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교수님의 '무엇이 범죄를 하지 않도록 만드는가' (그랜드마스터 특강)

2020. 3. 28. 23:22흐르는 강/소박한 박스

요즘 이런저런 이유로 뇌과학과 사회심리학에 관한 책들을 찾아읽고 이수정교수님의 방송 출연 영상을 찾아보다가 마이크임팩트에서 지난달에 공개한 이수정교수님의 강의 '무엇이 범죄를 하지 않도록 만드는가'를 보았다. 공부하는 기분으로 필기도 하며 들었기 때문에ㅋㅋㅋㅋㅋ 블로그에 기록해 둠. 영상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는데 중간에 광고가 진짜 엄청 자주 나왔다. 하지만 귀한 강의 공개해 준 거니 더 불평하지 않겠음.

이 강의를 본 건 사실 제목 때문이다. 최근 계속 '인간은 왜 남을 차별할까' '인간은 왜 남을 따돌릴까' '인간은 왜 폭력을 쓸까' 같은 주제를 계속 찾아보고 있던 중이라 인류애가 바사삭 부서지고 있었는데 저 제목을 본 순간 '아, 인간은 왜 남을 차별할까 대신 왜 어떤 인간은 남을 차별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가 같은 질문을 나에게 던졌어야 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인간 인식의 한계나 생존을 위해 유리한 방식으로 진화해온 역사를 짚다 보면 무력감을 넘어 슬픔이 찾아오는데, 그런 슬픔에도 불구하고 뭐든 해야 하는 게 내 역할이라면(직업적이든, 인간적이든)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게 필요한 일일 테다. 이것이 비관으로 낙관하는 자세인지도ㅋㅋㅋㅋㅋ ㅠㅠ

강의는 범죄심리학 입문 같은 느낌이었다. 범죄심리학의 창시자(이수정교수님은 '아버지'라고 표현하심)로 롬브로소Cesare Lombroso라는 사람이 있다. 검색해봤더니 이탈리아 사람이었고 오른쪽 사진이 대표적인 사진인 것 같았다.

롬브로소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범죄자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직접 범죄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특징을 연구했는데, 범죄자는 '범죄자의 외관상 특징'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이를 밝히려 했다고. 역시 검색을 통해 '청소년을 위한 사회학 에세이'라는 책에서 이런 내용을 찾았다.

범죄 사회학자들은 인간 범죄에 대해 다양한 연구를 시행했는데, 특히 인간의 외모가 범죄에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연구가 오래 전부터 이루어졌다. 범죄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롬브로소는 범죄자는 뚜렷한 외형적 특징이 있어서 다른 사람과 구분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장하는 범죄자는 어떤 외형을 가졌을까? '튀어나온 이마, 고르지 못한 치열, 들어간 턱' 등 타고난 신체적 특징 이외에도 '나이에 많은 주름살, 문신'과 같이 다양한 특징을 통해 범죄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유형화하려고 하였다. 종종 경찰이 불심검문을 하는 경우, 무작위로 사람을 고르는 선택적 행동은 이러한 외형에 따른 범죄자 인식 여부와 관련성이 높다는 것이다.

당연히 저 이론은 현재의 관점에서 말도 안되는 소리곸ㅋㅋ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롬브로소가 여전히 범죄심리학의 아버지(라는 말을 쓰기 싫었지만;)로 받아들여진다는 게 신기할 정도. 어쨌든 지금은 범죄자가 발생하는 원인에 대한 관점을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며 이수정교수님은 Individual Determinism과 Social/Control Determinism을 소개하심. 개인의 특성 즉 biological or psycological facotrs를 중시하느냐, 환경의 영향 즉 socail or cultural factors를 중시하느냐겠지요. 그리고 이때 환경의 영향이란 사회구조적 문제 및 사회화 과정에서의 잘못이라고 설명하심.

사회구조적 문제로 인해 범죄가 발생한다는 관점으로 도시의 물리적 환경이 범죄 발생에 영향을 미친다는 시카고 대학의 연구를 소개하셨다. 다운타운에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고 이주민이 유입될 때 기존의 공동체와 관계가 해체되고 단절되며 범죄 발생이 늘어난다는 것. 대학가 근처에서 범죄가 많이 발생하는 것도 이런 요인과 연관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근데 사실 지금은 '지역 사회의 공동체'가 끈끈하지 않은 게 일반적인 특징일 것 같아서 특정한 몇 지역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기도 힘들 듯. 그리고 세상에 '온전한 개인 탓'이거나 '온전한 사회 탓인 문제 같은 건 없으니까, 결국 두 가지를 함께 봐야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리고 이수정교수님은 Travis Hirschi와 성악설/성선설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영상에서는 Hirschi에 대한 내용을 먼저 비춰주고 그 다음에 성악설/성선설에 대한 내용을 비춰줬지만 사실은 성악설/ 성선설을 먼저 제시한 다음 Hirschi에 대해 보여줘야 했다고 생각함ㅋ

이전의 연구가 '범죄는 왜 발생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Hirschi는 인간의 본질을 악한 것으로 보고 그러한 인간이 왜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했다는 것이다. 즉 '무엇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는가'에서 '무엇이 범죄를 하지 않도록 만드는가'로 질문을 바꾸었다는 것. 이 부분이 중요한 것 같다. 사회적 인간으로서 추구해야 할 방향이 반사회적 행위의 지양이라면(물론 이때 '반사회적'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논쟁적인 주제이겠지만…) 결국 고민해야 하는 지점은 이걸 어떻게 해야 막을 수 있지?가 될 테니까. 물론 너무 어렵지만ㅠㅠㅠㅠㅠ

강의를 다 보고 허쉬에 대한 내용을 좀더 찾아봤다. 정보화정책 제16권 제4호(2009년 겨울호)에 실린 정혜원씨의 '사이버비행 지속에 미치는 영향 - 사회유대이론, 자기통제이론, 비행기회이론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서 아래와 같은 내용을 찾을 수 있었다.

