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06 생각의여름 단독공연 'Songs about Tree' @재미공작소

2019. 7. 20. 23:23🌲/비둘기호를 타고

2019년 여름, 생각의여름 :)

작년과 재작년 생일 즈음에 생각의여름 공연엘 다녀왔었다. 설마 올해도…????라고 아주 조금 기대를 했었는데 진짜로 생각의여름 공연이 7월 6일에 재미공작소에서 잡혔다. (종현님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3년 연속 생일선물을 받는 기분으로 다녀온, 7월 초의 생각의여름 공연.

 

재미공작소는 3년 전 권나무 공연을 보러간 후 처음이었으니 진짜 오랜만인 셈. 그때 분명히 돌아오면서 '와 여기 또 오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_-???? 가보고 싶었던 행사 또는 공연이 여러 번 있었는데 다 매진되어서 갈 수가 없었다. 예전에는 되게 먼 길처럼 느껴졌는데 이번에는 생각보다 가깝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신도림역에서 재미공작소까지 걸어가는 길도 예전보다 훨씬 짧게 느껴져서 신기했다. 한 번 가봤다고 이렇게 마음이 다르나, 거참 인간 참.

재미공작소를 좀더 쉽게 찾을 수 있는 팁이라면 당연히 성공회 교회를 찾는 것. 교회를 지나 재미공작소에 도착. 이 공연도 매진됐으면 어쩔뻔ㅠㅠ

 

6시 반에 일등으로 공연장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앉아 무대 사진을 찍었다. 맨 앞에 존재감 있는 크기의 화분이 놓여 있어 '오 공연 컨셉에 맞게 나무를 배치했군'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ㅋ 적당히 어둑하고 시원한 공연장 안. 예전에 벨로주에서 종현님이 들고 오셨던 기억이 나는 책들도 보였다. 최하림시인의 시집과 나무의 노래, 그리고 몇권 더. 분명히 벨로주 공연 끝나고 종현님이 읽어주셨던 책들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한 권도 못 읽었네, 거참 인간 참22. 나무에 대한 책을 가져가지 않아서 정세랑소설가의 책을 읽었다. 재미공작소와 잘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해서 이걸로 골랐는데 역시 괜찮았다. 소중한 정세랑소설가님 제가 아낍니다…

나무와 나무에 대한 책들과 나무로 된 무대와 나무로 된 기타. 저 책들이라도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ㅠㅠ
종현님의 기타.

 

기억에 의존한 이날의 '계획된' 셋리스트는

 

숲(시인과촌장 Cover)/ 칼날/ 덧/ Preface/ Rain is a Good Thing/ From a Tree Perspective/ 나무(빅토르 최 Cover)/ By This Bonefire/ 숨과쉼(홍갑 Cover)/ 두 나무/ 활엽수/ Love me as Mosses Do/ 침묵에서

 

였다. 나무를 컨셉으로 한 시간 정도의 공연을 하게 됐다며 공연을 시작하셨고, 생각의여름의 나무에 대한 음악과 다른 음악가들의 나무에 대한 노래 중 종현님이 좋아하시거나 영향을 받은 것들, 창작 과정에서 영감을 받은 책 등을 소개해주셨다. The Republic of Trees 앨범에 실린 노래들의 우리말 버전 가사를 읽어주시기도 하고 시를 읽어주시기도 해서 지난번 벨로주 공연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때는 앨범 발매 공연이었기 때문에 앨범의 노래들을 중심으로 공연이 흘러갔었고, 이날은 그날보다 더더욱 '나무 중심'으로 진행된 공연이었어서 커버곡이 여러곡 있었다는 게 좀 다른 점이긴 하겠지만.

 

맨 처음에 불러주셨던 시인과촌장의 은 마치 생각의여름 노래인 것마냥 잘 어울렸고, 이어진 칼날과도 잘 어울렸다. 두 곡 모두 들을 때마다 마음이 쓸쓸해지는 노래들인데, 이날 종현님께서 칼날이 힘들었을 때 만든 노래라고 설명해주셔서 평소보다 더 아프게 들렸던 것 같다. 이 질긴 뿌리를 끊고/ 핏빛 걸음으로/ 호수로 거니는 꿈을/ 여기, 반짝이는…이 문장이 그냥 인간의 삶 같다. 나를 붙잡고 있는 이 질긴 것들을 끊고 피를 흘리더라도 호수로 가고 싶은 마음,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

 

칼날-생각의여름

덧-생각의여름

 

