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917 파주북소리2017 독(讀) 무대 낭독공연 - 김연수소설가님 @파주 지혜의숲

2017. 10. 4. 01:29✒/다시 한달을 가서

파주북소리 2017깊은 밤, 기린의 말


정말 오랜만에 김연수소설가님을 보러 갔다. 소설가님을 처음 뵀던 게 예전 산울림소극장에서였고(언젠가 싶어 찾아봤더니 2011년이네 흐억) 2012년에 창비카페에서 강정마을을 지키자는 의미의 공연이 있었을 때 또 갔고. 그 해 여름에 <지지 않는다는 것> 출간되고 교보에서였나 사인회 하셔서 또 갔고. 그해 여름에 ebs 공감홀에서 <바람이 파도의 일이라면>뭐라고 쓴거야 미친나새낔ㅋㅋㅋ<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낭독 공연 있을 때 또 갔고. 그해 가을에 자음과모음에서 이 소설 나왔을 때 작가와의 만남 같은 행사 있었어서 또 갔고…그러고 보니 2012년에 집중적으로 봤네. 2013년부터 작년 상반기까지는 승열오라버니 공연도 제대로 못 갔었으니까 음…당연한 건가.


9월에 이런저런 공연이 너무 많았어서 좀 쉬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신문을 보다가 파주북소리 기사를 봤고 김연수소설가님의 소설 낭독회가 있다는 기사를 또 봐서ㅠㅠ 안 갈 수가 없었다. 작년에도 가고 싶었는데 뭔가 일이 있었어서 못 갔어가지고. (무슨 일이었는지는 기억이 안나넼ㅋㅋㅋ) 결국은 이 전주인 10일에도 파주행, 17일 일요일에도 파주행. 경의선 타고 야당역에서 내리면 마을버스가 있다니까 그걸 타고 가면 안 늦게 도착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큰 걱정 없이 지하철을 탔다. 그것이 나의 잘못ㅋ


이 전주에 명필름아트센터 가는 길도 쉽지 않았는데(마을버스 왜이렇게 안오지? 하며 다른 정류장으로 갔다가 30분에 한 번 온다는 차 놓칠 뻔ㅠㅠㅠㅠㅠㅠㅠ) 이날도 쉽지 않았닼ㅋㅋㅋㅋ 야당역에서 내렸더니 버스가 약 30분에 한 대씩 온다네. 그때가 세시 반쯤이었는데 세시 20분쯤에 이미 차가 한대 떠나버린 터여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기. 도착한 버스는 4시 10분에 출발한대서(행사가 30분에 시작인데!!!!) 그래 20분만에 도착할 수 있을지도 몰라!!!!!! 하며 헛된 욕심을 가지고 올라탔는데,


문제는 내가!!!! 다산교앞정류장에서 내려야 하는데!!!!! 아무 생각 없이 출판단지앞삼거리에서 내려버렸다는 것^^^^^^^^ 내려서 읭…?????? 하다가 지도를 찾아보고 걸어서 30분 거리임을 확인하고 나니 더이상 화도 나지 않고 조급한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래 됐어 오늘은 이런 날인가봐^^^^^^^^ 하며 롯데아울렛을 지나 온갖 출판사 건물을 지나 드디어 지혜의숲 도착ㅠㅠㅠㅠㅠㅠ


이 표지판이 보이는 순간 가서 끌어안을 뻔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혜의숲 벽에 붙어 있던 파주북소리 현수막!

이거 보러 왔어요 이거…그러나 시간은 이미 5시가 넘었고ㅠㅠㅠㅠㅠㅠ


작가와의 만남(은희경소설가)이 한창 진행중인 지혜의숲3을 지나 조심조심 대회의실 입구를 찾아갔다. 행사 시작된지 30분이 넘었을 때라 안들여보내주면 어쩌지ㅠㅠ하는 마음으로 '저 지금 들어가도 되나요???'라고 물어봤더니 사전신청했냐고 물으셔서 (희망을 갖고)네! 네네!!! 네네네네!!!! 라고 대답하자 들여보내주심. 감사합니다ㅠㅠㅠㅠㅠ 안그래도 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사월의 미, 칠월의 솔> 읽다가 '깊은 밤, 기린의 말'과 '주쌩뚜디피니를 듣던 터널의 밤'에서 눈물이 터져서ㅠㅠ 억지로 억지로 참다 왔었는데 못들어갔더라면 아마 다 못 운 걸 그 앞에서 터뜨려버렸을 지도 모른다흑흑흑흑.


