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한강, 비채, 2007)
2009. 10. 18. 22:37ㆍ흔드는 바람/읽고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한강 지음/비채 |
이번 가을엔 평소에 잘 읽지 않는 에세이에 자꾸 손이 간다. 지난주에는 아지즈 네신의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장영희 님의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을 읽었다. 아지즈 네신의 책은 유쾌했고, 장영희 님의 책은 음...아, 뭔가 마음이 콩닥콩닥했는데, 장영희 님의 책에 대해선 따로 포스팅을 하고 싶어서 더 쓰면 안될 것 같다.
그리고 그저께는 아주 오랜만에 한 강의 책을 집었다. 얼굴을 보면 참 사박사박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 않을까 생각되는 그녀의 에세이,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 한 강의 글은 '편안한 마음으로 가볍게 읽을 수 없는 글'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박혀 있는 탓에 그녀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바짝 긴장하는 편이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 앞에 실린 그녀의 사진을 보면서 행복해 보인다고 느꼈던 적이 별로 없다. 쓸쓸해 보이거나, 외로워 보이거나, 처연해 보였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사진 속의 한 강은, 한결 편안해 보이고 소탈해 보인다. 솔직히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 글들을 쭉 써내려가야 하기 때문이었을까. 심지어 뒷쪽에 실린, 밝게 웃는 표정의 한 강을 보고 있으면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튀어나온다.
인상깊은 구절을 몇 개 옮겨본다. 이 계절에 왠지 잘 어울릴 것 같은 :)
살아가다가 힘든 순간을 만난다. 그게 언제든, 어떤 형태든. 때로는 그로 인해 영혼의 일부 또는 전부가 파괴되는 경우도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어떤 본질이 막 파괴되려는 바로 그 순간의 자세라고 믿는다. 그 마지막 순간에, 최후의 당신을 지키는 가느다란 끈을 놓아선 안 된다. 놓았다 해도 다시 잡으면 된다. 어떤 지옥도 결코 무너뜨릴 수 없는 내면의 정수를, 그 가냘프고도 단단한 실체를 온 힘으로 느껴야 한다. 느껴내야 한다.
어렵지만. 정말 어려운 일이지만. 그 순간.
- <휠체어 댄스> 中
알 만한 나이가 됐다. 눈에 보이면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리운 것임을. 수많은 형태의 사랑의 허구를, 환멸의 배반을 알고 있다. 그러나 또한 알고 있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을. 그토록 쓸모없고 연약한, 부서지기 쉬운 찰나의 진실, 찰나의 아름다움만이 때론 우리가 가진 전부라는 것을. 심지어 치유의 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 <검은 바닷가, 그 피리 소리> 中
버스에 실려 어디론가 흘러가다가 라디오에서 실려온 노래 한 소절에 사로잡힌 적이 있는지. 한 시절의 기억이 통째로 불려나오는 것을, 실핏줄 하나하나가 그 기억들에 반응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어느 저녁 문득 오래 전의 노래가 혀끝에 매달려 흥얼거린 적이 있는지. 가슴이 먹먹해지거나, 베일 듯 아파오거나, 따스하게 덥혀져본 적이 있는지. 바로 그 노래의 힘으로, 오래 잊었던 눈물을 흘린 적이 있는지.
<노래의 날개 위에>라는 가곡도 있지만, 정말 노래에는 날개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한없이 아래로 무겁게 강하하든, 물방울처럼 허공을 향해 튀어 오르든, 짧게 흩어지든, 멀리 있는 당신을 향해 끈질기게, 부드럽게 유영하든......노래는 날개를 달고 우리 삶 위로 미끄러져간다. 노래가 없어서 그 날개에 실려 삶 위로 미끄러져가는 순간도 없다면, 우리 고통은 얼마나 더 무거울까.
- <노래의 날개> 中
편지가 전화보다 좋은 것은, 오래오래 생각해서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나에게는, 정말 중요한 이야기는 편지로 하는 버릇이 있다. 영원히 증거로 남아도 좋을 얘기만 써보자, 하는 마음가짐이 오히려 이야기를 잘 풀어준다. 글쎄요......하고 머리를 긁적거리거나, 먼산만 바라보거나, 웃음으로 대충 얼버무리거나 할 수 없는 백지 앞에서 상대방을 곰곰이 생각하다보면.
가끔 그렇게 옛날의 감각으로, 아주 오래 모니터 앞에 앉아 이메일을 쓴다. 문자 메시지를 보낼 때도 이렇게 쓸까, 아니면 저렇게 쓸까 고민하며 몇 분을 보내버릴 때가 있다. 글쓰는 사람이어서라기보다는, 오랫동안 편지를 쓰던 습관 탓이지 싶다.
오래된 노래가 좋은 까닭은, 혹시 오래된 마음이 좋아서일까?
- <편지> 中
누군가는 죽는다는 것이 더 이상 모차르트를 듣지 못하는 거라고 했다던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더 이상 나무를 보지 못하는 거라고 대답하고 싶다. 겨울날 뼈대를 드러내고 하늘을 향한 활엽수들, 봄날 연푸른 잎을 돋워내는 나무들. 그 줄기와 가지의 아름다움을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그 잎사귀의 빛과 소리를. 그 꽃과 냄새를. 열매의 빛과 맛을.
우리가 가장 나약할 때, 가장 지쳤을 때, 때로 억울하거나, 서럽거나, 후회할 때, 가장 황폐할 때, 길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나무는 그 자리에 있다. 땅속 캄캄한 곳에서부터 잔뿌리들로 물줄기를 끌어올려 잎사귀 끝까지 밀어올리며.
그러니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때로 이들을 바라보기 위해서라도. 고요한 몸. 더욱 고요한 눈길로 이들을 떠올리기 위해서라도. 어느 날 거울을 보았을 때, 내 그을린 얼굴 대신 한 그루 낮고 푸른 나무가 비칠 때까지.
- <나무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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