지난 벨로주 공연 때도 최하림 시인의 '굴참나무 숲에서 아이들이 온다'라는 시집을 가져오셨었는데, 이날도 이 시집을 보여주시고 첫 번째 시를 읽어주셨다. 권두시라고 해야 하려나. 여행 때 책을 한 권만 가져가야 하면 이 책을 늘 가져가신다고 하면서, 어떤 상황/대상을 '보는' 화자의 태도에 대해 말씀해주셨던 게 인상적이었다. 맞닥뜨린 상황이나 대상에 완전히 감정이입해서 뛰어들기 이전에, 한 발짝 거리를 두고 자세히, 천천히, 시간을 두고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점점 더 느끼고 있기 때문일까. 올해가 가기 전에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최하림 시인에 대한 존경심을 말씀하실 때는 아 이것은 이승열씨에 대한 나의 마음 같은 것인가보다 싶기도 했다하하하. (근데 이건 진짜 농담이 아닌 것이다. 진짜로 존경하는 인물 1위가 이승열씨이기 때문에;;;;)

 

Preface 가사의 컨셉을 설명해주신 후 가사도 읽어주시고, From a Tree Perspective 가사도 읽어주시고, 김행숙 시인의 '사춘기'에 실려 있는 '정석가'도 읽어주시고, 루크 브라이언(이라는 가수)의 Rain is a Good Thing을 불러주시기 전에 Rain makes corn, Corn makes whiskey, Whskey make my baby, Feel a little frisky라는 가사도 소개해주셔서, 나는 지난 벨로주 공연만큼이나 좋았다. 나에게는 여전히 노래를 들을 때 가사가 중요한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가사가 중요한 노래들이 귀해지는 느낌이라서. 비록 종현님은 컨셉충 같지 않냐는 말씀도 하시고, 교양방송 같지 않냐는 말씀도 하시고, 다음엔 못할 것 같다는 말씀도 하셨지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좋았다.

 

특히 빅토르 최의 나무라는 곡을 러시아어로 불러주셨던 게 정말 좋았다. 김광석씨의 나무도 좋은 노래이지만 그 노래의 태도에 동의할 수 없다-워딩이 정확하지는 않다-고 하셨던 게 생각나서, 집에 돌아와 김광석씨 노래의 가사와 빅토르 최 노래의 가사와 빅토르 최의 원곡을 모두 찾아봤다. 빅토르 최 노래의 가사는 이런 식으로 번역되어 있었는데, 나는 이 화자의 태도에 너무 감동해버렸다. 내 나무가 오래오래 살면서 나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정성스럽게 기르는 게 아니라, 몇 주도 살 수 없고 나를 곧 버릴 것임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지금의 내 시간을 그에게 온전히 바치면서 소중히 대하는 이 마음이, 나에게는 훨씬 가치 있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랑받을 것이기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받지 못할 것임에도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마음이랄까. 그래서 영상을 못 찍은 게 너무 아쉬웠다. 원곡의 느낌은 종현님이 불러주신 느낌과 많이 달랐었는데, 나에게는 종현님의 목소리와 그때의 분위기가 너무 인상 깊었어서.

나는 안다-내 나무가 몇 주도 살 수 없을 것이란 것을,
나는 안다-내 나무가 이 도시에서 죽어버릴 것이란 것을,
하지만 난 내 모든 시간을 그와 함께 한다. 
나는 다른 모든 일이 싫증난다. 
나는 이 나무가 내 집처럼 보인다.
는 이 나무가 내 친구처럼 보인다.
나는 나무를 심었다.
나는 나무를 심었다.

나는 안다-내 나무를 어쩌면 내일 철없는 아이들이 꺾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는 안다-내 나무가 곧 나를 버리고 떠날 것이란 것을,
하지만 그가 있는 동안 나는 항상 그와 함께 한다.
나는 그와 함께 기쁘고, 나는 그와 함께 괴롭다.
나는 이 나무가 내 세상처럼 보인다.
나는 이 나무가 내 아들처럼 보인다.
나는 나무를 심었다.
나는 나무를 심었다.

 

홍갑씨의 숨과쉼을 불러주시면서 자신보다 노래는 열 배 잘하고 기타는 백 배 잘 치는 친구라고 하셨는데 으음. 홍갑씨의 라이브를 들어본 경험을 떠올려 감히 말해보자면, 열 배는 말도 안된다 진짜로. 홍갑씨 노래가 홍갑씨 음역대와 목소리에 잘 어울리는 것이지 뭐 또 종현님보다 열 배씩이나…그리고 종현님 공연을 볼 때마다 종현님이 점점더 노래를 잘하신다고 느껴지기도 하기 때문에(진짜 진심 절대 거짓 없음)열 배까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진짜로. 기타는 뭐 그렇다 치더라도 노래 열 배는 받아들일 수 없어요 절대로… 이날 불러주셨던 From a tree perspective만 해도 얼마나 아름답냔 말이다.

