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비둘기호를 타고

220625 생각의여름X민구 - 파랑새극장 기획공연 '다시, 파랑새로 - 시와 포크'

오랜만에 파랑새극장에 갔다. 생각의여름을 보려고.

 

이미지 출처는 파랑새극장 트위터 계정. https://mobile.twitter.com/parangsae_hall

생각의여름 공연 정말 오랜만이었는데ㅠㅠ 사실 공연 자체가 오랜만이었다. 한동안 공연을 완전히 끊다시피 했으니까. 봄에 줄리아드림 단공도 있었고 생각의여름 공연도 여러 번 있었지만 도저히 엄두가 안났다. 직장이 거의 코로나로 초토화된 상황이었고 5월초까지는 조심조심해야만 했다. 예매했다가 취소하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이래저래 암담한 봄이었는데 좋아하는 뮤지션들의 공연도 갈 수 없으니 더 괴로웠다.

 

그러다 코로나도 조금은 잠잠해지고(곧 다시 또 기세가 올라오겠지 싶긴 하다만) (뭐 알아서 과학방역 하겠지 절레절레절레) 이제는 공연을 가도 되지 않을까 싶던 때, 파랑새극장에서 생각의여름이 나오는 공연이 열린다고 해서!! 와 이거 가야겠네 하고 라인업을 봤더니!!! 생각의여름X민구, 시와X백은선, 덕원X오은이라는, 뮤지션과 시인들의 만남!!!! 우선 예매해놓고 시를 좀 읽어봐야지 했다. 그때는 진짜 읽을 수 있을 줄 알았지. 아니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6월 내내 업무가 몰아치면서 시 읽을 여유를 찾을 수가 없었고ㅠㅠ 결국 나는 민구 시인의 시를 한줄도 읽어보지 못한 채(얼굴만 겨우 검색해봄) 공연장을 찾았다. 괜찮아 생각의여름 보러 가는 거니까...하며 스스로를 합리화한 채.......

 

그리고 드디어 6월 25일. 혜화로 ㄱㄱ. 오랜만의 파랑새극장 여전히 좋았고 이런 곳에서 이승열씨 공연 한 번 하셨으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물론 이때의 전제는 내가 1열을 꼭 사수해야만 한다는 것). 여기서 생각의여름 공연을 봤을 때는 코로나 이전의 세계였는데...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때가 엄청 옛날 같기도 했다. 3년 전이라고 하면 그렇게 옛날처럼 느껴지지 않는데 (최소한 나는) 코로나 이전의 세계라고 하면 현재와 완전히 단절된, 이제는 완전히 떠나온 멸종된 세계처럼 느껴진다. 그 세계에서 나를 지탱해주던 것들 중 하나였던 생각의여름의 음악을, 지금의 세계에서도 계속 들을 수 있다는 게 벅차기도 하고 약간은 신기하기도 했다. 생각의여름이 앨범을 계속 안 내면 어떡하지 걱정하던 때도 있었기 때문에 :)

 

시인과 함께하는 공연이니까 종현님이 민구시인과 함께 무대에 올라오는 건가, 둘이 노래를 함께 부르기라도 하는 건가, 아니면 종현님이 시 낭독을 해 주는 건가, 낭독이랑 노래는 각자 알아서 하고 토크를 함께 하는 건가, 이런저런 상상을 했다. 실제로 무대에 두 개의 의자가 놓여 있기도 했고. 이런 나에게 쓸데없는 생각 하느라 고생 많았다는 메시지를 전해주시는 듯ㅋㅋㅋㅋ 혼자 무대에 올라오신 종현님은 첫곡을 부르실 준비를 하셨다.

 

베이지색 의상을 산뜻하게 입으시고 올라오신 종현님.
예전에는 대체 건강이 괜찮으신 걸까ㅠㅠ 싶었는데 이번에 보니 좀 안심이 됐다.
위의 순간과 거의 같은 순간인데 한번 세피아처리해봤음. 나름 괜찮지 않나 싶닼ㅋㅋㅋ 뭐 내맘대로의 생각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소리들을 불러주셨는데. 와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너무 아름다웠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머릿속에 들어있던 온갖 잡생각들이 종현님 목소리에 그대로 급속냉동되어버렸고 대신 소리들의 가사 하나하나가 쾅쾅 가슴을 울렸다. 처음 듣는 노래도 아닌데 왜이렇게 새롭던지. 물론 음원으로 들어도 좋은 노래는 좋은 노래다. 근데 공연장에서, 내 눈앞에서, '살아 있는 사람'이 직접 악기를 연주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 귀에 내리꽂으면, 좋은 노래의 울림이 천만배 정도는 증폭되는 것 같다. 이래서 내가 온라인 공연을 못 보게 천만배 정도는 증폭되는 것 같다. 이래서 내가 온라인 공연을 못 보겠는 것이기도 하다. 뮤지션과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오프라인 공연과는 질적인 차이가 너무 크니까. 그나저나

