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26. 00:47ㆍ흔드는 바람/듣고
굉장히 시끄러운 시절이지만, 엉망진창이던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기분이라 최근 몇 년 간보다는 오히려 나은 시절이 아닌가 싶다. 올한해도 끝날 때까지 수많은 사건들이 이어지려나보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이 나라에도 그렇고,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이렇게 가까이서 보면 그저 엉망진창일 뿐인데, 멀리서 보면 아주 조금씩, 아주 천천히, 나아지고 있는 게 맞을까. 제 방향을 찾아가고 있는 게 맞을까. 더 나빠만 지고 있는 건 아닐까. 자신은 없지만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든다.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여름에 아버지 납골당 다녀오는 날, 버스 안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비오듯 땀을 쏟으며 뭔가를 힘들게 들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왠지 눈길이 가 자세히 봤다. 커다란 수박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버스 안에서 미친여자처럼 소리내어 울었다. 생각해보니 최근 몇 년 간 우리 가족은 늘 수박을 배달시켜 먹었다. 여름에 수박을 '들고' 집까지 와 주는 건 아빠의 일이었는데, 아빠가 그 일을 할 수 없으니까. 아주 한참 전에야 아빠가 그걸 들 수 있었으니까.
할아버지가 중간에 멈춰서서 땀을 닦는 모습까지 본 후 더이상 볼 수 없었다. 그러고 났더니 수박만 보면 아빠 생각이 나서 울컥하네. 한번 어떤 대상을 어떤 기억과 연관지으면 그 대상을 예전처럼 대할 수 없게 되어버리니까. 영원히는 아니더라도, 한동안은.
.............아이고. 원래는 요즘 ROOM307의 노래를 듣고 있다는 얘기를 쓰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길어져버렸네.
노동요를 들을 때는 최대한 가사에 신경을 안 쓰는데(정신이 분산되니까) 총총을 들을 때는 한번씩 일을 멈추게 된다. 더 후회하기 전에/ 새 마음이 자라기 전에/ 이만 쓸게요/ 그만 쓸게요/ 총총/ 잘 지내요라는 말이 자꾸 가슴에 남는다. 슬픈 노래다.
수신자 그대에게
집에 잘 들어갔나요
사실 나는 저울을 가만 들고 한참 지켜보고 있었죠
한쪽이 기우는 걸 괴로이 결정한 까닭은
내 길에 거짓이 없기를 바라서입니다
그대에게 결국 난 얘기해요 여기까지
오래된 찬란함의 막을 내리고 불을 꺼요
더 후회하기 전에
마음들 무너지기 전에
이만 쓸게요
그만 쓸게요
총총 총총
수신자 그대에게
집에 잘 들어갔어요
사실 나는 거울을 가만 놓고 한참 지켜보고 있었죠
변하지 않는 쪽을 괴로이 선택한 까닭은
찬란한 아픔을 믿을 수 없어서입니다
그대에게 결국 난 얘기하려구요
새로운 영광의 걸음을 멈추고 돌아가요
더 후회하기 전에
새 마음이 자라기 전에
이만 쓸게요
그만 쓸게요
총총
잘 지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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