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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호를 타고

190720 생각의여름 - 파랑새극장 기획공연 [1]

파랑새극장에서 '음악 심은 데 음악 난다'라는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파랑새극장 웹사이트에서 프로젝트 설명을 인용하자면,

 

이것은 파랑새극장 사이트에 올라온 생각의여름 소개글. 사춘기의 다음이라는 저 설명 엄청 오랜만이다…


‘음악 심은 데 음악 난다’는 장기 프로젝트로, 파랑새극장이 8-90년대 음악 공연장으로 운영되던 당시 많은 음악가들의 데뷔 무대가 되었던 것처럼, 다시 이 공간에서 다양한 음악과 공연이 소개되고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프로젝트는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하나는 프로젝트의 취지에 공감하고 초대에 응해주신 아티스트분들이 진행하는 공연이고, 다른 하나는 이것을 통해 파랑새극장이 얻은 수익의 일부를 투자하여, 다양한 장르의 신예 뮤지션이 오픈 마이크 형태로 진행하는 공연입니다. (출처: parangsae.theater/show/p/122)

김목인 & 권나무씨의 공연은 못 갔지만 생각의여름 공연은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나는 이번에도 예매 오픈 시간을 일하다가 놓쳐버렸지만^^^^^^ 휴우 직장인의 인생…다행히 바로 매우 좋은 좌석을 잡을 수 있었고!!! 기쁜 마음으로 20일을 기다려 혜화역으로 갔다. 지난번 재미공작소에 갔을 때도 '아니 이상하게 재미공작소가 안 머네…'하는 느낌이었는데 이날도 비슷한 느낌이었다. 거참. 나이 탓인가 뭔가…

 

내 좌석은 8번. 아주 편안히 공연을 볼 수 있었다 :D
파랑새극장은 혜화역 바로 옆. 곳곳에 공연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대형 패널에 포스터가 상영(?)되고 있기도 했다.
포스터와 현판을 거쳐 계단을 쭉 내려가면 지하 2층에 파랑새극장이 있었다. 조용하고 적당히 어두운. 예전의 두 번째 벨로주가 문득 떠올랐다. 
공연장 안에 들어가니 악기가 세팅되어 있어 '오늘 밴드가 오나?' 싶었는데 역시 그렇지 않았고ㅋㅋㅋㅋ 종현님의 기타만 한번 더 찍어보았다.
공연 시작 전.

일곱시 십분쯤이었나, 무대에 오르신 종현님은 생각보다(라고 하셨던가) 많이 오셨다며 공연을 시작하셨다. 오늘은 나무 컨셉의 공연이 아니니까 여러 노래들을 들을 수 있겠구나 생각했는데, 첫곡으로 십이월허구를 이어주셔서 또 너무 좋았다ㅠㅠ 아 그렇다고 나무 컨셉의 공연이 덜 좋다는 건 아니다. 나무에 관한 노래들도 진짜 좋고 정말 좋음ㅋㅋㅋㅋ 이날은 1, 2집 노래들을 많이 들을 수 있었어서 반가웠다는 것뿐임.

 

생각의여름-십이월

 

 

이날 셋리스트를 복기해 보면

 

십이월/ 허구/ 그래서/ 골목바람/ 슬픔이 없는 마을/ 이제/ 너는 내가/ 안녕/ 새/ 양궁/ 내가 너에게(혹시몰라 Cover)/ 두 나무/ 활엽수/ 습기/ 오늘밤엔 너구리/ 다섯 여름이 지나고

 

였는데. 골목바람을 불러주시기 전에 이 노래를 통해 생각의여름을 알게 되신 분들이 많을 거라고 하셨다. 음원에서 스트리밍이 천 번 되는 것보다 라디오에 한 번 나오는 게 뮤지션에게 도움이 되는데(이 말씀을 하셨을 때 나도 그렇고 객석 여기저기에서도 '오!' '오?' 하는 감탄사가 내뱉어져서, 종현님이 웃기도 하셨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건데, 정말 몰랐으니까;) 이 노래가 앨범 발매 당시 라디오에서 여러 번 방송됐다고 하셨다. 장기하씨가 라디오에 나가서 많이 틀어줬다고. 그러면서 음악여행 라라라 얘기도 하셔서 집에 돌아와 오랜만에 라라라를 검색해봤네 세상에ㅋㅋㅋㅋㅋㅋ 그때 라라라는 '모르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지만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엄청 핫한 방송'이었는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평소에 골목바람을 들을 땐 아 이거 내얘기…라는 느낌으로 들었었다. 막다른 골목, 바람/ 불어와 흩어진 맘/ 추스릴 틈도 없이 또다시 바람, 이라는 가사가 그냥 내 하루하루의 시간을 얘기하는 것 같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와,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구나-하고 생각하며 웃어본 기억 같은 게 내게는 없다. 늘 하, 오늘도 살아야 한다니, 또 하루를 더 살아야 한다니, 같은 기분이다. 잠에서 깨어나면 맞게 되는 하루가 그냥 막다른 골목 같은 느낌이랄까. 하루 종일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나고 부딪치고 부딪히고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처리하고 수습하고 정리하며 나 자신은 산산이 조각나버린다. 산산이 흩어진 스스로를 추스릴 틈도 없이 하루를 살고, 집에 돌아와, 아 내일도 또 살아야 한다니, 하는 생각으로 잠에 든다. 그래서 내게 골목바람은 엄청 슬픈 노래다.

