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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드는 바람/듣고

요팟시 350회 그리고 김현철,

정밀아님의 인스타에서 요즘은팟캐스트시대 350회에 김현철씨와 함께 출연했다는 게시물을 보았다. 정밀아님과 김현철씨라니! 2021년 첫 로스트스테이션은 게스트도 빵빵하구나+_+ 하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어떤 방송일지 예측이 안된다는 기분으로 방송을 기다렸다.

그리고 들은 방송은 예상보다 또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내 라디오 청취의 역사는 1990년대에 멈춰 있는데(옛날사람이므롴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때는 들을 방송이 너무너무 많았기 때문에 하나의 방송에 집중하지 못하고 늘 이곳저곳 버튼을 돌려가며 방송을 들었다. 가장 경쟁 터지던 시간은 역시 10시대였는데, 유영석의 FM 인기가요-김현철의 밤의 디스크쇼-윤종신의 기쁜우리젊은날-별이빛나는밤에(이문세-이적이 DJ하던 시기까지는 자주 들었고 그 이후로는 안 들었음)를 매일 줄기차게 돌려 들었다. 정시에 시작하는 FM인기가요나 디스크쇼를 먼저 듣기 시작해서 오프닝멘트 듣고 첫곡 듣다가 광고 나올 즈음 기쁜우리젊은날이나 별밤으로 돌려서 오프닝 듣고 첫곡 듣고…그리고 그날 재미있을 것 같은 코너 하는 방송 골라서 듣고 그랬다. 그때는 방학 때마다 방학특집이라고 당시 인기 있던 가수들이 초대손님으로 나와서 한시간씩 토크쇼 비슷하게 하는 이벤트성 방송들을 했었는데 그런 것들도 되게 재밌었다.

그러다 저 디제이들이 비슷한 시기에 방송을 그만두면서 그리고 FM음악도시가 생기면서 12시대 방송에 집중하게 됐었지. 신해철과 유희열과 소라언니의…하 다 옛날 이야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쓰면서 생각해보니 밤의 디스크쇼도 김현철씨가 그만둔 후 소라언니가 맡으셨던 것 같은데? 소라언니의 디스크쇼도 자주 들었던 것 같다. 근데 뭐 그때는 라디오 자체를 진짜 많이 들었지. 야구중계도 라디오로 진짜진짜 많이 듣고. 유영석의 FM 인기가요 마지막 방송 때 유영석씨가 우는 거 들으며 같이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방송 마지막에는 사랑 그대로의 사랑을 BGM으로 그날을 마무리하는 멘트를 해주곤 했었는데 마지막 방송의 마지막에 들은 사랑 그대로의 사랑이 너무 슬퍼가지고 한동안 그 노래를 못 들었다. 들으면 막 눈물 날 것 같고 실제로 나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문세씨가 별밤 마지막 하는 날도 진짜 슬펐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다 너무 라떼는인데 쓰다보니 왜이렇게 그립고 난린갘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시 원래 화제로 돌아오자면. 내 추억의 DJ 중 한 분인 '그때의' 김현철씨는 뭐랄까 되게 헐렁한 유머를 구사하던 디제이였다. 엄청 웃기지는 않은데 어떤 패턴이 있어서 그 패턴에 익숙해지면 엄청 웃긴 거. 웃기려고 하는 말이 아닌데 웃기는 경우도 있었고 웃기려고 한 말이 하나도 안 웃겨서 웃기는 경우도 있었곸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되게 여유가 있었다. 디제이의 실제 마음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듣다 보면 되게 느긋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유영석씨 방송은 감성적이고 소년스러운 느낌이 좀 더 강했고 별밤은 좀 종합예능선물세트같았고 기쁜우리젊은날은 아기자기한 느낌. 근데 그렇다고 마냥 편안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다른 방송들이 당시의 10대 여성들-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여고생들까지를 타겟으로 하고 있는 느낌이라면 디스크쇼는 좀더 높은 느낌이었던 것 같다. 분위기 자체도 좀더 차분하고 이성적(이라고 쓰니 웃기지만)이었다. 약간 여백이 있는 방송? 별밤은 그와 반대로 꽉꽉 차 있는 느낌이었고.

