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7. 13. 16:28ㆍ흐르는 강/소박한 박스
세상에 블로그 너무 오랜만이다. 올해 많이 바쁘긴 했나보다. 하긴 이렇게까지 로그인 자체를 오래 못했던 건 처음인 것 같다. 로그인하려고 하는데 비밀번호를 세 번이나 틀렸으니까. 네 번째에 성공했더니만 로그인을 오래 안해 휴면 상태로 전환됐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블로그 휴면이라니, 낯설고 신기했다. 6개월간 블로그 한 번 로그인할 시간도 없이, 어떤 시간을 보냈던 거지 싶었다.
많이 바쁘기는 했다. 사실 늘 바쁘다. 생각해 보면 직장인이 된 이래로 바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 기억 속에서는 직장인이 되기 이전의 시간은 엄청 빠르게 지나가 있고, 직장인이 된 이후의 시간은 꽤 천천히 지나간다.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나이 들면 안 그러는데, 아직 나이를 덜 먹어서 그러는 거야.'라고 주변의 '어른들'이 꼭 한 마디씩 하시는데, 그런 말을 듣는 시간 자체가 이미 10+n년이 되어 버렸다. 이제 나는 남들이 뭐라든 내 '직장인으로서의 시간'은 빠르게 지나가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산다. 대신 퇴근 이후의 시간이나 출근하지 않는 날의 시간은 출근 이후의 시간이나 출근하는 날의 시간이 빠르지 않은 만큼 더 빠르게 지나간다.
매일매일 해야 할 일들이 많고, 그 와중에도 새로 할 일들이 계속 생겨나고, 하나의 일을 진득히 끝낸 후 그 다음 일을 차분히 시작하는 성미가 되지 못해 한번에 여러 가지 일을 벌여 놓는 타입이고, 그냥 나라는 인간 자체가 3 steps 혹은 3 depths 정도로 끝낼 수 있는 일을 12 steps 혹은 12 depths 정도로 끝내야 속이 시원한 인간이기 때문이라는 게 현재까지의 결론이다. 언제부턴가 책을 읽을 때도 여러 권을 동시에 읽는 사람이 되었다. 두세 권을 돌려 읽는 것도 아니고 예닐곱 권을 조금씩 조금씩 번갈아가며 읽는다. 재작년부터 조금씩 조금씩 읽었는데 아직도 다 마지막 페이지를 보지 못한 책도 여러 권이다.
올해 상반기도 여전히 바빴다. 작년에 조카가 태어난 이후에는 조카 돌보는 일을 시간 날 때마다 도우려고 노력하는데, 유아와 시간을 보낸다는 건 많은 체력 소모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 노트북 켜고 앉아 사진을 다듬고 문장을 적을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직장에서도 엄청나게 바빴다. 올해 속해 있는 세 개의 팀 중 한 팀에서는 경험이 적은 팀원들을 끌고 가야 하는 역할을 맡게 됐고, 또다른 팀에서는 부장님을 근거리에서 보좌(!)하며 팀을 챙기는 역할을 맡게 됐고, 또다른 팀에서는 다른 팀에 비해 수적으로 많은 인원들을 말썽 없이 융화해가야 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셋 다 쉽지 않다. 할 일도 많고, 할 말도 많다. 하지만 할 일이 많고 할 말이 많은 것보다 힘들었던 건, 감정적인 부분이었다.
나는 스무 살 이후로 꽤 오랜 시간 동안 감정의 과잉을 경계하는 태도를 취했었다. 지나치게 나이브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감상에 빠지지 않으려고 애썼고, 어떤 상황에서 특정한 감정들이 나를 사로잡으려고 할 때면 그냥 그 상황에서 떠나 버렸다. 한동안 굉장히 냉소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이었기 때문에,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면서 가까워져야 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싫었다. 감정을 나누고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서 깊은 실망과 환멸을 느꼈던 경험도 여러 차례 있었고. 그 관계들은 당시의 나에게 소중한 것들이었으므로, 이를 회복하기 위해 나는 당시의 상황과 감정을 다시 직면해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소모하느니, 그냥 그 시간 자체를 내게서 삭제하는 게 더 편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면서 나는 관계의 힘을 믿지 않고 관계를 맺는 것 자체를 즐기지 않으며 어떤 감정들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거나 아예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되었다.