낭독공연은 많이 진행되었어서, 내가 듣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기린이 태호네에 입양된 뒤였다. 기린의 이름을 가족들이 함께 짓는 부분. 좌석에는 불이 꺼져 있었고 배우분들이 공연하시는 무대에만 불이 켜져 있었다. 네다섯 분의 배우들께서 쌍둥이들과 엄마와 그 외 다른 인물들의 대사를 주고받으셨고, 피아노 연주하시는 분이 계셨다. 김연수소설가님은 무대 바라보고 오른쪽 좌석에 앉아 공연을 보셨다.


잠시 후 공연이 끝났고, 소설가님과의 질의응답 시간이 시작됐다. 운좋게도 앞쪽에 빈 자리가 있어 옮겨갔다.


무대 위에 올라가신 소설가님.

공연 잘 봤다며 배우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시던 소설가님.

5년만에 소설가님 본 건데(그 사이에 일산에서 퇴근하다가 한 번 우연히 본 적이 있긴 하다ㅋㅋㅋㅋㅋㅋㅋ)

특별히 나이드셨다는 느낌도 없고…나혼자 반가웠다하하하하.

초반에는 왼쪽에 서계신 분께서 진행을 하셨다.

소설가님은 자리에 앉으셨고.그냥 한번 당겨보았다하하하하하;;


작년 공연과의 차이점을 말씀해 주셨는데, 이 전 소설집(세상의 끝 여자친구)에는 자기가 자기 얘기를 하는 소설이 많았던 까닭에 작년 공연은 거의 독백 중심으로 진행됐던 데 비해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는 자기가 남의 얘기를 하는 소설이 늘어나서(그러니까 1인칭 주인공 시점이 아닌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들이 많이 실렸다는 것) 혼자 얘기하는 대신 바깥에 있는 사람과 얘기하는 느낌, '같이 무엇을 한다'는 기분이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사람과 사람이 부딪치면 반드시 서사가 생긴다'는 말씀을 하셨던 게 인상적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태호는 자폐를 앓고 있는 소년이다. 소설 속에서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는다. 결국 이 소설은 태호를 둘러싼 사람들을 통해 태호의 삶에 대해, 그 삶이 얼마나 절망스러운지에 대해, 하지만 남들에게는 사소해보이는 무언가가 큰 희망이거나 축복이 될 수 있는 건지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걸 염두에 두신 듯, 김연수소설가님은 '피아노가 태호였던 것 같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사람들의 대화 사이사이에, 또는 대화를 배경으로 연주되던 그 음악이 태호였는지도 모른다…나와 아무 상관 없어 보이는 얘기가 사실은 내 바로 옆의 얘기, 내 얘기일 수도 있다는 걸 이 소설로 전해주고 싶으셨던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소설이란 타인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고 내 선택에 대해, 내가 알던 세상에 대해, 계속 질문을 던지게끔 해 주는 것이기도 하니까.


사회자분 보시고,관객=독자들 보시고.


하지만 소설가님은 태호의 얘기가 '내 얘기'일 수 없음을 명확히 말씀해주셨다. 자폐라는 병, 그러니까 말이 전달되지 않는 병에 대해 쓰고 싶었는데, 그로 인한 고통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 처음엔 못 쓰겠다고 생각하셨다고. 내가 하려고 하는 말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가 아는 의미를 정확히 전달해야 하는데, 내가 아는 의미가 너무 적거나 없으니까 전달할 수 없다고 생각셨다고.


