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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호를 타고

220723 생각의여름 4집 코멘터리룸 @재미공작소 [1]

지난번 포스팅에서는 우선 코멘터리룸을 운좋게 예매했다는 내용과 종현님이 불러주시는 손과손이 얼마나 좋았는지에 대해서 썼으니, 오늘은 코멘터리룸에서 들은 내용을 좀더 자세히 써볼 것이다. 공연 후기란 바로바로 쓰는 게 맛인데 최근 몇 년 동안은 거의 그러지 못하고 있어서ㅠㅠ 너무 많은 기억이 휘발되어버리기 때문에 메모를 하면서 공연을 보기도 한다. 이날 공연 역시 종현님의 말씀을 메모하며 봤다. 코멘터리를 통째로 녹음할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지만; 그러다가 앨범 수록곡 듣는 데 집중하지 못할까봐. 이날 내게 제일 중요한 건 종현님이 불러주시는 4집 수록곡을 듣는 거였고, 두 번째로 중요한 건 4집의 노래들을 한바퀴 쭉 들어보는 것이었으니까. 코멘터리룸에서 처음으로 신보를 듣고 싶어서 스트리밍 한 번 안 하고 갔다. (유튜브에 너는 내가 뮤직비디오가 올라와 있는 걸 보고 무음으로 플레이 한 번만 해봄. 좀 지나친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 나온 김에 너는 내가 뮤직비디오도 링크해 본다.

 

 

생각의여름 - 너는 내가 (편곡 by 권월)

 

 

재미공작소에  가 본 게 이날로 다섯 번째였던 것 같다. 보통 나는 최소 환승을 선호하는 편인데 이날은 일찍 도착하고 싶어서 환승을 한 번 더 했다. 3호선을 타다가 경의선으로 갈아탄 후 홍대입구에서 2호선으로 갈아타야지! 하며 짜임새 있는 계획을 세웠다고 생각했으나 토요일 경의선에는 사람이 정말 미친듯이 많았고...................다시는 이런 선택을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ㅠㅠㅠㅠㅠㅠㅠㅠ 어쨌든 수많은 인파를 헤치고 문래역 도착.

 

문래역에서 멀어보이지만 하나도 멀지 않음. 그리고 오른쪽 텍스트로 된 설명 다 필요없다. 왼쪽길로 갈 필요도 없고 그냥 대왕곱창구이 쭉 지나서 가도 됨. 성공회교회랑 문래동우체국을 찾아가세요 세상사람들.
문래역에서 나와서 저 간판이 보이면 아 잘 찾아왔구나 하면 된다. 금방 재미공작소에 도착할 수 있음.
이날 내가 너무 빨리 도착해섴ㅋㅋㅋㅋㅋ 문래역 앞 스벅에 들렀다가 다시 왔더니 주인장님께서 '대기자 맞을 준비'를 시작하셨다. 입장가능한 사전예매자 나야나!!!
공연 전 종현님 문밖에서 대기하시고 있을 때 오늘의 현장을 눈에 담아보며 기다렸다. 이날 전자책 들고가서 2022 젊은작가상 읽었는데 이번 수상작들 고르게 좋은 듯. 이 얘기는 나중에 하잨ㅋㅋㅋㅋㅋㅋㅋ

 

7시 30분이 좀 넘어서 종현님이 문을 열고 나오셨고, 코멘터리룸 행사가 시작되었다. 공들여 작업하신 곡 하나하나에 대한 이야기를 꽤 자세히, 솔직히, 많이, 들려주셔서 나는 참 좋았다. 종현님이 중간쯤에 '이렇게 주절댈 줄 저 자신도 몰랐다'(워딩 그대로는 아니고 이런 뉘앙슼ㅋㅋㅋㅋㅋㅋㅋㅋㅋ)고 하셔서 빵터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번 트랙 설명해주시고, 들려주시고(종현님 핸드폰으로), 2번 트랙 설명해주시고, 들려주시고, 중간중간에 씨디 사라고 홍보 한 번씩 해주시는(씨디 하나를 사는 것이 스트리밍을 500번 하는 것보다 뮤지션에게 도움이 된다는 정보까지 주셨음!!!!!) 식. 한 곡 한 곡 기록해보자면

 

 

앨범 타이틀: 손

 

예전에 이문재 시인의 '지금 여기가 맨 앞'이라는 시집을 좋아했다. 여기저기 선물도 많이 했었다. 그때 이 시집에 '손'에 관한 시가 많이 실렸었는데, 나는 이번 앨범의 타이틀을 들으며 그 시집에서 읽었던 '손'의 이미지를 떠올렸었다. 타인에게 선뜻 내미는 혹은 타인이 건넨 위로에 화답하는 느낌의 손을. 종현님은 '일손'과 '손님', '손을 내밀었다'는 말을 언급하시면서 '주위의 뮤지션들에게 손을 내밀어 만든 앨범', '협업을 통해 만들어진 앨범'이라고 설명하셨는데, 나는 그 말씀을 들으며 종현님이 내미신 손을 9가, 사월씨가, 박혜리씨가, 아솔언니가, 또다른 뮤지션들이 잡는 모습을 상상했다.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케이팝에서도 협업을 많이 하지 않냐'는 말씀에서 종현님의 여전한 걸그룹 사랑도 느껴지고...!!!!!