 

종현님이 직접 불러주시는 소리들이 어찌나 좋던지. 골목의 ㄱ 능선의 ㅅ 냇물의 ㄹ을 듣는데도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나는 무엇과 무엇 사이에서 서성거리는 모음일까. 무엇과 무엇을 잇고 싶어하는 모음일까. 나의 양 옆에 있는 자음들은 무엇이며 누구일까 싶어서 마음이 한없이 먹먹해졌다. 어찌나 멍하니 듣고 있었는지 그사이에 카메라가 제멋대로 초점을 이탈해버렸다는 것도 깨닫지 못했다. 근데 사실 이런 일은 생각의여름 공연을 볼 때마다 종종 겪는 일이다.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눌러놓고 정신없이 노래 듣다가 나중에 정신차려보면 종현님 이마 위가 잘려 있는 적이 부지기수ㅠㅠㅠㅠㅠㅠㅠ 여튼간 이날도 그래버려서 앞쪽의 '너무 초점 나간 부분'은 자르고 유튜브에 업로드해놓을 수밖에 없었다. 

 

생각의여름 - (앞부분을 자른ㅠㅠ) 소리들

하지만 그 다음곡부터는 이런 실수를 하지 않았고!! 무사히 두 나무 영상을 건질 수 있었다. 이날 종현님이 불러주신 곡은 소리들, 두 나무, 날씨, 이어달리기였는데, 가장 익숙한 두 나무가 저 사이에서는 제일 튀어 보인다. 싱글로만 나왔을 뿐 아직 앨범에 정식으로 수록되진 않은 소리들, 싱글로도 나오지 않은 날씨, 민구시인의 시에 종현님이 노래를 붙인 이어달리기와 달리 기존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곡이니까. 왜 소리들이나 날씨처럼 기존에 많이 안 부르시던 곡 말고 비교적 익숙한 두 나무를 고르셨을까 나중에 혼자 생각해 봤는데, (진짜 이건 종현님의 의도와 전혀 상관 없는, 백프로 내 생각) 하나의 나무를 그와 마주보고 있는 다른 나무가 바라보며 부르는 두 나무의 시간이 한 명의 시인을 한 명의 뮤지션이 마주보고 말을 걸며 채워나가는 이날의 시간과 비슷하다고 여기신 게 아닐까 싶었다. 실제로 이날 종현님은 말씀을 많이 하셨고, 마치 '시콘서트 MC 박종현'인 것처럼 민구시인님을 바라보시며 이런저런 말씀을 이끌어내시고 대화를 해나가셨으니까. 

 

하지만 노래를 하실 때는 진행자나 대담자나 '참여자 1'이 아닌, 혼자서 완벽하게 그 시간을 자신의 소리로 채워내는, 생각의여름 그 자체셨다. 그게 좋았다. 어떤 무대에서도 생각의여름은 생각의여름이라는 게. 옆에 누가 서 있든 앉아 있든, 공연의 컨셉이 무엇이든, 생각의여름의 고유함이 사라지지도 무뎌지지도 숨어있지도 않아서.

 

생각의여름 - 두 나무

이날 종현님이 불러주시는 날씨를 처음으로 들었는데, 생각의여름 노래가 늘 그렇듯이 가사가 너무 아름다워서ㅠㅠ 소리들 들을 때처럼 또다시 감동에 빠져버렸다. 오늘이 하나의 정류장이라면, 일년이 정류장들의 숲이라면, 이라는 상상력이 너무 경이로웠다. 이제까지 내가 거쳐간 수많은 정류장들은 얼마나 빽빽한 숲을 이루었을까. 오랜 시간 허물어지고 뭉쳐들었으면서도 왜 나는 이렇게 무심해지지도 누그러지지도 못하는 것일까. 왜 늘 새롭게 허물어지고 새롭게 타들어가는 것일까. 무심함과 누그러짐이 어쩌면 너그러워짐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이를 먹어도 먹어도 너그러워지지 못하는 스스로가 새삼 또렷하게 와닿아 마음이 많이 흔들거렸다. 

