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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드는 바람

[영화] 정직한 후보, 2020 이다혜의 21세기 시네픽스에서 90번째로 추천해주신 작품이었던 정직한 후보를 보았다. (이다혜의 21세기 시네픽스 1-100편 목록은 지난번에 포스팅함: "여기")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찔끔찔끔 대충의 내용을 접했던 터라 큰 기대 없이 봤는데, 의외로(?????) 나는 재미있었다ㅋㅋㅋㅋㅋ 영화를 다 본 후에 어 이 감독님 뭔가 이름이 낯익은데 하면서 찾아봤더니(필요한 배경지식 대신 쓸데없는 스포에만 노출됐던 사람=나) 김종욱찾기의 감독님이셨다. 아하! 사실 나는 그 전까지 공유배우와 임수정배우의 출연작을 거의 본 게 없다. 공유는 음 으음 으으음…슈슈슈퍼스타 가가감사용? (그나마 특별출연) 드라마도 뭐 어느멋진날 초반의 몇 회만? (뒷쪽에는 뭔가 내용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안봄. 그리고 원래 드라마 잘 ..
[박세미] 현실의 앞뒤 자음과모음 2020년 여름호에 실린 박세미시인의 시. 박세미시인님의 시 참 좋다. 뭘 읽어도 좋다. 현실의 앞뒤 우리는 모두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한 걸음걸이를 가졌지 얼마나 각자가 위태로운지 나의 경우, 손을 최대한 부산스럽게 흔들어 발의 게으름을 위장하는 식이란다 친구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발에게 들려주는 애원 지금 나는 앞뒤를 생각하고 있어 오늘 아침 긴 다리를 가진 새가 성큼성큼 걸어와 내 옆에 섰어 새는 어느 것에도 눈길을 주지 않고 숲의 끝을 응시하기만 했지 그 눈빛에는 위태로움이 없어 나는 그만 발을 멈추고 말았어 흔들던 손도 내려놓았지 꽤 오랫동안 우리는 한곳을 바라보았어 나는 생각했지 사실 이 숲에 늪은 없었던 거야 하고 그 순간 새가 날개를 푸드덕거렸고 곧 날개를 완전히 펼치고 내 위로 솟..
[신미나] 첫눈은 내 혀에 내려앉아라 창작과비평 2019년 겨울호에서 읽은 시. 이제 곧 저 시가 나온 때로부터 1년이 다 되어 간다. '꿈'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 나에게, 이렇게 다정한 시는 서글픔으로 다가온다. 종로에 가본 지가 언제더라…아니지 서울에 가 본 지가 언제더라…하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옮겨 보았다. 따뜻한 이불과 포근한 베개가 필요한 때가 곧 오겠지. 그때까지 부디, 세상이 무사하기를. 내 소중한 사람들이 평안하기를. 원문은 '여기'에서. 첫눈은 내 혀에 내려앉아라 오늘은 날이 좋다 좋은 날이야 손을 꼭 잡고 베개를 사러 가자 원앙이나 峸 자를 색실로 수놓은 것을 살 수 있겟지 이것은 흐뭇한 꿈의 모양, 어쩐지 슬프고 다정한 미래 양쪽 옆구리에 베개를 끼고 걸으면, 나는 열두폭의 치마를 환하게 펼쳐서 밤을 줍는 꿈을 ..
[안희연] 표적 '그러려고 태어난 영혼은 없다'는 부분에서 아득해졌다. 너무 맞다. '그럴 만 해서 그렇게 된' 존재는 없다. '그렇게 된 것'이 삶의 목적이었던 존재 역시 없다. 그런 것은 없다. 표적 -안희연 (2019년, 문학과사회) 얼음은 녹기 위해 태어났다는 문장을 무심히 뱉었다 녹기 위해 태어났다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녹고 있는 얼음 앞에서 또박또박 섬뜩함을 말했다는 것 굳기 위해 태어난 밀랍 초와 구겨지기 위해 태어난 은박지에 대해서도 그러려고 태어난 영혼은 없다 그러려니 하는 마음에 밟혀 죽은 흰쥐가 불쑥 튀어나올 때가 있다 흰쥐, 한 마리 흰쥐의 가여움 흰쥐, 열 마리 흰쥐의 징그러움 흰쥐, 수백 마리 흰쥐의 당연함 질문도 없이 마땅해진다 흰쥐가 산처럼 쌓여 있는 방에서 밥도 먹고 잠도 ..