 

두 나무 역시 아름다워서, 그 두 곡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리는(그리고 자주 눈물이 나버리는) 나는, 이날도 이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게 너무 감사했었다. 누구에게든 으레 그런 장면들이 있다고, 견뎌지지 않는 시간들이 견뎌지는 것이라고, 지금의 나도 마찬가지라고, 또다시 스스로에게 들려주었다. As you are planted in your fate, we stand in vain suffering the world in different ways from you라는 Preface의 한 구절 역시, 비슷한 느낌으로 나에게 위로가 된다. 식물처럼 심긴 내가 Suffering the world in different ways라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든 견디고 있구나 싶어져서.

 

Preface-생각의여름

 

박수와 함께 할 수 있는 노래라며 불러주셨던 활엽수, 새봄언니 없이 혼자 불러주셨던 Love me as Mosses Do, 음악을 만들지 못하고 침묵에 잠겨 있던 종현님이 길고 하얀 침묵을 지나올 수 있으셨던 계기가 된 노래라고도 볼 수 있을 침묵에서. 모두 아름다운 순간들이었다. 두 나무를 불러주시기 전에는 예전에 살던 집 앞에 서 있었던 두 그루의 나무 얘기를 해주셨고, 활엽수를 부르시기 전에는 이 노래가 로맨틱한 노래인줄 아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은 정말 힘들었을 때 그러니까 '군대에서' 만들었던 노래라고 얘기해주셨다. 가사에 등장하는 침엽수가 자신이라고 하시면서. (하 역시 침엽수같으신 분…이라고 종종 생각했던 나는 아주 뜨끔했었다ㅋㅋㅋㅋ) 

 

침묵에서를 부르시기 전에는 종종 해 주시는, 이 노래를 만들게 된 계기-한밤의 가로등들이 음표처럼, 숲처럼 보이셨다는 그 기억을 되짚어주셔서 또 뭉클했다. 아주 사소하고 별 것 아니어보이는 것이  아주 깊고 어두운 침묵 속에 갇혀 있는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다는 게, 늘 믿기지 않으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활엽수-생각의여름
Love me as Mosses Do-생각의여름

침묵에서-생각의여름

 

활엽수를 부르시기 전이었나, 무대 앞에 놓여 있던 나무(가 심긴 화분) 얘기를 하시면서 팬 분이 재미공작소로 보내주신 거라고 나무의 정체를 밝혀주셨다. 그러면서 '저는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는데…'라고 난감해하셨을 때 (죄송합니다만) 많이 웃어버렸고. Love me as Mosses Do를 부르시기 전 어떤 팬 분이 선물해주신 이끼 얘기를 하셨을 때 또 많이 웃었다. 종현님이 되게 담담하게 말씀하시는 것 같지만 의외로(????) 웃음을 부르는 포인트가 있다. 하기 쉽지 않은 얘기를 아주 담담하게 해버리는 포인트가 또 있으시고. 공연 중간에 재미있냐며, 잘 보고 있냐며, 종종 염려하시는데, 진짜 재미있게 집중해서 늘 잘 보고 있으니까 너무 염려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실망스러운 공연이면 다시 보러 갈 리가 없잖아요.

 

계획된 셋리스트가 끝난 후에는 이번 공연을 기점으로 이번 여름에 네 번의 공연을 하실 거지만 '이런 공연은 안할래요'라고 하시면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듣고 싶은 노래가 있으면 불러주시겠다고 했다. 그래서 불러주신 곡이 다섯 여름이 지나고양궁. 그리고 다섯 여름이 지나고는 나의 신청곡이었다하하하. 지난번 습기 이후로 특별한 곡이 하나 더 생겼다 ;)

 

다섯 여름이 지나고-생각의여름

 

다섯 여름이 지나고는 생각의여름의 공연마다 안 들으면 서운한 곡이기도 하고 여름 첫 공연인만큼 꼭 듣고 싶기도 했었다. 이 노래 들을 때마다 다섯 여름이 지난 후의 나와 다섯 여름 이전의 나를 떠올려보는데 늘 까마득하고 아찔하다. 어쩌면 이렇게 오래 살아왔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푸러질까 붉어질까 창백해질까 환해질까 그늘이 질까 흐릿해질까, 를 들으며 그렇게 '-어질' 때까지 더 살아가야 한다는 게 두려워지기도 하고. 항상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노래인데 이날 종현님이 신청곡으로 선택해주셔서 감사했다.

 

종현님 공연을 보러 갈 때는 영상을 찍는 경우가 많다. 거의 종현님의 기타와 목소리만으로 공연이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서 셔터 소리를 내는 게 죄송하기도 하고 그날의 종현님 목소리를 기억하고 싶다는 느낌도 있고. 이날도 영상을 여러 개 찍었었는데, 뮤지션이 공연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안 되는 거 아닐까 싶어 좀 죄송하기도 하고 그렇다. 최대한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찍으려고 늘 노력해야지 흑흑. 그리고 다음에는 오랜만에 항해 커버 듣고 싶은데 가능할까 몰라…아마 어렵겠지 흐흑흐흑

하지만 감사했어요, 잘 들었습니다, 생각의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