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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달, 멍든 마음

180526, [방백] 한강 & 바람 - ㅍㅍㅍ 페스티벌 첫째날 @고양아람누리 노루목야외극장

ㅍㅍㅍ 페스티벌 첫날, 나의 메인이었던 방백. 이 페스티벌에 왔던 가장 중요한 이유 역시 방백이었다. 백현진씨 공연에서 준석님이 기타 치시는 모습이야 처음이 아니었지만 방백의 공연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좀더 용기를 냈으면 혹은 타이밍이 조금만 더 잘 맞았으면 공연을 볼 수 있었을텐데, 이상하게 타이밍도 안 맞았고 공연을 보러 갈 용기도 안 났다. 유앤미블루 3집이 '진짜로 무산된' 2010년 이후로는 승열오라버니 공연에서 준석님 뵙기도 힘들었고 준석님은 내가 뵙고 싶다고 뵐 수 있는 분도 절대 아니고(아니 뭐 그렇다고 승열오라버니는 뵙고 싶으면 뵐 수 있나???? 역시 절대로 아니고…아 쓰다보니까 왜이렇게 슬퍼지지???? 흑흑흑흑흑) 나도 승열오라버니 공연조차 다 챙기기 힘든 상황에 한동안 있었던 탓에 준석님을 정말 오랫동안 못 봤다.

 

이날 방백은 마지막이었고, 이쯤에는 이미 밤이 다 되어 있었으며, 날씨는 제법 쌀쌀해져서-바람이 자꾸 불었다-나는 챙겨간 긴팔옷을 입고 백현진씨와 준석님이 무대 위에 올라오기를 기다렸다. 사실 9 공연이 끝나고 피크닉 스테이지와 노루목 스테이지 중간쯤에서 그때 막 도착하신 듯한 준석님과 백현진씨를 슬쩍 봤던 터라 어떤 옷을 입고 나오실지는 대충 예상하고 있었는데, 백현진씨는 일교차가 큰 봄밤이었음에도 재킷을 벗어던졌다. 마이크스탠드도 집어던지고 한손에 마이크를 잡아들고는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몸짓-'춤'이라고 하기는 좀 쉽지 않은 그런-을 하며 노래를 불렀다. 

 

자켓을 입고 올라왔지만
공연 때는 1초도 입지 않았던 백현진씨.

준석님은 곁에서 기타를 연주하셨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답고 더 밝아보이셔서, 나는 자꾸 서글퍼졌고 여러 번 울컥하기도 했고 뭉클하기도 했다. 아프지 마시고, 건강하셔서, 계속 저렇게 연주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엄청 간절하게 들었다.
튜닝을 하실 때도
계속 미소를 띄고 계시던, 준석님.
 
준석님이 다 나으셨다고, 괜찮다고 하시는데도 볼 때마다 마음이 쓰이고 가끔씩은 아프기도 한 건 그 병이 암이라는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준석님이 투병하시던 동안 나는 그분이 아프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것 때문이 더 큰 것 같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편찮으셨던 기간과 준석님이 아프셨던 기간이 묘하게 겹치는데, 내가 간절했고 괴로웠던 그 시기에 준석님 역시 간절하시고 괴로우셨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아이고.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빠져들어버리곤 한다. 동시에 나라는 인간의 한계도 느낀다. 나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경험 이외의 경험에는, 제대로 공감하지 못하는, 그런 인간에 불과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한강의 가사처럼, 가로등이 물에 잠긴 밤 여전히 정답지만 우린 더는 갈 수 없다는 걸 이미 아마 알고 있었지, 라는 한강의 가사처럼, 나는 그보다 더 갈 수 없는 인간인 걸까, 그 이상의 인간은 도저히 될 수 없는 걸까, 하는 생각을, 공연을 보다 잠깐 했었다. 그 생각과 무관하게 한강은 아름다웠고 게다가 바람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서, 나는 시퍼렇게 멍들 뻔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최소한 나에게는 바람Lean on me보다, 행진보다, 더 힘이 되는 노래라는 걸 확인하면서.
 
 
방백 - 한강

 

습한 여름 밤 너와 난 좀더 갈 수 있을까 강은 범람하는데

강을 따라 걷는 밤 그때에 우리는 미친 듯 농담을 하며 완벽히 행복했지

지나가는 구름과 음악과 벌레들과 비행기

지나가는 강물과 바람들과 사람들과 자전거들

벌써 저만큼 벌써 저만큼 벌써 저만큼

 

가로등이 물에 잠긴 밤 여전히 정답지만 우린

더는 갈 수 없다는 걸 이미 아마 알고 있었지

강을 쳐다보는 밤 모처럼 건조한 밤

복잡하고 밝은 빛 저기서 고요히 아른거리네

지나가는 구름과 음악과 벌레들과 비행기

지나가는 강물과 바람들과 사람들과 자전거들

지나가는 먼지와 사연들과 물새들과 연인들

지나가네 어느새 벌써 벌써 저만큼

 

지나가는 비가 와 지나가는 비가 가

지나가는 너와 나 한강을 쳐다보는 밤

 

하지만 한강에 아무런 추억이 없는 내가 한강을 들을 때마다 지나가는 구름과 음악과 벌레들과 비행기와 먼지와 사연들과 물새들과 연인들을 바라보며 모든 것이 사라지고 있구나, 싶어 애틋해하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에 빠지는 걸 보면, 음악의 힘은 정말 세다. 나라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 주는 힘이, 음악에 있다. 아, 정말이지 아름답다.

 

방백 - 바람

 

그저께 밤 우리가 본 건 푸른 달

아니, 아니 그저께 밤 우리가 본 건 시퍼렇게 멍든 마음

 

이 노래가 혹시나 너에게 가서 조금은 힘이 된다면

Lean on me 같은 노래처럼 너에게 가서 힘이 된다면

힘이 된다면 힘이 된다면

 

이 노래가 혹시나 너에게 가서 조금은 힘이 된다면

행진 같은 노래처럼 너에게 가서 힘이 된다면

힘이 된다면 힘이 된다면

 

힘이 되기를 힘이 되기를 네가 누구건 간에 네가 어떻든 간에

네가 어디에 있든 네가 지금 이 순간 힘이 되기를 힘이 되기를 힘이 되기를 힘이 되기를

 

그저께 밤의 바람


 

그리고 이 아래는 다 사운드체크 때의 준석님 사진. 공연 때는 동영상을 주로 찍어서 사진이 많이 없다.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까지 많이 찍을 생각이 아니었다. DSLR을 산 이후로 나는 보통 공연을 볼 때 사진을 찍는 편이지, 영상은 거의 안 찍으니까. 그런데 이날은 공연이 시작된지 얼마 안 되어서, 지금의 이 장면을 분명히 내가 다시 보고 싶어할 거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국은 거의 다 찍고 말았다. 집에 돌아와서 노트북 앞에 앉아 멍하니 공연 영상들을 돌려보고 돌려보고 또 돌려보고 있다.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굉장히 많은 시간이 지나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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