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8. 13:30ㆍ흐르는 강/이즈음에
1. 1월 셋째주에 갑자기 감기에 걸렸다. 하 진짜 이렇게 독한 감기는 오랜만이었어서 정말 시름시름 앓았다. 한 3일 침대 위에서 꼼짝도 않고 누워 있었던 것 같다. 나중에는 너무 오래 누워 있으니까 허리랑 머리(뒷통수)가 아파서 어쩔 수 없이 일어났는데 일어나면 또 기침이 너무 심하게 나서 다시 자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었고 다행히 나는 평생 '잠이 안 와서 고민' 같은 걸 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ㅋㅋㅋㅋㅋㅋ (너무 많이 너무 잘 자서 문제임) 곧바로 또 잠에 들었다. 다행히도 휴가 직전에 낫기는 했는데 불행히도 휴가 때 하려고 했던 일들을 제대로 못 끝낸 채 휴가가 끝나버려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국 지금까지 망해 있다. 하 인생…………확실히 일이란 건 할 때 딱 해야 하는 건데, 한 번 밀려버리니까 너무 하기가 싫다. 집중력이 엄청 떨어져서 계속 질질 늘어진다.일을 하기 싫으니까 다음주에 있을 이벤트(일년의 가장 중요한 몇 가지 일들 중 하나임…농담 아니고 진짜임-_-//) 준비만 자꾸 하게 된다. 이제 반쯤 끝난 것 같은데 으음…이러다가 다음주에 아마도 엄청난 고난을 겪게 되겠지……그러지 않으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주말 내로 대충 완성을 해야 할텐데………과연 나새끼 할 수 있을 것인가?!?!?!
몸이 너무 아팠던 때에 동네 병원을 힘들게 힘들게 찾아갔었다. 아직 코로나 바이러스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기 직전이었지만 그래도 노인 환자분들이 꽤 많이 계셔서 생각보다 많이 기다려야 했다. 동네 작은 병원이었고 시간도 오후 4-5시 정도의 애매한 때였는데!!!! (세음행을 다 듣고 가느라 그 시간이 되어버렸음) 예전에 요팟시에서 '아직도 수기로 차트를 기록하는 의사가 있다'는 간호사분의 사연이 왔을때 유엠씨가 '아니 아직도 그런 병원이 있냐'며 놀랐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내가 찾아간 병원의 의사선생님이 바로 그 '아직도 있는 그런 병원'이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진료를 보셨을 것 같은 할아버지 의사분이셨는데 그래도 약을 잘 써주셨는지 약 먹고 팍 쉬니까 바로 나아서 다행이다.
다음에 아프면 또 갈지도 모르겠다. 여기 말고 다른 동네 병원도 이곳저곳 가봤었는데 소아청소년내과를 빼고는다 별로였다. 엄청 대충대충 봐주는 느낌이었달까-_- 그나마 여기가 나았다. 하지만 병원 로비(라고 하기엔 작은 대기실ㅋ)에 있던 저 액자를 보다가 안그래도 별로 없는 삶의 의지가 더 꺾이려 했던 건 치명적ㅋㅋㅋㅋㅋㅋㅋㅋ 치매에 시력 저하에 치아 약화에 고혈압 동맥경화 심근경색 골다공증 대장암이라니 그냥 죽는 게 낫지 않나요. 진심입니다.
병원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무심코 교통표지판을 봤더니 표지판 안에 '여유'가 가득. 1월 초에도 '여유'로 가득한 표지판을 보고 알 수 없는 부러움에 사진을 찍었었는데 이날은 저 '여유'가 더더더더더더욱 부러워 또 사진을 찍어놓았다. 내 인생도 저렇게 '여유'로 가득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3초쯤 했지만 불가능한 소망이라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닼ㅋㅋㅋㅋㅋ
2. 그래도 다행히 설날 연휴때는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까지 나아서 아빠한테 무사히 다녀왔다. 설날 당일까지는 좀 힘들었어서 그다음날 다녀왔다. 올해는 작년보다 더 자주 가겠다고 돌아오는 길에 다짐했다. 설 연휴 즈음부터 코로나 바이러스의 심각성이 이슈화되어 그런지 지하철 안에 사람이 정말 없었다. 점심 시간이 조금 지난 즈음이었는데 지하철 한 칸에 나 혼자 있어 기분이 묘했다. 기념으로 한 컷.
