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드는 바람/읽고(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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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적어 (정철, 리더스북, 2013)
하루에도 수백 권씩 쏟아진다는 책. 오늘 그중 한 권이 당신의 손 위에 놓여 있습니다. 결코 쉬운 인연이 아닙니다. 나무로 살다 끝날 수도 있었던 그의 인생이 당신을 찾아온 이유를 한번쯤은 생각해 주십시오. -라는 101쪽의 문장을 떠올리며 생각해 본다. 어떤 인연으로 이 책은 나를 찾아 왔을까. 이 책을 만나기 전과 만나기 후의 나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이 책이 내게 남긴 것 중 가장 오래 가게 될 것은 무엇일까…다른 건 몰라도, 이 질문에는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 어땠나, 정철이라는 사람의 글 어땠나, 하는 질문을 받는다면, 헐렁하고 넉넉하고 가볍게, 이렇게, 그냥 괜찮아. -라고, 358쪽의 문장과 같이. 그러고 보면, 참 친절한 책이다. 이제까지 읽어본 그 어떤 책보다도, 사용설명서나 ..
2014.01.29 -
선셋 파크 (폴 오스터, 열린책들, 2013)
그가 테레사 라이트한테 꽤나 고생스럽게 살게 될 거라고 하잖아. (p.128) 폴 오스터의 소설을 있는대로 찾아 읽던 때가 있었다. 스무살 즈음, 도서관에 갔다가 늘 대출 중이던 이 웬일로 서가에 꽂혀 있는 걸 발견하고 빌려 왔더랬다. 도대체 폴 오스터가 뭐라고 이렇게 다들 폴 오스터 타령이야? 라는 기분으로 침대 위에 벌렁 누워 책장을 펼쳤는데, 이십 페이지쯤을 넘겼을 때 이 소설은 이따위 자세로 읽을 만한 책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는 행여 누가 훔쳐갈지도 모른다는 듯 온몸을 웅크리고 앉아 페이지가 뚫어져라 쳐다보며 읽었다. 페이지가 꿀떡, 꿀떡, 넘어갔다. 진짜 꿀떡, 이 넘어가듯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삼키는 침이 달았다. 다른 책을 읽었다. 을 읽었고, , , , 을 읽었다. 을 읽고 나..
2013.05.24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히가시노 게이고, 현대문학, 2012)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우선 예쁜 표지가 눈길을 사로잡는 책이다. 고양이 한 마리가 지붕 위에 앉아 있는 이층의 잡화점, 선반마다 진열된 잡화들과 잡화점 앞에 서 있는 빨간 자전거는 아기자기한 생활의 느낌을 준다. 'OPEN'이라는 팻말이 걸린 녹색 문은 빼꼼 열려 있고 NAMIYA라는 분홍색의 잡화점 이름은 소박해 보인다. 별이 총총 떠 있는 밤하늘의 짙푸름과 대비되는 황토빛의 불빛은 따스하기 그지없다. 참 예쁘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저런 잡화점을 만날 수 있을까, 과연? 삼청동이나 서교동에서 카페나 베이커리 간판을 걸고 있는 곳이라면 모를까, 70세가 넘은 할아버지가 기타로 필통이나 창호지나 볼펜을 팔고 있는 잡화점으로는 절대 만날 수 없을 것 같다는 느낌. 소설을 읽은 후의 느낌도 그와 같았다...
2013.02.13 -
굿바이 동물원 (강태식, 한겨레출판, 2012)
굿바이 동물원 꿈과 환상의 나라 세렝게티. 야생이 살아 숨 쉬는 세렝게티. 행복해요, 세렝게티. 즐거워요, 세렝게티. 우리는 언제나 세렝게티. 한겨레출판에서 나오는 한겨레문학상 수상작들 중 16회 수상작까지 총 네 권의 책을 읽었다. 4분의 1 꼴이니 겨우 25퍼센트 읽은 거라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에는 이러이러한 특징이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만, 내가 읽은 네 권은 모두 유머러스하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물론 그 유머의 느낌은 모두 달랐다만-때로는 유쾌한 상상력에서 발현되는 것이었고, 때로는 따뜻한 인간미가 느껴지는 것이었으며, 또 때로는 지독한 현실을 비틀어 짜낸 유머였다-어쨌든 '읽는 과정'에서는 몇 번이나 피식 피식 했던 게 사실이다. 그래서 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역시, 웃으며 재미있게 읽을 수..
2013.02.08 -
나는 치즈다 (로버트 코마이어, 창비, 2008)
나는 치즈다. 이 책을 읽으려고 마음먹은 건 김연수 작가님 때문이다. 작가님의 신간을 기다리며 번역서를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터라ㅋ 작가님의 번역서를 세 권 읽어 봤는데, 맨 처음 읽은 은 괜찮았고, 은 정말 좋았고, 는 그저 그랬다. 그래서 2승 1패의 상황. 이 책이 승패를 동률로 만들지 아니면 승패간 격차를 벌릴지 혼자서 흥미진진해가며, 라는 책 제목을 빤히 응시해본 다음, 아무 생각 없이 책 표지를 넘겼다. 그건 내 실수였다. 왜냐하면, 이 책의 '나는 치즈다'라는 제목은 책을 읽는 데 아무 힌트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책이 가진 '패'는 표지에 펼쳐져 있었다. 책을 다 읽은 지금 생각해보건대, 나는 표지의 그림을 제목보다 더 응시했어야 했다. 자전거를 타고 뒤를 돌아보며 가는 소..
2012.11.18 -
『파도가 바람의 일이라면(김연수, 자음과모음)』속 '점들'.
좋아하는 책이나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고 감상을 적는 건 어렵지 않다. 책을 혹은 작가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무언가를 쓴다는 '노동'을 즐겁게 할 마음 자체가 들지 않으니까. 이야기를 읽고, 그것이 허구임을 알면서도 이야기 속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고, 그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고, 그 생각을 정리해 보는 작업을 자진해서 하고 싶게 하는 책. 그런 책과의 만남은 참 기쁜 경험이다. 하지만 매우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읽고 감상을 적는 건 어렵다. 주인공이 어떤지, 배경은 어떤지, 내용은 어떤지, 하나도 알아보지 않고 오직 작가 이름만으로 선택하는 책을 읽기 전에는 불안함과 싸우게 된다. 이 책이 내 기대보다 못하면 어떡하지? 그 작가가 맨날 또는 자주하는 그 얘기를 반복하는 데 불과한 책이면 어떡하지? ..
2012.1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