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은이 프리 티벳 운동 때 만들었다는 노래.
개념찬 그녀의 노래 가사가 실현 가능한 꿈인 현실이기를.
더불어 오지은과 시와의 1집 전곡 엠비씨 심의 통과 축하. ㅋㅋㅋㅋㅋㅋㅋ
작은 자유
너와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쓸데없는 얘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겠네
너와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아름다운 것들을 같이 볼 수 있다면 좋겠네
작은 자유가 너의 손 안에 있기를
작은 자유가 너와 나의 손 안에 있기를
너의 미소를 오늘도 볼 수가 있다면
내일도 모레도 계속 볼 수 있다면 좋겠네
니가 꿈을 계속 꾼다면 좋겠네
황당한 꿈이라고 해도 꿀 수 있다면 좋겠네
너와 나는 얼굴을 모른다 하여도
그래도 같이 달콤한 꿈을 꾼다면 좋겠네
지구라는 반짝이는 작은 별에서
아무도 죽임을 당하지 않길
지금 나는 먼 하늘 아래 있지만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 니가 오늘도 행복하길
작은 자유가 너의 손 안에 있기를
작은 자유가 너와 나의 손 안에 있기를
이 노래의 가장 큰 미덕은 '우리'라는 주체를 함부로 호명하지 않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자유에 대한 노래라면 보통 자유를 억압한 자와 억압당한 자를 이분하고 억압당한 자들을 '우리'라 호칭하면서 노래 속의 '나'가 그들의 심정과 상황에 공감하는 노래를 떠올릴 수 있지 않나. 그런 노래들에서 자유라는 것은 일상 속에서 쉽게 겪을 수 있는-사소해 보이지만 매우 소중한-경험 대신 현실화되기 어려운 이상이나 목적으로 나타난다. 물론 그런 노래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어떤 측면에서 매우 의미있고 필요한 노래라는 건 맞다. 요즘 한참 나오는 '몇점 만점에 몇점' 따위의 쓰레기같은-_- 노래보다야 백배천배 훌륭하다.
하지만 '우리'란 도대체 누구인가. 어떤 사회적 이슈가 발발할 때마다 편을 가르고 경계선 안과 밖을 나누며 안에 있는 이들에게는 무비판적인 환호를, 밖에 있는 이들에게는 맹목적인 분노를 내뿜는 모습들을 볼 때마다 나는 솔직히 공포스럽다. 세상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고, 하나하나의 사안마다 그들의 입장은 너무나 다르며, 어떤 상황에서 나와 같은 '우리'였던 '그'가 또다른 상황에서는 나와 다른 '너희'가 쉽게 되고 만다는 게 당연한 사실이니까.
이 점에서 오지은의 '작은 자유'는 의미있다. 이 노래에서 오지은은 '우리'라는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있는 사람들만을 위해 절규하면서 변혁되고 바로세워진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함께 걸어나가자고 부르짖지 않는다. 대신 '너'-심지어 얼굴을 모를 수도 있고 먼 하늘 아래 있을 수도 있는 불특정 대상을 위해 기도하며, '따뜻한 커피'와 '즐거운 시간', '아름다운 것들'을 나눌 수 있는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면서 '아무도 죽임을 당하지 않길' 속삭이듯이 기원한다. 그러면서도 '미소'를 볼 수 없는 세상과 '황당한 꿈'마저도 꿀 수 없는 세상에 대해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또한 자신이 소망하는 것의 정체를 '작은 자유'라 부름으로써 그 말이 갖는 무거움에 짓눌리지 않고 소박하지만 구체적으로 그것의 의미를 드러낸다. 표현되는 소망도, 그 소망을 표출하는 방식도 지극히 평화적이고 아름답다. 세상은 이리도 아름답지 않은데 말이다.
이렇게 현실을 둘러보고 나를 돌아보게 해 주는 노래를 불러주는 뮤지션이 있다는 건 기쁜 일이다. 옳다고 여겨지는 것, 소중하게 지켜가야 할 것들을 위해 목소리 내기를 서슴지 않는 오지은, 아무리 자뻑뮤지션이라 해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잖아! 멋진 그녀, 아름다운 노래, 참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