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909, 이즈음에.
2009. 9. 9. 21:46ㆍ흐르는 강/이즈음에
090909라는 연-월-일의 느낌이 좋아 오늘은 그동안 쓰지 않고 묵혀두었던 이런저런 말들을 써봐야겠다 싶었다. 막상 쓰려고 하니 머릿속에 엉켜 있던 온갖 말들이 부끄럽게도 여기저기서 무질서하게 튀어나온다. 아, 내가, 말이, 고팠나.
......처음으로 내가 '나이'에 대해 민감하게 느꼈던 건 열 네 살, 중학교 1학년 때였다. 돌이켜보면 내가 가진 애정이 그렇게나 많았다는 게 놀라울 만큼, 수많은 사람들을 좋아하고 시기하고 질투했으며 그로 인해 고민하면서 보낸 한 해였다. 그 일 년이 굉장히 즐거웠고, 열 네 살이라는 나이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막 여름이 시작되는 6월 초, 샛초록색의 이파리가 생각하는 내가 생각하는 열 네 살의 이미지에 제일 가까울 것이다.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하얗게 부서지는 여름의 햇살과 그 밑에서 뛰어놀던 소녀들의 하얀 교복 블라우스가 가장 먼저 그려진다. 그야말로 이제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눈부신 때였달까. 그래서 그랬을까, 그 즐거운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 나이가 기점이었다. 그 때부터 나의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빨라지기 시작했다. 열 다섯 때부터는 그다지 삶이 눈부시지 않았는데도 시간에 가속도가 마구 붙었다. 열 다섯 때부터 스물 둘 때까지는 나이를 먹는 것이 그리도 싫더니, 스물 셋이 된 후부터는 나이를 먹는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져 버렸다. 단지 그냥 나이'만' 먹는 인간, 많아지는 나이만큼 머리도 마음도 굳어버리는 '재수없는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바랄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빠르게 흘러가던 나의 시간이 딱 2년 전부터 갑자기 매우 느리게 흘러간다. 솔직히 나는 아직 2009년이 아홉 달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오늘이 그 9월의 9일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 너무나 어색하다. 기분같아서는 지금이 11월쯤 된 것 같고, 25일쯤 된 것 같은데, 어쩌면 아직도 9월 9일이지? 놀라울 뿐이다.
도대체 왜이렇지? 여러 번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하룻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내 삶 속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인 듯 하다. 만날 그 얼굴이 그 얼굴이라 해도, 시시각각 기분과 태도와 느낌과 표정이 다른 수백 명의 사람들을 매일매일 접해야 한다는 게 나에겐 여전히 고역이다. 그 수백명과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낸다는 게 매우 어려우며, 그 수백명을 시종일관 웃는 얼굴로 대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을 보낸다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므로. 나의 할 일은 그 수백명이 싫어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하게끔 그들을 부추기고, 그 수백명이 싫어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을 때는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고 윽박지르는 일이므로.
작년보다는 조금 덜 힘든가 싶다가도 매일매일 새록새록 힘이 들고 지친다. 어쩌면 이렇게 끊임없이 나의 감정과 다른 누군가의 것과 부딪혀야 하는지 경악스러울 지경이다. 그러다보니 점점 덜 생각하게 되고, 덜 노력하게 되고, 더 안주하게 되고, 더 게으르게 될까봐 겁이 난다. 나는 분명 어른이지만, 아직 '그 정도로' 썩어빠진 어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아무튼간, 이런저런 생각이 많은 요즈음이다. 한 주 한 주 헉헉대며 살아가기에 급급하여 어떻게 하면 내 삶을 내가 원하는 대로 꾸릴 수 있을까, 하는 수준높은 고민을 해 본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막연하게나마 옳은 것이라 믿고 있었던 추상적인 가치들이 복잡한 현실의 여러 맥락과 상황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채 믿어지던 것들이었음을 느낄 때마다 가슴이 갑갑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상과 현실을 명확한 구분 없이 나열하는 이들 속에서 머릿속이 지끈거림을 느낀다.
이럴 때 도움이 되는 건, 묘하게도 음악이다. 이러다 미쳐버리겠다 싶을 때마다 찾는 뮤지션들이 있다. 작년엔 미카가 큰 도움이 됐고, 올해는 제프 버클리 덕분에 살았다. 최근엔 베이루트도 많이 위안을 준다.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아마도, 나도. (승열오라버니 및 유앤미블루의 음악은 말할 필요도 없는 거고 ㅋ)
......그렇다. 9월이다. 그리고 9일이다. 2009년이 지나려면 세 달 하고도 20여일이 더 남았다. 하아. 나는, 벌써, 숨이, 찬데, 아직도 9월이라니.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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