그런데 그 생각이 바뀌셨다고 했다. 의미를 몰라도 써 보자는 생각이 드셨다고. '쓸 수 없는 것도 쓰자'라고 표현하셨는데, 그 '쓸 수 없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모르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그에 대해 전달할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드셨다고 했다. 대신 자기 생각/입장으로 말하지는 말자고 생각하셨고, 인물들의 심정에 대해서는 정확히 쓸 수 없으니까(쓰기 어려우니까) '전혀 모른다고' 생각하고 쓰자는 마음으로 쓰셨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이 동물을 보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동물의 입으로 하는 것, 처럼 쓰지는 말아야겠다고 말씀하시면서 이걸 '의인화'라는 단어로 설명하셨는데, 그 말씀을 들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의 상황과 감정과 기분을 이해하려고 더 많이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노력하기보다는 그냥 '대강'만을 보고, 아 대충 이런 거겠지 하면서, 다 아는 척하고 이해하는 척하고 충고하는 척했던 적이 나는 얼마나 많았을까. 타인에게 공감하는 척하면서 사실은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한 적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내가 할 말이 내가 들은 말보다 중요해서 내게 이야기를 들려준 이들을 쉽게 대상화한 거 아니었을까.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한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인데, 요즘의 나는 그걸 너무 쉽게 하고 있지 않나…싶어 결국은 또다시 자아성찰 흑흑흑. 왜 내가 좋아하는 모든 존재들은 늘 나를 반성하게 하시는 걸까ㅠㅠㅠㅠ


질문 들으시는 중.

아 표정 좋으시다 >_<

이 푸른빛이 참 예뻤다!

관객=독자분들의 질문이 계속 이어졌다.


희망에 대해 묻는 독자분에게, '깊은 밤, 기린의 말'을 쓰시면서도 희망이란 걸 확신하지 않으셨다면서 '작가로서 이해되지 않아도 써야 할 게 있다. 희망에 대해 말하고 싶으나 확신할 수 없다'고 하셨다. 자폐에 걸린 아들보다 하루 더 사는 것이 희망일 만큼 삶이란 희망과 거리가 먼 것인데, 그걸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그저 짐작만 할 뿐이라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는 모습을 보며 '소설에서 희망을 말하는 작가'와 '소설에서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작가'라는 이분법을 에둘러 지양하신 게 아닐까 싶었다. (작가님 세상에 희망이란 있나요 없나요? 작가님은 희망을 믿으시나요 안믿으시나요? 같은 질문 너무 안좋다고 생각한다ㅠㅠㅠㅠㅠㅠ)


가시적인 목표를 세우고 달성되었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세속적 희망'을 중시하는 사람들에게 '앞이 안 보이는 말티즈(기린)'란 전혀 희망일 수 없다. 현실적인 가치관에서 보자면 태호와 태호 가족의 삶은 실패 혹은 실패가 예정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간이니까, 이 절망적인 상황을 어떻게든 뒤집으려고 해야 하지 않나, 받아들일 것인지 거부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지 않나…이게 소설가님이 <지지 않는다는 것>에서 말씀하신, '이기는 건 아니지만 지는 것은 절대 아닌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날 소설가님이 말씀하신 '눈에 보이지 않는 희망'이라는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사람은 너무 괴로워서 죽을 수도 있지만, 그 괴로움 속에서도 남의 눈에는 절대 보이지 않을 사소한 무언가를 찾아내거나 기다리면서 '살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인간이니까.


태호와 같은 아이를 실제로 가르치고 있다는 독자분의 질문을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들으셨다.


그 외의 가벼운(?) 질문에도 재미있게 대답해 주셨는데ㅋㅋ 최근에 여행한 곳에 대해 물으셨더니 불교방송TV에서 '수행자의 밥상'이라는 프로그램을 하는데 세계의 수행자들을 찾아가 그분들과 함께 '먹방'을 하는 것이라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셔서 스페인에 다녀오셨다고 했다. 젊은 수행자들이 없어서 그곳에 가면 '미래도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분위기라면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채식 먹방을 하셨다고. 맛있으셨던 느낌이었닼ㅋㅋㅋㅋ 미사 때 수녀님들이 소프라노로 독창을 하시는데 천사 같으셨다며! 교회에 소리가 울려퍼졌을 때 느꼈던 감동을 행복한 목소리로 말씀해 주심.