3. EBS는 올해도 펭수 장사를 하려나보다(라고 쓰니 되게 못되게 썼다는 느낌이다). 동네 산책을 하다가 EBS 근처를 들렀는데 여전히 정문 앞에 펭수 현수막이 커다랗게 걸려 있었다. 펭수야 너도 새해 복 많이 받으렴…
작년 여름 EIDF 때 조카+동생이랑 EBS에 놀러왔을 때는 저 2층이 저런 데가 아니었었는데 어느새 팽수의 숙소로 바뀌었었네 세상에. 저기 그냥 휑한 건물 빈터 같은 데였는데 어찌하여; 근데 저곳도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당분간 출입 금지 구역이 되었다. 출입 금지가 문제가 아니라 '펭수 숙소'를 '펭숙소'라고 EBS 안에 만들어놓고 '펭클럽'에게 공개한다는 거 자체가 너무 웃긴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곧 봄이라 그런지 기둥 곳곳이 '봄 버전 펭수'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까지 EBS에서 본 펭수 중에 제일 귀여웠음. 부디 펭수는 뽀로로와 그 친구들처럼 옷입히고 성별 역할 부과하는 짓거리 안하길 바람. 뽀로로와 그 친구들이 옷을 입기 시작하면서 뽀로로에 정나미 떨어진 사람=나.
그날 EBS 로비에서는 뚝딱이가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동네에 방송국이 있으니 신기한 구경도 하고 좋구나 아주////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뚝딱이가 이병준배우와 연기를 하고 있었고 EBS 건물 1층의 이디야에서 아르바이트생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신기해서 동생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동생이 '뚝딱이 일곱살인데 미친거 아님'이라고 황당해함. 아 뚝딱이가 일곱살이었구나…아니 EBS 공공기관이면서 이렇게 아동노동시키면 되겠어요????
4. 휴가 중에 연말정산하려 직장에 갔더니 전화기가 다 바뀌어 있었다. 돌봄노동자 및 감정노동자들의 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아 이걸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계속 찾아봤는데 마땅한 단어를 도저히 못찾겠다. 그냥 '고객님'이라고 해야 되나-_-)의 막말과 헛짓으로부터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녹음 기능이 탑재된 전화기를 직장마다 배치한다는 소문이 있더니 진짜였어!!!! 직장은 070 전화를 사용하고 있는 기관이었는데 이번에 기계를 바꾸면서 통신사도 바꿔가지고 전화번호가 다 바뀌었다. 덕분에 내선번호가 다 바뀌어서 휴가 후의 업무 환경이 아주 엉망이었다ㅋㅋㅋㅋㅋㅋㅋㅋ 아오 하지만 이 무엇도 내가 일을 지금까지 미루고 있는 변명이 될 수는 없다ㅠㅠㅠㅠ 그냥 나의 의지 부족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휴가 후 출근길에 버스정류장에 갔더니 정류장 벤치 위에 손소독제가 마련되어 있었다. 이정도면 나는 그래도 한국 사회에서 방역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작금의 인종주의와 중국혐오 및 조선족비하는 정말 지긋지긋하고 너무 환멸나기 때문에 더이상은 코로나의 '코'도 말하지 않겠음. 쓰잘데없이 사회 전체의 공포를 자극하면서 민족주의(라기보다는 수구적 국수주의)를 앞세우는 사람들 다 먼지가 되어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 아아악 짜증나.