음악도 그랬다. 90년대에 10대를 살았던 사람들 중 '나 가요 좀 듣는다' 하는 사람들이 빼놓지 않고 좋아했던 음악이 넥스트와 김현철 아니었을까 싶은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도 그때 그런 자만심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그 두 음악을 당연히 엄청 많이 들었다. 엄청 편안해지거나 감성 터지게 하는 음악은 아니었는데 듣다 보면 아니 뭐야 이거 뭐야 하는 느낌. 내가 지금 되게 멋진 음악을 듣고 있구나 하는 기분이 절로 들었달까. 그대안의 블루달의 몰락이 김현철이라는 가수를 대중적으로 알린 노래겠지만 나는 1집의 동네오랜만에와 (모두가 사랑하는) 춘천가는 기차, 2집의 까만치마를 입고(대체 왜였을까)와 사과나무를 좋아했고ㅠㅠ 3집의 오늘 이밤이우리 언제까지나달의 몰락보다 더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뭐 그때는 나 김현철 들어 혹은 김현철 노래 좋아해, 라고 하면 아 얘 좀 노래 듣는구나, 하는 느낌이었을 때니깤ㅋㅋㅋㅋㅋㅋㅋㅋㅋ 4집부터는 그런 느낌이 좀 덜해지기도 했지만.

김현철-동네

 

평론가들은 1, 2집을 좋아하지만 내가 진짜로 많이 들었던 건 4집부터 7집까지의 앨범이었다. 표절 얘기도 있었지만 좋은 노래가 너무 많았어서 어쩔 수 없었다. 고르기도 힘들 정도다ㅠㅠㅠㅠㅠ 4집 낼 때 솔리드와 김현철이 같은 소속사였어서 4집에 솔리드가 피처링을 했었는데 라디오에서 같이 4집 얘기 하며 훈훈한 분위기 만들던 것도 기억나곸ㅋㅋㅋㅋㅋㅋㅋ 왜그래아주 오래된 일이지도 좋아했지만 양희은님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물망초가 진짜 너무 좋았다ㅠㅠㅠㅠㅠㅠㅠㅠ 당연히 양희은님의 물망초도 좋지만. 

김현철-물망초

 

일생을도 너무 많이 듣고 불렀던 노래라서 박재정이 방송에서 일생을 불렀을 때 아오 너무 선곡 잘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고 기뻐함. 박재정 노래는 나중에 따로 포스팅해야지 흑흑.

김현철-일생을

 

6집과 7집도 엄청 많이 들었는데 그 중에서도 제일 좋아했던 건 역시 이 노래다. 어느 누구를 사랑한다는 건 미친 짓이야. 10대 때의 나는 지금과 달리 애정이 넘치는 인간이어서 쉽게 사람을 좋아하고 많이 좋아하고 아주 좋아하곤 했었는데(지금은 도대체…;;;;;; 그때 평생 쓸 애정을 다 썼나봄) 이 노래를 들을 때도 누군가를 쉽게 좋아하고 많이 좋아하고 아주 좋아하던 때여서 하라는 공부 안하고 이 노래를 천번만번 돌려들으며 이 노래 제목을 여기저기에 쓰고 있었음 미친여자아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김현철-어느 누구를 사랑한다는 건 미친 짓이야

 

러빙유봄이와사랑하오(아 진짜 제목만 쓰고 있는데도 가슴이 막 파도를 치는 느낌ㅠㅠㅠㅠㅠ 다 너무 좋은 노래여가지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가 수록되어 있던 이 다음 앨범까지도 많이 들었었고 9집은 (그 당시의 내가 가요를 많이 안 듣던 때여가지고) 많이 안 들었다. 그리고 작년에 나왔던 10집도 아 언제 들어봐야 되는데 들어봐야 되는데 생각만 하고 못 듣고 있었는데 이날 방송에서 드라이브 듣다가 진짜 울 뻔했다. 너무 좋아가지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옛날 김현철 노래 들으며 아니 뭐야 이거 뭔데 이렇게 좋아 하던 그 때의 그 기분이 그대로 오는 것 같아 노래가 나오는 내내 신음이 절로 나왔다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서 '이런 노래로 앨범을 다 채우고 싶지 않았냐'는 안승준군님의 말씀에 너무 많이 공감했다. 나도 그 질문을 하고 싶었던 기분. 그리고 '이런 노래로 가득찬 앨범이 올해 내 나올 것'이라는 김현철씨의 답변에 기립박수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랜만에와 동네가 실려 있던 1집, 그리고 30년 후에 나온, 드라이브와 푸른돛이 실려 있는 10집.

