낌도 없잖았다. 기사에서 언급된 다음카페, BRIC, 초기의 오마이뉴스, 2002년의 노사모, 네이버 지식인 등이 이제는 전혀 신선하지 않은 화제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인터넷에 수많은 정보가 흘러넘치고 있지만 '과연 그 중 쓸만한 것, 믿을 만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라는 질문에 아주 긍정적인 답을 내놓기는, 사실, 자신이 없는 것이 현재의 상황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정환 씨가 제시한 다중지성의 소비에트 구축 문제는 꽤 흥미로웠다. 사람들이 무언가를 궁금해할 때 서적을 찾기보다 검색을 해 보는 것에 익숙해진지 너무나도 오래된 지금, 대중지성/다중지성의 출몰이 잘 된 일인지 잘못된 일인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좋은 방향(!)으로 이용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 시급한 일 아닌가 싶기 때문이다. 국가지성의 다른 한 편에 다중지성이 동시적으로 작용하면서 국가지성을 견제하고 긴장시킬 수 있도록, 국가적 지식체제로부터 다중지성을 분리하고 독립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조정환 씨의 발언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도 그것이다.
대중들에 대한 계몽과 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중지성의 잠재력을 다중 스스로가 느끼고 확인하면서 다중지성의 역량을 국가나 기업의 매개 없이 서로 직접 연결시키는 것이며, 국가나 기업이 다중지성을 빨아들여 착취하고 권력으로 전환시킬 수 없도록 비판과 저항과 탈주의 힘들이 연결 접속되어 물질적 정신적 삶을 스스로 조직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그의 발언은 변질된 기존의 지식인 사회/존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고정된 지식인상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의 빛을 미약하게나마 던져주는 듯 했다. (11장 지식인의 죽음을 넘어는 이제까지의 내용을 정리하고 종합하는 대담이므로 특별히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솔직히 책을 읽은 후 '과연 얘네들도 지식인이라 놓고 대접해줘야 하나' 싶은 몇몇 이들 때문에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다. 얼마나 '지식스러운지' 당최 알 수가 없는 허울을 자랑하며 지식인이라면 응당 짊어져야 할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이행하려 노력하기보다는 제 입맛에 맞는 이들과 집단을 형성해 권력으로 스스로를 변태시키려 발버둥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에게까지 지식인이라 이름붙여주고 지식인으로서의 사명을 강요해야 하는 건지, 그냥 '너희 가면 좀 벗어 응?'이라 대놓고 말하면 안 되는 건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전체적으로는 꽤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제목이 갖는 무게에 비해 책이 특별하게 두껍거나 무겁지도 않고, 시의적절한 주제를 비판적인 관점에서 비교적 일관적인 목소리로 다루고 있어 꽤 금방 읽을 수 있으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주는 책이었다. 중간중간 쉽지 않은 용어가 사용되기는 하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은 이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점에서도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책이다(물론 '누구나 폭넓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보기는 어렵지만). 지식인들을 바로 옆에서 바라본 기자들의 목소리뿐 아니라 지식인으로 자신을 정체화하고 있는 이들의 실제 목소리가 담겨 생생한 느낌도 준다.
2탄과 3탄이 나오기를 바란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고 빛의 속도로 보수화·우경화되어가는 ㅁㅂ정부 등장 이후의 지식인 사회를 조망해 본다면 좀더 문제있는 지식인들을 '과격하게' 비판할 수 있을 텐데. 특히 ㅁㅂ정권과 함께 사회 전방위에서 안 해도 될 활동을 지나치게 활발히 펼쳐 '아 좀 그만 보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게 만드는 N******* 같은 이들 말이다. 결코 쉽지 않겠지만, 5년에 한 번씩이라도 개정판이 나와 변화된 모습을 담을 수 있게 된다면 참 좋겠다. 아니면 10년에 한번이라도? ㅎ
* 지식이란 본래 실천적 개념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존재'가 아니라 '행위'다. 허위에 저항하고, 현실을 인간화하며, 가야 할 길을 묻는 한 그는 언제나 지식인인 것이다. -p.56, 박헌호
* 민주화라는 기만적 주술로부터 풀려났으면 좋겠습니다. 민주화된 적이 없잖아요.민주화라는 게 우리 사회에 퍼져있는 기만 가운데 가장 나쁜 기만이 아닐까 싶습니다. -p.86, 박노자
* 필요한 것은 하나로 있으면서 현실의 복합성에 조응해 변화하는 유연한 이성에 이르려는 노력이다. 그에 이어진 도덕적 이상도 좁은 투쟁적 목표를 넘어 넓은 인간성 실현을 위한 윤리적 질서를 지향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p.104, 김우창
* '지식인'이라는 문제는 그 자체가 자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지식이라는 것은 자기를 끊임없이 부정해 나가면서 갱신의 힘을 가져야 합니다. 변화를 추동하는 주체적인 세력으로서 자기 스스로 자기의 모습을 낮추지 않으면 전문지식이 많든, 사회적으로 알려졌든 알려지지 않았든, 권력이 있든 없든, 지식인이라 부르기 어렵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끊임없는 자기 갱신과 자기 부정을 수행하려는 노력을 강조하는 것으로 말을 맺겠습니다. -p.255, 박헌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