 

근데 이날은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자꾸 생각났다. 특히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올 한 해, 정확히는 올해의 6개월이 그들에게도 막다른 골목에서 만나는 바람 같았겠지, 숨 막힐 때가 너무 많았겠지, 마음이 산산이 흩어진 것 같은데, 추스릴 틈도 없이 세찬 바람을 또 맞아야 할 때가 너무 많았겠지…싶어 괜히 짠한 마음이 들었다. 그 여운이 너무 짙게 남아서, 다음다음날 직장에 가서 그들에게 저 얘기를 했다. 얼마나 내 마음이 잘 전달됐을지는 모르겠다. 그냥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얘기를 정성스레 할 뿐이고, 그게 받아들여지거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은 내 몫이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그리고 또 감격스러웠던 건 너는 내가안녕을 들었던 순간들.

 

생각의여름-너는 내가
생각의여름-안녕


생각의여름의 노래들을 모두 아끼지만 너는 내가는 각별하게 아낀다. 허무하고 쓸쓸한 마음 그 자체를 부르는 노래나 세상의 고통보다 희망을 먼저 얘기하는 노래들, 어떤 역경도 극복해나가겠다는 의지의 노래들도 나름의 의미와 가치(라고 하니 좀 웃기네)가 있겠지만, 내 마음에 더 와닿는 노래는 절망 속에서 혼란스러워하고 넘어지고 괴로워하고 답답해하면서도 그냥 그것이 삶이기 때문에 살아가는 노래들이다. 그래서 무언가를 바라는 노래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를 좋아해달라고 하는 노래들, 내가 너를 좋아했으니 그에 대한 반응을 보이라고 하는 노래들을 들으면 아득해진다.

 

내가 이길 수 있기 때문에 살아가겠다는 노래 말고 질 것이 확실함에도 살아낼 것이라는 노래들, 사랑을 받았으므로 사랑을 주겠다는 노래나 사랑을 주었으므로 달라고 하는 노래 말고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 그 자체에 집중하는 노래에 더 공감하는 나에게 너는 내가는, 나의 언어 같은 노래이다. 네가 나에게 도움이 되어서, 네가 나에게 무엇을 주어서, 네가 나를 먼저 사랑해서, 같은 게 사랑의 이유가 되지 않는다는 걸,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명징하게 깨닫는다. 너의 하늘 아래와 너의 풍경 사이에 존재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놀라운 일임을, 그래서 너를 사랑하는 것이 나에게는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일임을, 다른 수식이나 장치 없이, 간결하고 아름답게 전하는 노래. 어떤 것들은 길고 자세한 문장으로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너는 내가를 들을 때마다 느낀다.

 

 

안녕 역시 각별하게 아끼는 노래다(아 이거 왠지 마음먹고 쓰기 시작하면 이 노래는 이래서 각별하고 저 노래는 저래서 각별할 것 같아 결국은 모든 노래가 다 각별해질 것 같은 느낌도 드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생각의여름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바로 안녕이었기 때문.

 

물론 안녕을 듣기 전에도 당연히 생각의여름을 알고 있었다. 안녕을 처음 들었던 게 생각의여름의 첫 앨범이 나오고 1, 2년쯤 지난 후였으니까. 하지만 생각의여름의 첫 앨범이 나왔을 때의 나는 지금보다 '평론가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신보'에 이만배쯤 더 냉소적이었고 '뭐 그렇게 좋다면 언젠가 좋아지겠지 굳이 뭐 일찍 들을 필요 있나' 하는 태도를 취하는 리스너였다. 그러다보니 모두들 입을 모아 칭찬하는 생각의여름 첫 앨범을 굳이 찾아 듣지 않았다. (그때의 나를 떠올릴 때면 이런 기분이 든다: '뭐 그럴 필요까지야 있었나.' 지금은 '평론가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신보에 냉소적인 리스너'에서 '평론가들이 뭐라든 말든 전혀 신경쓰지 않는 리스너'에 가까워진 것 같은데, 그나마 나은 변화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인터넷 서핑 중에 안녕을 들었다. 어떤 공연의 라이브 영상이었다. 듣고 나서 약간 충격을 받았다. 보내도 가지 않는 시절이여, 안녕, 이라는 가사가 당시의 나에게 너무 와닿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도저히 떠나보내지지 않는 어떤 시절들에 사로잡혀 괴로운 마음과 집착하게 되는 마음 사이에서 왔다갔다하고 있었던 때였던 것 같다. 완전히 꽂혀서 와 이거 CD를 사야 되나 하고 생각의여름 앨범을 찾아봤는데 그 앨범에는 이 노래가 없었다. (안녕은 그로부터 2, 3년쯤이 지난 후 싱글로 발표되었다.) 너무 슬퍼서 한동안 그 영상을 계속 돌려보며 이 노래를 돌려들었다. 네이트의 어떤 게시판에 올라온 영상이었고, 유튜브에도 없어서 엄청 슬펐었다. 지금은 그 영상 자체가 없어진 것 같다. 생각난 김에 검색해봤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는 걸 보면. 

 

그렇게 안녕으로 생각의여름을 알았고, 안녕이 너무 좋아서 1집도 다시 듣게 됐고, 그러다 1집도 좋아하게 됐고, 2집도 좋아했고, 3집 이후로부터 생각의여름 공연을 간간이 보러 다니고 있다. 안녕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내가 이렇게 종현씨 공연을 보러 다니게 될 줄 상상도 못했지. 안녕을 만나지 않았다고 해도 생각의여름을 좋아했을 수는 있겠지만, 안녕을 만났기 때문에 더 일찍 좋아할 수 있게 된 거긴 하겠지. 그러니 내게 안녕 역시 각별한 노래. 이 각별한 노래들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파랑새극장 공연은 나에게 충분히 특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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