그러다가 지금의 직업을 가지면서, 다시 수많은 관계들을 맺게 됐고, 수많은 감정들을 접하게 됐다.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 그로 인해 내가 소모되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우개처럼 닳아 사라져간다고 생각했다. 내 어떤 부분들이 더 뭉툭해지고, 더 쓸모없어진다고 생각했다. 매일 얼마나 이걸 더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겉으로는 열심히 살았지만-혹은 사는 것처럼 보였지만, 점점 황폐해진다고 느꼈다. 승열오라버니의 공연과 음악과 노래로 겨우겨우 버텼다고 생각한다. 생각뿐만이 아니라, 사실이다.
지금은 안다. 그 관계들과 그 감정들이 나를 버티게 해 주는 또다른 버팀목이 되어 주고 있다는 걸. 하나하나의 관계가 여전히 조심스럽고 가느다랗고 툭 끊어질 듯 약하지만, 그래도 그 약한 것들이 하루를 사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걸. 의무감이 앞서던 관계들이 내게 살 기운을 주고 있다는 걸 늦게서나마 깨달았고, 그 이후로는 '그래도 고마운 마음'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이제 겨우 한 5년쯤 된 것 같다.
그런데 올해는 좀 벅찼다. 내가 처리해야 할 감정들이 너무 많았고, 속에 쌓이는 감정들도 너무 많았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감정들을 처리하는 내 나름의 속도가 있는데, 그 속도가 들어오는 감정들을 제대로 따라잡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의도하지 않았던 자리에 자주 서 있게 됐었는데, 그 자리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체는 정말 고마운 일이었지만 그 자리에 섬으로써 내가 접하는 감정들과 내 안에서 생겨나는 감정들은 생각보다 거대한 것이었다. 때때로 숨을 쉬기가 힘들다고 느낄 만큼, 여러 감정들에 묻혀 헉헉댔다. 혼자 있을 만한 곳을, 숨 돌릴 시간을, 찾으려고 틈을 내어 돌아다녔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승열오라버니와 그 관계들 덕분에 어찌저찌 버텨낼 수 있었다. 3월도 힘들고 4월도 힘들었는데 5월도 힘들고 6월도 힘들어서, 6월말에는 도대체 올해 왜 이러지?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는 늘 이래왔던 것 같다는 걸. 매일이 힘들고 매달이 힘들고 매년이 힘들고, 그냥 그 힘든 게 내 삶인데, 그 삶이 어떻게든 끊이지 않고 굴러가고 있는 건 나 때문이 아니라 나에게 힘을 주는 존재들 때문이라는 걸. 그 존재들은 당연히 이승열, 그리고 나를 거미줄처럼 약한 힘으로 동동 싸매고 있는 여러 관계들.
승열오라버니는 작년부터 공연을 많이 안 하고 계신다. 세계음악기행 DJ 역할을 가장 열심히 하고 계신 것 같다. 그래도 3월의 롤링홀 공연 때는 역시 세상에서 가장 멋있으셨다. 7월에는 지산락페스티벌에 나오실 거라, 일찍부터 예매하고 기다리는 중이다. 지산락페 후기는 제발 꼭 바로 써야지ㅠㅠ
줄드의 공연은 1년 이상 끊겼다. 그래선지 공연을 아주 드물게 갔었는데, 그래도 생각의여름은 찾아 보려고 노력한다. 벨로주에서는 습기를 앵콜로 청해 들었고, 재미공작소에서는 다섯 여름이 지나고를 앵콜로 청해 들었다. 너무 좋았다.
굉장히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던 아이엠베이글도 올해 드디어 다녀왔다. 여기서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읽었다. 윤이형소설가님의 수상작이 너무 아름다워서, 베이글을 씹으며 수프를 삼키며 계속 울었다. 아이엠베이글 다녀온 후기도 올해 안에 쓸 수 있었으면.
오랜만에 쓰는 글인데, 큰 의미 없는 글이라 쓰고 나니 마음이 편해진다. 뭔가를 계속 기록해놓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승열오라버니를 뵙고 온 날의 기록은 물론이고 내 별 것 없는 일상이더라도. 올 상반기는 자꾸 무언가를 내 안에 들여놓기만 하고 밖으로 내놓지 못했던 시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힘들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매일 읽고 있으니까, 매일 조금씩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포스팅 자체는 매일 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2019년의 반, 꾸역꾸역 잘 살아 왔다고 생각한다. 잘 버텼다 나자신. 남은 반도 잘 버텨냈으면.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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