 

1번 트랙: 날씨 with 9

 

종현님은 오늘 저를 처음 보는 분도 있을지 모른다며(설마) 2005년에 관악청년포크협의회를 통해 처음으로 음악을 시작했었다는 자기소개를 새삼 해주셨다. 그시절의 서울대생들은 스스로를 '관악청년'이라 칭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그시절 관악여모 친구들을 잠시 떠올리고 있을 때(향수) 종현님은 그때 함께 앨범을 냈던 9=송재경씨가 첫 번째 트랙을 불러주었다고 얘기하며 송재경씨에 대한 애정을 표현하셨음. 내가 처음 봤던 생각의여름 공연이 빵에서 열린 3집 발매 공연이었는데, 그날의 게스트가 바로 송재경씨였다. 그때가 6년 전 이맘 때.

 

여튼간; 종현님은 앨범의 '1번 곡'이 과거에는 무조건 타이틀곡이었다며, 1번 곡을 정하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씀하셨다. 앨범 전체의 기승전결을 만들기 위해 어떤 곡을 1번으로 하느냐가 중요했다고. 그래서 이 곡이 가장 마지막에 녹음하신 곡이 되었는지도 모르는 일. 앨범 전체의 서사를 이어가고 싶으셔서 이 곡과 8번 곡=마지막 곡에는 사람이 걸어가는 소리를 넣어 공간감을 표현하려 했다고도 하셨다. 전체적인 일관성을 부여하려 하신 듯.

 

사실 나는 지난 파랑새극장 공연에서 종현님이 불러주시는 날씨를 너무너무너무너무 잘 들었던 터라 '그렇게 중요한 1번 곡을 왜 9에게...????'라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그것도 종현님의 설명으로 해소됐다. 종현님은 자신의 목소리가 플랫하다고 생각하신다며, 풍성한 느낌이 드는 목소리라기보다는 한 가지 색깔에 치중하고자 하는 목소리라고 하셨다. 자신의 목소리로는 표현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나는 리스너의 한 명에 불과한지라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어서 짐작만 할 뿐이지만, 날씨의 가사를 통해 미루어 생각해보자면-

 

처음 노래를 들었을 때 떠오른 이미지는 내가 버스를 갈아타고 '오늘'과 '내일'과 '모레'...라는 정류장들을 끝없이 건너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노래를 들으면 들을수록, 정류장보다는 '숲'의 이미지가 더 강하게 다가왔다. 내가 지나간 시간들이 겹겹이 쌓여 빽빽한 숲을 이룬 모습. 그 숲에 바람이 불면,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바람에 부딪쳐 그 시절 나의 목소리가 잔잔히 또는 거세게 울려퍼지는 장면 같은 게 상상됐다. 열네살 때의 내 목소리와 열일곱 때의 목소리, 스물셋 때의 목소리와 스물일곱 때의 목소리, 서른 셋 때와 서른 여섯 때의 목소리(쓰다 보니 저 때가 내가 살아온 시간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시간들인가 보다) 등등이 숲의 여기저기서 메아리처럼 울려올 때, 먹먹한 기분으로 그 소리를 듣고 있는 현재의 나...같은 이미지가 떠올랐다.

 

어쩌면 종현님도 이런 느낌을 표현하고 싶으셨던 게 아닐까. 한 사람의 목소리 안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모두 들어있는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보고 싶으셨던 게 아니었을까. 어린 나와 젊은 나와 나이든 나와 늙어가는 나가 서로 대화를 하지도, 화음을 만들지도, 조화를 이루지도 않고, 그냥 그 시절의 그 자신으로 함께 존재하며 모여 있는 숲, 같은 걸 상상하시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날 송재경씨의 목소리에 대해 얘기하시면서 '청년도 소년도 중년도 있는 목소리'라고 말씀하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나혼자 해 본다. 그나저나 나야말로 팩트를 쓰는 것도 아니면서 뭐이렇게 첫 곡 얘기부터 주절주절 길게 늘어놓고 있는 거지...두 번째 곡부터는 좀 자제하고 간결하게 써봐야겠네 어휴.

 

2번 트랙: 걷는 이

 

걷는 이에 대해 얘기하실 때는 박혜리씨에 대해 소개해 주셨다. 깊은 목소리를 지니신 분이라 이 노래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셨다고. 드럼은 불나방의 유밐ㅋㅋㅋㅋ 그러니까 양현모씨가 쳐주셨다고 한다. 3집 내신 다음에 공연하실 때는 양현모씨가 함께 무대에 오르셨던 적도 종종 있었던 것 같은데...내 기억에 대한 확신이 없네;;; 이날 양현모씨 얘기를 몇번 더 하셨는데 나는 '양현모'라는 이름보다 '유미'라는 이름이 훨씬 익숙한데다가 '유미'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불나방이 떠올라 자꾸 웃음이 터지려는 걸 참아야 했다. 애니웨이,

 