[전자책] 크레마 카르타G 한달 사용기 및 독서 후기 :p 현재까지 2020년 가장 예상치 못한 소비 1위인 크레마 카르타G. 이제 막 한 달이 넘었으니 사용기 및 독서 후기를 좀 올려본다.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전자책 산 이후에 별 일 없어도 초기화를 한번 하는 게 좋다는데, 나는 양품테스트를 끝낸 후 초기화하지 않은 상태에서 바로 사용했다. 그러다가 최근에 외장메모리를 구입하면서 기념(-_-?)으로 초기화. 처음부터 설정을 다시 해야 해서 당연히 귀찮았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처음 상태에서 마구잡이(-_-??)로 사용했던 흔적을 싹 지워버린 것 같아 왠지 속시원한 기분? 32기가짜리 마이크로SD로 샀다. 더 큰 용량을 살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귀찮아서 32G로. 특별히 좋은 걸 살 필요도 없는 것 같아 제일 저렴한 걸로 사버렸다. 티몬에서 1+1에 9,900원...
[전자책] (갑작스런 구매 후) 크레마 카르타G 4일 사용기 4일째 카르타G를 사용하고 있다. 아직 새로 구입한 전자책은 없는데 예전에 구입했던 전자책이 있고(단말기도 없는데 대체 왜 한 거지…) 전자도서관 이용이 가능해서 한 권을 완독할 수 있었다. 종이책만 살 때는 몰랐는데 전자책을 사려고 살펴보니 생각보다 없는 책들도 꽤 있다. 사실 내가 전자책 단말기를 산 데는 세계문학전집을 종이책으로 그만 사고 싶다는 생각도 크게 작용한 터라. 민음사, 을유문화사, 문학동네, 열린책들 책들은 아주 신간이 아닌 한 전자책이 넉넉히(?) 있는 것 같다. 대산세계문학총서는 거의 없다시피 한 상태다. 문예출판사도 비슷한 상황이다. 창비는 없지 않으나 많지도 않다. 열린책들은 200권 세트가 15만원으로 나와 있던데 꽤 매력적이다…!!!!! 별글에서 나온 '별글클래식 파스텔 에디..
[전자책] 갑작스러운 크레마 카르타G 구입기 :P 나도 이게 무슨 영문인지 잘 모르겠는데; 갑작스럽게 크레마 카르타G를 구입하게 되었다. 원래는 이맘때 내가 태블릿을 살 줄 알았는데 전자책 단말기라니 도대체 뭐가 어떻게 흘러간 거지…여전히 스스로도 좀 얼떨떨함. 책장 위에 카르타G가 잘 꽂혀 있는데도 저게 내 꺼가 맞는지 의심스럽다. 저걸 갑자기 왜 산 건지도 좀 헷갈리고-_- 전자책 단말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다. 사실은 좀 오래 전부터 했다; 출판사들에서 한창 세계문학시리즈들을 막 기획해서 출판하기 시작했을 때, 그러니까 민음사 꺼 말고 문학동네 을유문화사 문학과지성사 등등이 갑자기 와르르 쏟아지고 있을 때 이북 단말기를 살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전자책보다 이북이 짧으니까 이북으로 써야지). 세계문학을 다시 읽고 싶긴 한데 그걸 ..
[문태준] 옮겨가는 초원 나이를 먹을수록 좋아지는 시인들이 몇 있는데, 그 중 한 분이 문태준씨. 어제는 갑자기 문태준씨 시에 꽂혀서 이 시 저 시를 찾아읽어보며 너무 좋다는 말만 계속했다. 그 말 말고는 뭐 할 말이 없더라; 그 많은 '좋은 시들' 중에서 블로그에 옮겨보고 싶은 시는 바로 이 시, 「옮겨가는 초원」. 매년 새로운 팀원들과 팀을 이루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보니, 전 팀원들을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애틋함을 느끼게 되곤 하는데, 이 시가 약간 그런 느낌이었다. 물론 내 상황에 빗대기에는 너무 애틋하고 아름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초원 양편으로 멀찍멀찍이 물러나 외면할 듯이 살자'라는 구절의 의미가 가슴이 찌릿할 정도로 와닿아서, 많이 뭉클한 마음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더랜다. 역시 시인이란 아무나 되는..