근데 사실 드라이브 말고도 그날 방송 자체가 너무 인상 깊었다. '라떼의 디제이' 시절에는 헐렁한데 똑똑하고 느긋한데 날카로운 청년, 느낌이었던 김현철씨였는데 지금은 '되게 좋은 어른이시구나' 싶더라. '세련됨을 누가 정의하냐'는 말도 그랬고, '시티팝 시티팝 하지만 나는 그냥 원래 좋아하는 노래가 이런 노래였다'는 말도 그랬고(나도 그런데!!!!! 싶어서 엄청 공감. 그냥 그런 스타일의 노래들-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약간은 가볍지만 엄청 빠르진 않은 노래들을 예전부터 좋아했었는데 언제부턴가 그게 시티팝이고 시티팝의 계보를 70년대 일본에서부터 찾을 수 있고…같은 소리들을 듣게 되어 읭????? 하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10집이 '엄청 대단한 무언가'가 아니고, 그냥 자신이 음악을 하는 과정의 하나일 뿐이라고 하는 말도 좋았고 맨 마지막에 '너무 열심히 하지 말아라'라고 말해주는 것도 엄청 와닿았다. 로스트스테이션은 대부분 좋지만, 이날 방송 참 좋았다. '꿈과 의지, 성실함에 대한 고찰'이라는 제목이 왜 나왔는지 알 것 같은 기분.

어떤 일을 몇십년 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길게' 하는 것 자체는 예상보다 덜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 일을 계속 좋아하면서 하는 것, 그리고 멋지게 잘해내는 것이 진짜 어려운 일이겠지. 그러려면 꼭 가져야 할 게 '꿈과 의지와 성실함'일 거고.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저 세가지를 학교에서든 집에서든 사회에서든 그렇게 강조하는지도 모르겠다. 근데 내 평생을 돌아보면 저 세 가지를 모두 지니고 발현하며 살아본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단 말이다. 그래서 '진짜 이분은 꿈이 있구나' 하는 느낌을 주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의지와 성실함을 두루 갖춘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존경스럽다는 기분이 들곤 한다. 그러다보니 저 셋을 모두 지니고 있는 존재로서의 김현철씨가 좀 놀라운 존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떤 일을 몇십년 간 하는 것 자체는 생각보다 덜 어려운 일인 것도 같은데, 그 일을 계속 좋아하면서, 계속 잘해내는 것은 생각보다 더 많이 어려운 일 같다. 개인적으로는 승열오라버니의 요팟시 이후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방송.

여튼간 덕분에 나는 이번 주말 내내 김현철씨의 1집부터 10집 그리고 브러쉬 앨범까지를 무한반복하고 있다. 어렸을 때 듣던 노래들 중 '다시 들을 수 없게 된 노래들'이나 '다시 들으니 이걸 왜 좋아했지 싶은 노래들'도 꽤 있는데 그런 노래가 거의 없어서 좋다. 여전히 동네 너무 좋고ㅠㅠ '치기어린 가사'라고 김현철씨는 말했지만 춘천가는 기차의 '조금은 지쳐 있었나봐 쫓기는 듯한 내 생활'이라는 가사 듣자마자 울컥하고ㅠㅠ 

유튜브에서 드라이브를 검색해봤더니 죠지 대신 김현철씨가 직접 드라이브를 부르신 버전도 있더라????? 스케치북이랑 공감에서 부르셨던데 원곡만큼 좋아서 같이 포스팅해봄. 새로 나올 앨범에는 김현철씨 버전의 드라이브를 실어주시는 것도 좋겠다 싶다. 시티팝(이라는 말이 만들어진 이상 계속 쓸 수밖에 없다는 것도 참 아이러닠ㅋㅋㅋㅋ)으로 가득가득 채워질 거라는 새 앨범도 벌써부터 기대된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 건강하게 오래오래 좋은 음악 해 주시길. 멋진 로스트스테이션을 기획해주신 안승준군님과 xsfm에도 감사를.

 

김현철-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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