사회유대이론에서는 주위사람들과의 애정적 결속력과 같은 유대가 범죄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사회유대이론을 주장했던 허쉬(Hirschi, 1969)는 모든 사람들은 잠재적인 범죄자이지만 자신의 불법행위로 인해 친구나 부모 등의 일차집단의 구성원들이나 학교와 직장 등의 구성원들과의 관계가 약화되거나 깨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사회유대이론은 '애착(attachment)', '관여(commitment)', '참여 (involvement)', '신념(belief)'의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사회적 유대의 첫 번째 요소인 애착은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지고 있는 애정적 결속, 존경심, 동일시의 정도를 의미한다. 이것은 감정적 혹은 정서적 구성 요소로 가족, 친구 그리고 학교에 대한 청소년들의 유대에 관심을 갖는다. 두 번째 요소인 관여는 비용적 요소를 말하는 것으로, 관례적 행동에 투자한 것을 잃을 위험을 말한다. 세 번째 요소는 관례적 행동에 대한 참여(involvement)이다. 이것은 기회적 구성 요소를 말한다. 일상생활(관례적 행동)에 대한 참여와 열중은 청소년이 범죄나 일탈에 가담할 수 있는 절대적 시간의 부족으로 인하여 불법적 행위의 기회를 줄일 것이라고 보았다. 네 번째 요소는 신념(belief)이다. 여기서 말하는 신념이란 사회의 가치체계와 규범에 대한 동의와 인정이다.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실려 있었다.

캘리포니아 대학의 사회학자 트래비스 허쉬Travis Hrischi가 발전시킨 범죄 이론은 여러모로 확증된 바가 있다. 그의 저서인 '범죄의 원인Causes of Delinquency'은 단순한 가설에서 출발해 여러 가지 주장과 데이터를 제시한다. 그는 개인이 법과 사회의 지시를 준수하는 이유는 '사회통제'가 그런 것들을 위반하지 못하도록 심리적으로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사회통제는 순응의 압박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하지만 가까운 이들과의 정서적 애착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실망시키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다. 범죄자가 결혼식을 올리고 나면 범죄위험도가 낮아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통계적으로 범죄자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결혼식을 올리는 비율이 낮다.)

이에 대해 이수정선생님께서는 가정과 학교 등의 훈육과 교육을 통해 친사회적 규범을 내면화함으로써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하셨다. 이러기 위해서는 적절한 관계를 정립함으로써 친사회성을 기를 수 있게 돕는 게 필요하겠지. 문제는 이런 거다. '훈육/ 교육을 통한 친사회적 규범의 내면화'를 위해서는 훈육/ 교육의 주체와 대상 간의 친밀한 관계 혹은 신뢰 있는 관계가 전제되어야 할 텐데, 친밀하고 신뢰 있는 관계를 구축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인간은 쉽게 상대를 믿고 따르는 존재가 아니니까. 친사회적 규범을 내면화할 기회를 많이 갖지 못한 사람, 즉 사회화를 적절히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인간에 대한 공감과 이해의 경험이 부족할 것이므로 그에게 무언가를 훈육하고 교육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운 일일 거란 말이다. 그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고 노력해봤자 아무리 얘기해봤자 들어쳐먹을 리가 없지!!!!! 하며 때려치울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무언가를 가르치기 전에 먼저 친밀한 관계부터 맺어야 할텐데, 그 친밀한 관계를 맺는 과정이 또 엄청 어렵죠. 존중과 경청, 글자로 써놓으면 쉽지만 실제로 남을 1도 존중하려 들지 않는 존재가 눈앞에서 헛소리를 촥촥 내뱉으며 누군가를 괴롭히거고 있을 때 그 존재와 친밀한 관계를 맺고 싶다는 마음 속의 동기를 유지시키기란 너무 쉽지 않고…아아아 갑자기 수많은 과거의 경험이 마구마구 떠오르는 것이다ㅠㅠ

나와 유사한 생각을 하셨는지, 질의응답 시간에 한 교사분이 '공감 능력 없는 애들을 학교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셨다. 이에 대해 이수정교수님은 교육을 통해 타인에 대한 이해 능력을 습득할 수 있게 하려면 우선 기본적인 신뢰감을 가질 수 있게 해야 한다며, 인내심을 가져야 될 필요가 있다고 하셨다…막막하다 싶은 말씀이기도 하지만 저것 말고 어떤 말씀을 더 해주실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포기하세요, 라고 대답해주실 수는 없었을테니까.

그러니 나는 내 앞에 선 존재의 불완전함을 잊지 않고 기다려야겠지. 나 역시 불완전한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같은 방식으로 상대하지 않아야겠지. 꾸준히, 천천히, 다급해하지 말고, 내 마음을 잘 다스리면서. 결국 내가 무언가를 배우고 사람들을 상대하고 여러 일을 겪으며 쌓이는 것은 '타인에 대한 이해'가 아니라 '나에 대한 이해'라는 생각이 또다시 든다. 나는 그 어떤 이에게도 완전히 공감하고 그 어떤 이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한계가 뚜렷한 인간에 불과하지만, 그 한계 안의 나를 아주 조금씩이나마 넓혀갈 수 있으려면 만남과 배움과 깨달음이 이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아, 또 결론이 자아성찰이네이것 역시 나의 한계인 것 같음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