즐거우신 표정 >‿<

수녀님 얘기 하시는 중,

수녀님 표정 흉내내시는 중(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찾아보니까 11월쯤에 방송된다던데ㅋㅋㅋㅋ 꼭 봐야겠음ㅋㅋㅋㅋㅋㅋㅋㅋ


'깊은 밤, 기린의 말'에서 엄마와 태호가 치킨을 먹는 장면에 대해 얘기하시면서 '바깥 자리(야외 테이블을 말씀하신 듯)'에서 프라이드 치킨 먹는 것을 너무 좋아하신다면서 웃으심. 예전에 김중혁소설가님이 라페 근처를 걸으시면서 사람들이 밖에 나와 치맥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아 여기 어딘가에 김연수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시다가 바로 김연수소설가님과 눈마주치셨다는ㅋㅋㅋㅋㅋ 얘기를 하셔서ㅋㅋㅋㅋㅋ 집에 오는 길에 도대체 어떤 치킨집일까 매의 눈으로 찾아보고 싶었지만 제가 사생팬도 아니고 그런 짓은 못하겠어요엉엉엉. 달리기는 여전히 꾸준히 하고 계신데 최근에는 봄마다 미세먼지가 심해서 달리기를 하실 수가 없으셨다며(ㅠㅠ) 지금부터 겨울까지가 달리기 좋은 때라고 하심. 소설도 여전히 호후공원 앞 작업실에서 쓰고 계신다며 '어지럽지만 내가 잘 아는 공간'이라고 말씀하셔서 혼자 너무 웃었닼ㅋㅋㅋ 남들은 왜이렇게 어지럽혀져 있냐고 하겠지만 어지럽히는 사람에게는 나름의 질서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어지럽히는 사람=나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잇 이런 표정도 너무 귀여우셨고!!!!!

눈가의 주름이 '웃는 주름'이신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도 나중에 소설가님처럼,

'많이 웃었던 흔적'이 자연스럽게 잡히는 사람이 되면 참 좋겠다.

(사실 나에게는 그때까지 살아 있을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


요즘 자주 듣는 음악에 대한 질문을 받으시고는 라디오를 많이 들으시는데 최근에 MBC 파업 때문에 노래가 계속 나온다는 말씀을 하시고(내 주위에도 '파업 하니까 노래 많이 나와서 좋다'는 사람들이 많음ㄷㄷㄷㄷ) 아이튠즈 라디오도 많이 들으신다고 하심. 이번 여름에는 등려군의 앨범을 계속 들으셨는데, 1983년에 나온 '담담유정'이라는 앨범이라고 하셨다. 여름 내내 들으셨는데 가을 되니까 안 듣게 되더라며 '처음 들을 때는 1983년의 노래였는데 지금은 2017년 여름의 노래가 되었다'고 하셔서 혼자 너무 감동받음ㅠㅠㅠㅠㅠㅠ 1년 전 10년 전 아니 100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도 지금을 살아가는 나에게 얼마든지 감동을 주고 위안을 줄 수 있는 게 예술의 힘일 텐데-음악도, 문학도, 미술도, 다른 그 무엇도-그 딱딱하고 재미없는 말을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말씀하시다니. 역시 작가란 흑흑흑.


질문 받으실 때, 대답하실 때 찍었던 사진들을 좀더 올려보면-



끝나고는 독자=관객들에게 사인해주시는 시간도 있었다. 챙겨간 <사월의 미, 칠월의 솔>에 받았다. 이날 사실 승열오라버니 씨디 가져가서 드리려고 했는데 깜빡 잊어버렸ㅠㅠㅠㅠ 올해 겨울이나 내년 봄에는 작가님 새 소설집이 나와서 서점에 사인 받으러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새 책 나오기 전에-가능하면 올해 안에 소설가님 책들 다시 쭉 읽어봐야지. 소설가님 건강하세요. 아름다운 글 계속 많이 써 주세요. 


이 아래는 사인하실 때 찍은 사진들 ;)





중요한 건 우리가 함께 하는 시간들이라고. 감사합니다 김연수소설가님 :)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찍은, 파주북소리2017 현수막과 포스터. 내년에 또 만나요, 파주북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