 

생각의여름 - 날씨

민구시인님의 '이어달리기'라는 시에 곡을 붙인 노래도 불러주셨는데, 이 노래는 들으면서ㅠㅠ 너무 눈물이 많이 나서ㅠㅠㅠㅠㅠㅠㅠ 영상을 찍을 수가 없었다ㅠㅠㅠㅠㅠㅠㅠㅠ 민구시인님이 오랜 시간 함께 하셨던 강아지에 대해 쓰신 시였는데 시의 모든 구절이 눈물버튼이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특히 '하지만 다음 생이' 이후가 너무너무 슬퍼서 소리내어 울지 않으려고 아주 많이 노력했다. (노래가 끝난 후 머리가 좀 지끈거렸을 정도) 이날 종현님이 시인과 뮤지션과의 협업에 많은 관심을 두고 계시구나 싶은 말씀을 여러 번 하셨는데, 혹시 또다른 기획을 하셔서 앨범을 내시거나 음원을 발매하게 되신다면 이날 부른 이 노래를 꼭ㅠㅠ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셨으면 좋겠다. 반려견의 동거인들에게는 너무 슬픈 노래라 오히려 많이 들려지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이어달리기의 전문을 붙여 본다.

 

이 다음에는
너의 개가 될게

다음 생이 있다면,
죽지 않는 나라에서
계속 살아야 할 운명이라면

이다음에는
너의 개가 될게

더 벌어지지 않는다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네가 나를 따라잡는다면

우리는 서로의 거리를 잊고
각자 어울리는 이름을 새로 지어주자

불 꺼진 조그만 방에서
누가 개인지 사람이지 모르고
쿨쿨 기대 잠든 환한 등짝처럼
사람의 나이로 깨지 않는 꿈을 꾸자

이다음에는
너의 개가 될게

하지만 다음 생이 있다는 건
뻔한 드라마 같은 일

내가 넘어져도
뒤도 안 돌아보던 네가
오늘은 옆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다

살아 있는 개처럼
긴 트랙을 전력으로 질주한 선수처럼
피곤한지 크아아아
하품을 하고 있다

이날의 무대. 공연 시작 전, 종현님의 기타가 걸려 있었다.

종현님은 '생각의여름이라는 이름 때문에 여름이면 생각나는 음악(을 만드는 음악인)이 된 것 같다는 사실'이 약간은 당황스럽다고 느끼시는 것 같았지만, 나역시도 여름이면 생각의여름이 더 많이 생각난다. 봄여름가을겨울 언제 들어도 좋은 생각의여름 음악이고 언제 봐도 좋은 생각의여름 공연이지만, 맨 처음 본 생각의여름 공연이 여름날의 공연이었기 때문인지 생각의여름 공연 본 기억을 떠올리면 여름날의 공연들이 다른 계절에 본 공연들보다 더 먼저 떠오르기도 한다. 덥고 습하고 축축 처지고 쉽게 지치는 여름이 '그저 짜증나는 때'로 의미화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생각의여름' 때문인 것도, 나에게는 진실이다. 게다가 운좋게도 몇년 전부터는 생일 즈음에 종현님이 공연을 해주시는 일도 가끔 생긴다. 종현님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혼자 생일선물이라고 생각하며 기뻐한다. 

 

이날 공연 역시 나에게는 그런 의미가 있어 아주 각별했고 :) 코로나 이전의 세계에서 아주 행복한 마음으로 생각의여름 공연을 봤던 곳인 파랑새극장에서 또다시 오랜만에 생각의여름 공연을 볼 수 있어 너무너무너무 좋았다. 종현님 덕분에 한동안 일상에서 찾을래야 찾을 수 없었던 인류애가 생성된 기분. 이런 시대의 이런 세계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결국 예술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부디 종현님 건강 잘 챙기시고 4집 앨범 잘 마무리하셔서 또 공연해주셨으면ㅠㅠㅠㅠㅠㅠㅠ 

 

 

 

더보기

파랑새극장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스크랩해온 이날 공연 사진. 감사합니다 파랑새극장. 앞으로도 좋은 공연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