바드 앨범도 박혜리씨 음악도 꼭 찾아 들어보라고 추천해주셨고, 이 앨범을 마스터링하신 민상용씨가 걷는 이를 두고 '옛날의 생각의여름다운 노래'라고 하셨다는 말씀도 하셨다. 그리고는 '생각의여름다운 게 뭔지 모르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 나는 이 노래를 듣자마자 '아 이래서 옛날 생각의여름 노래 같다고 했구나'라는 생각이 바로 들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만 노래가 너무 아름다워서 곧 눈물이 났다ㅠㅠ 종현님이 부르시는 걷는 이도 너무 좋겠다 싶었고. 종현님의 목소리는 화살처럼 가슴으로 날아와 꽂히는, 직선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할 때가 많은데, 종현님이 말씀하신 '플랫한 목소리'라는 게 그 느낌일까. 

 

그나저나 종현님 공연 때 평론가들에 대한 얘기를 여러 번 들어본 것 같은데. 대체 어떤 평론가가 어떤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종현님 기억에 필요 없는 말들을 오래오래 남긴 것일까. 생각의여름 음악에 대한 '평론'을 쓰면서 '포크의 근본주의자' 같은 말을 쓰는 데 대한 갑갑함을 표현하시면서 1집이 '너무 포크'여서 그렇지, 그 이후로는 포크를 한 적이 없다고까지 말씀하셨다. 지난 앨범도 팝 음반이었고 종현님 스스로 종현님의 기타 연주가 컨트리 팝이라고 생각하신다며, 컨트리 팝 혹은 엠비언트 팝이라고 해도 '포크 음악'으로 생각의여름 음악에 굴레를 씌우는 이들에 대한 답답함과,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토로하셨다. 그러니 한국 평론가들 '포크의 근본주의자' 같은 말 쓰지 마십쇼 뮤지션이 싫어합니다...아 물론 아티스트가 만든 '텍스트'를 분류하고 규정하는 게 평론가의 일이라고 하면 할 말 없지만......

 

3번 트랙: 불안에게

 

불안에게는 포크 팝도 엠비언트 팝도 컨트리 팝도 아닌 Rock으로 등록되어 있다고 하셨는데, 들어 보니 역시나 Rock이었다. 이 노래를 부르신 이승준씨는 이번 앨범에서 노래를 불러주신 분들 중 대중들에게 가장 낯설 분. 광주에서 밴드를 하시는 분인데, '멋있는 저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셔서 이승준씨에게 부탁드리셨단다. 광주에 내려가서 소리를 받아오셨다고. 그러면서 종현님이 덧붙이신 "저는 저음이 아니에요. 고음이 아닐 뿐이지."라는 말씀에 나 혼자 빵터졌는데ㅋㅋㅋㅋ 아 나는 이런 식의 종현님 말씀이 되게 재미있는데 웃고 나면 '아 이게 웃으라고 하신 말씀은 아닌 거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 송구하기도 하다;; 

 

이 노래의 영어 제목을 스트리밍 사이트에 등록해야 해서, '불안'을 뭘로 번역해야 할지 오래 고민하셨다고 하셨다. 다들 To My Anxiety라고 생각하겠지만 종현님이 생각하신 '불안'은 anxiety와 다른 것이었다고. 그래서 결국 To my Unpeacefulness로 번역하셨다며, peaceful하지 않은 상태가 종현님에게는 '불안'이었다고 설명하셨다. 마음의 평화/평온/안정을 잃은 상태...그러면서 '불안', '공황' 같은 말들(보통 '장애'라는 말과 함께 쓰곤 하는)에 대해 잠깐 언급하셨는데, 그 말들이 불러일으키는 편견 혹은 감정 같은 것을 최대한 배제하고자 하셨던 게 아닐까 싶었다. 궁지 같은 것, 혹은 절벽 같은 것에 몰려 있는 상태, 격렬하게 휘몰아치는 감각들, 공격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특정한 상황 같은 걸 얘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인간의 삶 자체가 불안일 수밖에 없음'을 담담하게 노래하고 싶은 게 아니셨을까...뭐 이것도 앨범이 막 나온 지금의 내 생각일 뿐이니, 나중에는 이 노래를 '격렬하게 마음 속에서 요동치는 감정들도 결국 다 거품일 뿐임'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

 

이 노래를 들으며, 종현님이 평화로우시기를, 의지에 따라 좌지우지할 수 없는 어떤 감정들로 너무 크게 고통받지 않으시기를, 바랐다. 지금도 그렇다.

 

이날 전 곡에 대한 설명을 마친 후, 건반 앞에 앉아 마이크를 잡으신 종현님 :)

 

 

 

하 대체 나는 왜이렇게 좋아하는 것/사람에 대해 쓰다보면 말이 미친듯이 길어지고 또 길어지는 걸까ㅠㅠ 말 못하고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걸까ㅠㅠㅠㅠㅠㅠㅠㅠ 다섯 곡에 대한 메모가 남았고 두 곡의 영상을 더 링크해야 하는데, 우선 오늘은 스크롤이 너무 길어졌으므로 뒷얘기는 다음 포스팅에...나새끼 자제좀 하자 제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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