앗 그러고보니 지난달에 받은 건강검진 결과지도 아직 확인 안해봤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나새끼 절레절레-_- 여기도 동네의 작은 병원이었는데 건강검진 기다리는 내내 간호사님들(40대 이상으로 추정)이 남성 간호사분(20대로 추정)의 커피 취향을 질문하시던 게 기억난다. 왜 믹스커피를 안좋아하냐고 물어보셨는데 참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고 생각했음ㅋ
5. 얼마 전에 동생이 라면을 먹고 싶다고 해서 엄마가 오뚜기 라면들을 와르르 사왔다(라고 쓰다보니 라면이 먹고 싶어진다. 뭐야 이거 고로상도 아니고……하라가 헷타! 를 외치는 고로상 얼굴이 눈에 선하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라면과 오동통면이야 워낙 익숙한 존재들이니 응 왔구나 싶었지만 짬짜면은 낯선 존재. 너는 누구냐 하고 기대했더니만 그냥 해물짬뽕과 짜장면이 두 개씩 든 것이었다. 허탈하였닼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허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해 해물짬뽕을 끓여먹었음. 아 진짜로 라면 좀 먹어야겠네 이따가…
6. (진짜로 해물짬뽕 끓여먹고 돌아옴) 설날 전후로 조카가 독감에 걸렸다. 조카도 엄청 고생하고 동생도 엄청 고생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독감에 걸렸던 게 차라리 다행이었던 것 같다. 좀더 늦게 걸렸으면 분위기도 흉흉한데 병원 가기도 얼마나 조심스러웠을까; 조카를 볼 때마다 한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얼마나 어렵고 귀한 일인지 느낀다. '어머니는 위대하다' 따위의 모성에 대한 신격화를 하고 싶다는 게 절대 아니고, 양육/보육/교육이라는 것이 한 개인의 임무로 온전히 주어져서는 안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거다. 그만큼 힘든 일이기 때문에.
조카는 케이크를 좋아하고 촛불 끄는 것을 좋아한다. 지난주에 독감 완쾌 기념(!)으로 케이크를 샀는데 처음에는 작은 조각으로 살까 하다가 그냥 홀케이크를 사버렸다. 원래는 이 아래 사진의 가운데 것을 사려고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까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조카는 엔젤이를 좋아한다. 스티치의 친구인 엔젤이가 조카의 애착인형이다. 동생이 애착인형용으로 여러 인형들을 사두었었는데 그것들을 다 외면(?)하고 내가 선물받은 엔젤이를 선택했다. 이런 걸 보면서 인간의 취향이란 도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2세도 안된 아이가 어떤 기준으로 대상에 대한 호오를 판단하게 되는 것일까. 이것이 저것보다 좋다는 느낌이 인간에게 생기는 메커니즘은 뭘까. 사회화가 되어 있지 않더라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편향적 경향을 띌 수밖에 없는 걸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뇌과학이나 진화심리학이나 생명과학에 관한 책을 읽어야 하는 걸까.
7. 낭만닥터 김사부 시즌 2를 보고 있다. 당연히 한석규아저씨 때문에 보는 것이닼ㅋㅋㅋ 내 취향은 김사부보다 왓쳐지만 김사부도 재미있다. 한석규아저씨는 정말 좋고 너무 좋다. 그래서 김사부도 좋다. 마음같아서는 김사부 얘기만 나왔으면 좋겠다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지상파 드라마.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대중적인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비현실적인 얘기지만 드라마니까 비현실적이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드라마에서까지 수술실 안에서 몰카 찍고 여자탈의실에 몰카 설치하는 의사 얘기 같은 걸 보고 싶지는 않으니까. 아아아 또 인간 환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8. 재작년 즈음부터 마거릿 애트우드 선생님을 매우 좋아하게 되어 작년까지 애트우드 선생님의 책들을 열심히 사모았다ㅋㅋㅋㅋㅋㅋㅋㅋ 시녀이야기를 읽고 엄청 충격을 받아서(좋은 의미) 직장의 믿을 만한 팀원들에게 열심히 추천했는데 과연 읽었을지 모르겠다. 아마도 안 읽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시녀 이야기 말고 페넬로피아드를 추천할 걸 하고 지금 와서 생각한닼ㅋㅋㅋ 어쨌든간 애트우드 선생님 너무 좋아합니다. 시녀이야기 후속편 나온 것도 빨리 사야 할텐데. 사실 그 전에 저 책들을 다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내가 다 읽지 않고 새 책을 사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ㅋㅋㅋㅋ
2월 안에 이 책들도 다 읽고 저 CD들도 열심히 들을 것이다. 세계의 호수는 다 읽었고 암송은 아직 안 읽었다. 기타 연습도 해야지. 손가락이 짧아 슬픈 짐승이라 코드를 잡는 게 쉽지 않지만 그래도 기타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사실 기타를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아 이런 마음이라서 일이 더 안 되는 것인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9. 마지막으로, 올해의 내게 주고 싶은 문장들 몇 개. 올해는 책방이듬 안에도 들어가보고 싶은데 과연 될까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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