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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호를 타고

190720 생각의여름 - 파랑새극장 기획공연 [2]

어쩌다보니 글이 길어져(-_-) 파랑새극장 공연 후기를 두 번에 나눠 올리고 있다 내참. 공연 얘기를 하는 것처럼 하면서 자꾸 내 얘기를 하니까 이렇게 되는 거 아니야…자제하자 나자신-_- (하지만 또 실패하겠지) 여튼간 얘기를 이어보자면.



이날 종현님이 예전 노래들, 그러니까 1, 2집 때의 노래들을 많이 들려주시긴 했는데, 들려주시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때의 자신은 사실 지금의 자신과 다른 사람이고, 그래서 지금의 자신에게는 낯선 사람이라고. (정확히 이 워딩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이런 내용이었던 건 맞…지 않으면 어쩌지ㅠㅠ) 분명히 자신이 만든 노래여도 그때의 자신은 지금과 같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노래를 부르는 것과 다름 없다, 뭐 이런 말씀이었는데, 나는 들으면서 좀 감동을 받았다. 정말 솔직한 자기고백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세상의 모든 '나'란 존재는 끊임없이 변하고 있고, 변하는 게 당연하며,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게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에 오늘만큼의 내가 한층 더 덧씌워진 나일 테니까. 그래서 일 년 전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었을 때 남이 쓴 것 같은 게 당연하고, 십 년 전 내 사진을 봤을 때 새삼스러운 느낌이 들어야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면, 그건 그냥 내가 살아 있지만 죽은 거거나 아무 성장도 성숙도 겪지 못한 거 아닐까 싶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보편적인 인간에 대한 이야기일테고, 아티스트에게는 보통의 인간에게 요구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 요구된다는 생각이 든다. 변화하면서도 예전의 모습을 그대로 지켜달라는, 불가능한 요구.


종신형이었던가 이승환이었던가, 예전에 어떤 프로그램에서 자신은 현재진행형인데 팬들은 자꾸 과거에 머물기를 바란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아티스트도 사람이니까 팬들과 함께 나이를 먹으며 변해가는데, 자꾸 팬들은 자신이 좋아했던 예전의 그 모습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란다는 거다. 지금의 노래 대신 옛날 자신이 좋아했던 노래, 예전의 자신을 떠올릴 수 있게 하는 노래를 불러달라고 바라는 팬들을 보면 이해가 되면서도 서운한 마음이 든다, 뭐 이런 얘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이승열씨 생각을 했었다(아 또 얘기가 이쪽으로 빠지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세상 그 무엇을 봐도 이쪽으로 빠지는 것이 나의 한계). 나는 이승열씨의 '가장 최근의 음악'이 '이승열의 대표곡'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여전히 이승열=기다림, 이승열=날아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아오 저거 아닌데'라는 생각과 '휴 저거라도 아니까 다행이라고 하자'라는 생각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하지만 당연히 좋지만은 않다. 아티스트는 계속 자신의 세계를 넓혀가면서 깊어지는데, 어떤 리스너들과 어떤 팬들은 자신의 추억을 리스너의 현재보다 앞세우며 '그 모습 그대로 있어주기'만 바라는 것 같아 내가 다 서운하다. 하지만 나는 아티스트가 아니니까, 그냥 서운해할 뿐이다. 아, 지금의 이승열도 누군가의 기억 속 이승열만큼, 아니 그 이승열보다 훨씬 더 멋있는데, 하면서.


그래서 이날 종현님의 말씀이 엄청 인상적이었다. 종현님의 말씀은 불평불만도 아니었고, 서운한 마음의 토로도 아니었다. 아티스트도 관객도 모두 시간 속을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리 어떤 노래들을 들으며 '과거의 나'를 되살리려고 해봤자, 그건 그냥 '지금의 나'가 떠올리는 허구일 뿐이라는 말처럼 느껴졌다. 심지어 '지금의 나'라는 것도 실존한다고 말할 수 없지 않은가. 지금 이 문장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고, 지금의 나는 쉼없이 과거의 내가 되어가고 있으니까.


과거의 나가 방부 처리된 채 그대로 있지 않는 것처럼, 아티스트에게 예전의 모습 그대로 있어주기를 바라고 요구하는 것 역시 헛된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예전의 노래들은 예전의 노래들대로 좋아하고, 지금의 노래들은 지금의 노래들대로 좋아하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좋아하다가, 더이상 좋지 않아지면, 그때부터 안 좋아하면 되지. 내가 좋아했던 과거까지 다 부정할 필요 없이. 예전에도 좋았고, 지금도 좋다면, 그거야말로 더할나위 없이 좋은 일이고 감사할 일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그래서 이날 공연이 참 감사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 예전 노래 중 하나인, 슬픔이 없는 마을 .


그리고 골목바람 .


습기 다섯 여름이 지나고 를 불러주신 것도 기쁜 일이었다! 이날이 올해 세 번째로 보는 생각의여름 공연이었는데, 3월 벨로주 공연 때 습기 를 신청했었고 지난 재미공작소 공연 때 다섯 여름이 지나고 를 신청했었다. 습기 는 작년과 재작년 공연 때 종현님께서 공연 끝날 즈음에 불러주시면서 '여기서의 습기는 사람의 입김이다'라고 말씀해주시고, 습기 의 가사처럼 공연 끝난 후 좋은 곳에서 한 잔 하시라고 덕담(!)을 해주셨던 게 생각나서 신청했었는데 흔쾌히 불러주셔서 매우 기뻤었다. 다섯 여름이 지나고 야 여름이면 늘 듣고 싶은 노래라서 신청했던 거고.


이날도 나는 계획된 셋리스트가 끝난 다음 불러주셨으면 하는 노래를 신청했는데, 사실은 대전 비둘기호 가 듣고 싶었다. 하지만 비둘기호 는 안 된다고 하셔서 대신 칼날 을 신청했는데 흔쾌히22 받아주셨다. 덕분에 또 감격에 겨워하며ㅠㅠ 기쁜 마음으로 들었다. 또 어떤 관객분께서 봄으로 달려나가는 다니야르 를 신청해주셔서 역시 기쁜22 마음으로 들었다. 다니야르는 종현님 친구분의 이름인데, 그분이 자신의 고향에 종현님을 초대해서 함께 갔다온 적이 있었다는 얘기도 들려주셨다. 집에 와서 다니야르를 검색창에 넣어보니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지역의 사람들 이름이 결과창에 쭉 떴다. 중앙아시아 지도를 보면서 이곳에 다녀오셨던 것인가 생각해보니 까마득했다. 고향 가는 길은 많아야 수십 번이지/ 갈 때마다 악수를 백 번은 하지/ 자작나무 숲을 어둠이 마셔도/ 이 길은 운전수의 것 이라는 가사가 진짜로 다니야르와 함께 그의 고향을 찾아가던 날들의 이야기라는 걸 알고 노래를 들으니까 이제까지와 좀 다르게 들리기도 했다. 어쨌든간 노래 더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종현님ㅠㅠㅠㅠ 


칼날 , 그리고 오랜만의  대전 .


다음에는 도 듣고 싶고 용서 도 듣고 싶고 희망 도 듣고 싶고 오랜만에 포구를 떠날 때 도 듣고 싶고 Last Autumn 도 듣고 싶은데 으으음…욕심부리지 말고 우선 포구를 떠날 때를 신청해보자-_-)// 종현님 공연 또해주세요 부디…강릉과 화성에는 갈 수 없으니 제발 서울에서 하나 더 흑흑흑흑흑………………




+ 이날 종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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