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쇼 (김영하, 문학동네, 2007)
퀴즈쇼 김영하 지음/문학동네 어릴 적의 나에게 소설이란 '어른들의 이야기'였다. 내가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의, 경험해보지 못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들. 그러다보니 소설을 읽을 때마다 타임머신을 타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다. 오른손에 신기함, 왼손에 낯섦의 추를 들고 둘 중 무엇이 더 무거운지 비교해가며 미래의 내 삶을 미리 맛보는 느낌. 아, 불륜이란 이런 것, 회사 생활이란 이런 것, 성숙한 연애란 이런 것, 어른들의 인간 관계란 이런 것,......기타 등등. 대학에 가고, 졸업하고, 일을 하고, 다시 공부를 하고, 취업을 준비하고, 다시 일을 하고...이렇게 한 살씩 나이를 먹어가다보니 어느 새 나는 일반적인 '어른'의 카테고리에 속해도 아무 문제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렇지만 아주 가끔씩..
여행생활자 (유성용, 갤리온, 2007)
여행생활자 - 유성용 지음/갤리온 ...그 때 생각하면요, 바보같아요. 왜? ...그 때는요, 그 사람이 마냥 멋져보였거든요. 하하, 그 때 애들 다 마찬가지였을걸. ...아니요, 그런 게 아니었어요. 설명하기가 힘든데...음. 다른 사람 같았어요. 저나, 애들이나, 선생님이나, 다른 선생님들과는 다른, 완전히 다른 사람이요. 우리가 사는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았어요. 저는 그냥 보통 세상에서 살아가잖아요, 싸우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가끔은 똑똑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바보같고 질척질척하게 사는 세상이요. 근데 그 사람은, 그런 감정의 배설물들은 다 저 아래에 두고, 지상으로부터 10cm쯤 떠다니는 것 같았어요. 지저분하고 구질구질한 것들을 향해 가끔 웃어주는 것만으로 ..
핑퐁 (박민규, 창비, 2006)
못. 나는 못이다. 그렇게 불린다. 쿵 쿵. 치수가 내 머릴 때릴 때 멀리서 보면 꼭 못이 박히는 것 같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야, 못! 하면 이상하지만, 그외의 별명은 가져본 적이 없어 모르겠다. 좋거나 싫다는 생각이, 그래서 들지 않는다. 쿵 쿵. 하지만 정말 못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벽에 기댄 채 머리를 맞다보면, 절대로 그렇다, 기도한다. 다음엔 못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못이라면, 일생에 한번만 맞으면 그만일 테니까. 알파벳의 가장 긴 단어가 무엇이었더라? 나는 생각했다. 기네스북에도 오른 단어가 있는데, 또 산소통을 지지 않고 에베레스트에 오른 최초의 인물이 누구였더라, 게다가 인류가 도달한 심해의 최저 수심은 과연 몇미터인가, 라이트 형제는 몇번의 실패 끊에 시험비행에 송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